유럽 판매 45% 캐시카이 EV 백지화, 출시 최소 5년 이상 지연
6조 적자·2만 명 감원 닛산, 중국차 공세에 전동화 승부 포기
6조 적자·2만 명 감원 닛산, 중국차 공세에 전동화 승부 포기
이미지 확대보기일본 닛산자동차(7201.T)가 유럽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모델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캐시카이(Qashqai)'의 순수 전기차 개발을 중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로이터통신이 23일(현지시각) 복수의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단독 보도한 내용으로, 경쟁사들이 유럽 전기차 시장에 저렴한 신차를 잇달아 출시하는 가운데 닛산 스스로 전동화 경쟁에서 한발 물러서는 형국이다.
재무 부담을 덜기 위한 조치이지만, 업계에서는 이미 전기차 시장 선두권을 내준 닛산이 핵심 차종에서도 입지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럽 판매의 절반 차지하는 모델서 발 빼
캐시카이는 닛산의 유럽 사업을 지탱하는 주력 모델이다. 2025년 기준 닛산의 유럽 전체 판매량 33만 대 가운데 약 45%를 이 모델이 담당했다. 현재는 휘발유 모델과 e-POWER 하이브리드 모델만 판매 중이다.
닛산은 지난해 2023년 영국 정부와 함께 대대적으로 발표했던 캐시카이 순수 전기차 생산 계획을 조용히 접었다. 개발 중단 시점은 지난해 초였으며, 로이터가 이 사실을 파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년 전 닛산은 영국 북동부 잉글랜드 선더랜드(Sunderland) 공장에서 전기차 캐시카이를 생산하겠다고 밝혔고, 당시 영국 정부는 이를 자국이 세계 전기차 생산 거점으로 자리 잡는 신호탄이라며 환영했다. 개발이 재개된다 해도 이 차가 시장에 나오려면 2030년대 초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소식통 두 명은 전했다.
닛산은 이번 보도에 대한 직접적인 입장표명을 피하면서 "전동화 라인업 확대에 계속 힘을 쏟겠다"고만 했다. 그러면서 "유럽 전기차 수요가 상당한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며 "균형 잡힌 전동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캐시카이 외에도 선더랜드 공장에서는 소형 전기차 리프(Leaf)를 생산하고 있으며, 올해 4월에는 전기차 크로스오버 SUV 주크(Juke) 신모델을 선보이기도 했다.
글로벌 구조조정과 중국산 공세가 겹친 결과
이번 결정은 닛산이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대규모 구조조정과 맞물려 있다. 닛산은 지난 회계연도에 6708억 엔(약 6조 3801억 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했고, 직원 2만 명 감원과 전 세계 공장 7곳 폐쇄를 결정했다.
전체 모델 수도 56개에서 45개로 줄이기로 했다. 미국에서는 미시시피주 캔턴(Canton) 공장에서 예정했던 전기 SUV 두 종의 생산 계획을 취소하고 하이브리드 차량에 집중하기로 했다. 선더랜드 공장의 닛산 자회사 자트코(JATCO)가 추진하던 전기차 통합 파워트레인 생산 계획도 함께 백지화됐다.
외부 환경도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유럽연합(EU)이 전기차에 역내 생산 부품 비율 요건을 새로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데, 2020년 EU를 탈퇴한 영국에서 만든 차량에 '유럽산(Made in EU)' 지위를 부여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영국에서 생산하는 자동차의 약 60%가 EU로 수출된다. 영국자동차공업협회(SMMT)는 이 문제가 영국 자동차산업 전체를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저가 공세도 닛산이 전기차 투자에 신중해진 배경 중 하나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 브랜드들이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유럽 시장을 공략하면서 기존 완성차 업체들의 수익성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닛산은 이 달 중국 완성차 업체 체리자동차(奇瑞汽車·9973.HK)와 손잡고 선더랜드 공장의 생산 라인 하나를 체리 차량 위탁 생산에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에 들어갔다.
한편 영국 정부는 닛산에 새로운 모델 생산과 고용 유지를 조건으로 추가 재정 지원을 논의 중이다. 선더랜드 공장은 약 6000명을 직접 고용하며, 지난해 영국 전체 자동차 생산량의 35% 이상을 담당했다.
영국 정부는 닛산의 사업 결정에 대해서는 언급을 거부했다. 아울러 전기차 판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과징금을 부과하는 현행 규정을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조치가 실현된다면 닛산이 선더랜드에서 하이브리드 차량 생산 비중을 더 높일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요시다 타츠오 애널리스트는 "미국의 차량 관세 정책에서 일본 주요 완성차 업체 중 닛산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며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면 판매에서 상당한 손실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