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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버스·레오나르도, '유럽판 스페이스X'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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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버스·레오나르도, '유럽판 스페이스X' 추진

탈레스와 3자 우주사업 통합 승인 촉구…EU 경쟁정책 첫 시험대
유럽 항공우주 기업 에어버스, 레오나르도, 탈레스가 우주사업 통합을 추진하며 스페이스X에 맞설 유럽 대표 우주기업 구축에 나섰다. 사진=챗GPT이미지 확대보기
유럽 항공우주 기업 에어버스, 레오나르도, 탈레스가 우주사업 통합을 추진하며 스페이스X에 맞설 유럽 대표 우주기업 구축에 나섰다. 사진=챗GPT

유럽 대표 항공우주 기업 에어버스와 이탈리아 방산·항공우주 기업 레오나르도가 프랑스의 방위산업 업체 탈레스와 추진 중인 우주사업 통합에 대해 유럽연합(EU)의 승인을 촉구하고 나서 관련업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최근 미국 나스닥 상장으로 대박을 터뜨린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와 중국 우주기업에 맞설 수 있는 ‘유럽 대표 우주기업’을 만들려면 위성 제조와 우주시스템 사업을 합쳐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 이들 기업의 주장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에어버스와 레오나르도 최고경영자(CEO)들이 탈레스를 포함한 3자 우주사업 합병안에 대해 EU 집행위원회의 승인을 요구하고 있다고 23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이 합병안은 지난해 10월 합의된 것으로 내부 코드명은 ‘브로모(Bromo)’다. 에어버스, 레오나르도, 탈레스는 위성 제조와 우주시스템, 우주 서비스 사업을 하나로 묶어 범유럽 우주기업을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렌초 마리아니 레오나르도 CEO는 FT와 인터뷰에서 “유럽 기업들이 협력하지 않으면 미국 기업뿐 아니라 새롭게 부상하는 글로벌 경쟁자들에 맞설 수 있는 규모와 역량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기욤 포리 에어버스 CEO도 유럽 기업들이 기술과 역량은 갖고 있지만 규모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이 훨씬 큰 규모의 투자를 앞세워 우주산업을 키우고 있으며 스페이스X 같은 대형 기업들이 세계 시장의 주도권을 빠르게 넓히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 스타링크 충격에 흔들린 유럽 위성산업


이들의 합병 추진 배경에는 스페이스X의 급부상이 있다.

스페이스X는 저궤도 위성통신망 스타링크를 빠르게 확장하며 전통적인 위성 제조와 통신 시장을 흔들었다. 과거 대형 정지궤도 위성 중심이던 수요가 저궤도 대량 위성망으로 이동하면서 유럽 위성업체들은 변화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에어버스, 레오나르도, 탈레스는 개별 기업 단위로는 미국과 중국의 대규모 투자와 빠른 기술 전환을 따라가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우주산업이 점점 군사·방위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도 합병 논리를 강화하고 있다.

포리 CEO는 “우주 분야는 갈수록 군사와 방위 성격을 띠고 있다”며 “이런 분야에서는 통합이 필요하고 유럽의 주권이 걸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이 통합하지 못하면 우주산업에서 “챔피언스리그에서 하위 리그로” 밀려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U도 최근 우주 분야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하고 있다. 유럽 각국은 정찰과 정보, 통신을 위한 위성망을 구축해 미국 의존도를 줄이려 하고 있다. 안드리우스 쿠빌리우스 EU 우주담당 집행위원도 지난달 이 합병안에 우호적인 입장을 밝혔다.

◇ EU 새 합병심사 기준 시험대


이번 거래는 EU의 새 기업결합 심사 기조를 시험하는 사례가 될 전망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최근 기업 규모 확대가 글로벌 경쟁력에 주는 긍정적 효과를 더 많이 고려할 수 있도록 합병 심사 지침을 손질했다.

전통적으로 EU 경쟁당국은 역내 시장 경쟁이 줄어드는지를 중점적으로 봐왔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대형 기업들이 전략산업에서 몸집을 키우는 상황에서, 유럽도 일정 수준의 통합을 허용해야 한다는 산업정책적 요구가 커졌다.

에어버스, 레오나르도, 탈레스의 우주사업 통합은 이런 변화의 첫 시험대가 될 수 있다. 승인되면 EU가 역내 경쟁 축소 우려보다 글로벌 경쟁력과 산업 주권을 더 크게 평가한 사례가 된다. 반대로 제동이 걸리면 유럽의 우주산업 통합은 다시 늦어질 수 있다.

마리아니 CEO는 “이 합병은 유럽의 우주 분야 존재감과 관련성을 지키는 데 중요한 단계라는 점을 모두 알고 있다”며 승인 결과에 낙관적이라고 주장했다.

◇ 독일·스페인 업체는 경쟁 축소 우려


그러나 유럽 내 경쟁사들은 반발하고 있다. 독일 위성업체 OHB와 스페인 인드라 스페이스 등은 합병이 유럽 위성 시장의 경쟁을 줄일 수 있다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이미 EU가 합병을 승인할 경우 법적 대응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힌 OHB는 이 통합이 특정 기업에 시장 지배력을 과도하게 집중시킬 수 있다는 입장이다.

OHB는 성장 자금 확보를 위해 신주 발행으로 최대 5억1000만유로(약 8950억원)를 조달하겠다고 22일 발표했다. 이는 유럽 내 중견 우주기업들도 독자 생존과 성장을 위해 자본 확충에 나서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마리아니 CEO는 강한 유럽 대표기업을 만드는 것이 오히려 전체 공급망에 도움이 된다고 반박했다. 그는 유럽 우주 대표기업이 만들어져야 공급망도 함께 발전하고 보호될 수 있다며, 그렇지 않으면 유럽 공급망을 지키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 우주주권이 승인 여부 가를 듯


FT에 따르면 이 합병의 쟁점은 단순한 기업 규모 확대가 아니다. 유럽이 우주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독자적인 산업 기반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스페이스X는 발사체와 위성통신 시장에서 압도적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중국도 국가 주도로 우주산업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유럽 기업들은 기술 역량은 있지만 시장 규모와 투자 속도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

EU 집행위가 합병안을 승인하면 에어버스, 레오나르도, 탈레스는 위성 제조부터 우주시스템과 서비스까지 아우르는 대형 우주기업을 세울 수 있다. 이는 유럽의 우주산업 통합과 방위산업 재편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반면 승인 과정에서 조건이 붙거나 경쟁사들의 법적 대응이 본격화되면 거래 완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유럽 우주산업의 미래 경쟁력과 역내 공정경쟁 원칙 사이에서 EU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가 주목된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