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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반도체 신화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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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반도체 신화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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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CEO
글로벌 경제의 패권 전쟁이 한창이다. 그 전쟁의 중심에 반도체가 있다. 과거 석유가 자본주의의 원동력이었다면, 인공지능(AI) 시대의 원동력은 단연 메모리 반도체다.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둘러싼 글로벌 패권 다툼은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 치열한 전장의 최전선에서 무서운 기세로 질주하는 인물이 있다.

미국 최대의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테크놀로지(Micron Technology)를 이끄는 산제이 메흐로트라(Sanjay Mehrotra) 회장 겸 CEO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화려한 마케터나 재무 통이 아니다. 평생을 플래시 메모리 설계와 공정 혁신에 바친 엔지니어 출신의 전문 경영인이다. 비휘발성 메모리 분야에서만 70개 이상의 특허를 보유한 거장이다. 오늘날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USB 드라이브와 메모리카드의 원천 기술을 정립한 샌디스크(SanDisk)의 공동 창립자이기도 하다.

모래에서 추출한 실리콘 위에 기술이라는 마법을 부려 거대한 글로벌 제국을 건설한 산제이 메흐로트라 그는 1958년 인도 칸푸르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자녀들의 교육에 모든 것을 건 전형적인 인도의 중산층 가장이었다. 메흐로트라는 어린 시절부터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인도의 수많은 수재가 그러하듯 그 역시 더 넓은 세상인 미국으로의 유학을 꿈꿨다.아메리칸드림으로 향하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18세가 되던 해,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UC Berkeley) 합격 통지서를 받았으나 미국 대사관은 유학 비자 발급을 세 차례나 거부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연고도 없는 미국으로 떠난다는 점이 화근이었다.

아들의 미래가 꺾일 위기에 처하자 그의 아버지는 대사관을 직접 찾아가 영사에게 강력히 호소했다. "내 아들은 미국에 정착하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선진 기술을 배우려는 수재다. 이 아이의 재능을 막지 말라"는 아버지의 준엄한 외침은 결국 영사의 마음을 움직였고, 메흐로트라는 천신만고 끝에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UC 버클리에 입학한 메흐로트라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학업에 매진했다. 그는 전기공학 및 컴퓨터 과학(EECS) 학사를 마친 후 곧바로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메흐로트라는 버클리 졸업 이후인텔(Intel)과 SEEQ 테크놀로지 등 초기 반도체 명가들을 거치며 메모리 설계 엔지니어로서의 역량을 무섭게 쌓아 올렸다.
1988년, 메흐로트라의 인생을 바꾼 거대한 전환점이 찾아왔다. 그는 동료 엔지니어였던 엘리 하라리(Eli Harari), 잭 유안(Jack Yuan)과 뜻을 모아 글로벌 플래시 메모리의 전설이 된 '샌디스크(SanDisk, 창업 당시 이름은 SunDisk)'를 공동 창립했다. 그 즈음 반도체 시장의 주류는 전원이 꺼지면 데이터가 사라지는 D램이나, 데이터를 지우기 위해 자외선을 쬐어야 하는 불편한 EPROM이었다. 샌디스크 창업 멤버들은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저장되고 전자기적으로 자유롭게 읽고 쓸 수 있는 '플래시 메모리'의 미래 가능성에 확신을 가졌다. 이 대목에서 메흐로트라는 엔지니어링 부사장으로서 제품 개발과 공정 설계를 총괄했다. 그는 샌디스크의 핵심 기술인 멀티 레벨 셀(MLC) 플래시 메모리 상용화를 주도했다. 하나의 셀에 1비트가 아닌 2비트 이상의 데이터를 저장하는 혁신적인 기술이다. 생산 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추고 저장 용량을 극대화하는 발판이 되었다.

그의 기술적 집념 덕분에 샌디스크는 디지털카메라, MP3 플레이어, 그리고 스마트폰에 이르는 모바일 혁명의 필수품인 SD카드와 프리미엄 SSD 시장을 지배하게 되었다. 메흐로트라는 부사장과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거쳐 2011년 사장 겸 CEO의 자리에 올랐다. 샌디스크는 매출 60억 달러가 넘는 포춘 500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2016년 글로벌 스토리지 거인인 웨스턴 디지털(Western Digital)에 19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에 매각되며 실리콘밸리 창업 신화의 정점을 찍었다. 0샌디스크 매각 이후 명예로운 은퇴를 즐기던 메흐로트라에게 미국 유일의 D램 생산 기업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러브콜을 보냈다.

