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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막히고 체코는 연다… 한국 원전 부품사의 진짜 시장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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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막히고 체코는 연다… 한국 원전 부품사의 진짜 시장은 어디인가

대형 원전은 정치적 수사, 소형 모듈 원자로는 공급망… 돈은 결국 '표준을 쥔 쪽'으로 흐른다
베트남 닌투안, 구조적 리스크 직격탄… 체코 SMR 연합군은 유럽 제조 허브 정조준
글로벌 원전 시장을 바라보는 자본의 시선이 단기 수주는 베트남이 아니라 관망이며, 중장기 공급망의 핵심은 체코 소형 모듈 원자로(SMR)라는 판단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글로벌 원전 시장을 바라보는 자본의 시선이 단기 수주는 베트남이 아니라 관망이며, 중장기 공급망의 핵심은 체코 소형 모듈 원자로(SMR)라는 판단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

글로벌 원전 시장을 바라보는 자본의 시선이 단기 수주는 베트남이 아니라 관망이며, 중장기 공급망의 핵심은 체코 소형 모듈 원자로(SMR)라는 판단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전력 대란을 타개하려는 베트남이 러시아와 손잡고 원전 재개 가속 페달을 밟았지만, 이는 정치적 수사에 가깝다. 반면 체코는 영국 롤스로이스 SMR과의 동맹을 기반으로 자국 산업계를 결집하며 유럽 SMR 제조 허브 자리를 선점하고 나섰다.

이에 단순 발전소 건설 경쟁을 넘어 차세대 에너지 표준을 쥐려는 거대 공급망 전쟁의 막이 올랐다.

닌투안의 늪, 3대 구조적 리스크 갇힌 베트남… 5년 단기 완공이라는 정치적 환상

베트남 정부가 제시한 '2031년 첫 원전 가동' 카드는 날카로운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 레민흥 베트남 총리는 2026617일 러시아 카잔에서 열린 러시아-ASEAN 정상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닌투안 1호기 건설 추진에 합의했다.

지난 2016년 국가부채 부담으로 중단했던 프로젝트를 10년 만에 