그때 마이크론은 혼란 그 자체였다. 오랜 기간 회사를 이끌던 마크 더칸 CEO가 은퇴를 선언했한 상황이었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한국의 양대 거인에 밀려 '영원한 3위'라는 만년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었다. 기술력에서도 한국 기업들에 1~2세대 뒤처져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ㅍ 2017년 5월, 마이크론의 새로운 수장으로 부임한 메흐로트라는 취임 일성으로 '기술 중심의 체질 개선'을 선언했다. 그는 샌디스크를 키워낸 엔지니어의 촉으로 마이크론의 고비용 구조를 혁파하고 R&D(연구개발) 투자를 대폭 늘렸다.

그의 경영 철학은 적중했다. 마이크론은 메흐로트라 취임 이후 무서운 속도로 기술 격차를 좁히기 시작했다. 업계의 허를 찌르는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2020년 마이크론은 세계 최초로 176단 낸드플래시 양산에 성공했다고 발표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거대한 충격을 안겼다. 이어 1a(4세대), 1b(5세대) D램 공정에서도 한국 기업들을 제치고 세계 최초 양산 타이틀을 거머쥐는 기염을 토했다. '만년 3위의 반란'이자, 메흐로트라의 기술 집념이 이뤄낸 독한 반전이었다.AI 시대와 HBM 잔혹극: 한국 반도체를 위협하는 호랑이메흐로트라의 진가는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와 함께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AI 가속기에 필수적으로 탑재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마이크론은 전력 효율성을 극대화한 HBM3E(5세대 HBM)를 앞세워 판도를 흔들고 있다.마이크론은 8단 및 12단 HBM3E 제품을 경쟁사보다 앞서 엔비디아에 공급하기 시작하며 글로벌 메모리 전쟁의 중심축을 미국 본토로 끌어당겼다. 이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지원법(CHIPS Act)'과 맞물려 강력한 시너지를 냈다. 메흐로트라는 미국 뉴욕주와 아이다호주에 총 1,250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메가팹(반도체 생산공장) 건설을 확정 지으며 미국 내 반도체 제조 부활의 기수 역할을 자처했다.

그는 단순히 기술개발에만 머무르지 않고, 철저한 수익성 중심의 '가치 경영'을 펼친다. 시장이 불황일 때는 과감한 감산과 비용 절감으로 버티고, 호황이 오면 고부가가치 제품인 서버용 D램과 HBM에 역량을 집중하여 마이크론의 영업이익률을 극적으로 끌어올렸다. 한국 반도체 업계가 그를 가리켜 '가장 치밀하고 무서운 경쟁 상대'라고 부르는 이유다.산제이 메흐로트라의 성공은 실리콘밸리를 장악한 인도계 글로벌 리더들의 거대한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오늘날 미국 정보기술(IT) 산업의 핵심 요직에는 인도 출신 천재들이 득실거린다. 사티아 나델라마이크로소프트 (MS)CEO (2014년 취임)와 리드 순다르 피차이알파벳 (구글 모회사)CEO (2015년 취임), 안드로이드 성공 및 AI 생태계 확장닐 모한유튜브 (YouTube)CEO (2023년 취임), 아르빈드 크리슈나 IBM CEO (2020년 취임), 팔로알토 네트웍스의 니케시 아로라(Nikesh Arora) CEO, 그리고 클라우드 네트워킹의 강자 아리스타 네트웍스의 제이시리 울랄(Jayshree Ullal) CEO 등이 모두 인도인이다.
이들 인도계 CEO들은 한결같이 지독한 가난이나 치열한 경쟁 환경을 뚫고 올라왔다. 그러면서도 하버드나 스탠퍼드 등 미국 명문 비즈니스스쿨에서 다듬어진 '경영 다각화 능력'을 겸비했다. 인도 특유의 다문화·다인종 환경에서 자라나 경청하고 조율하는 '부드러운 소통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산제이 메흐로트라 역시 이 세 가지 장점을 완벽하게 체화한 인물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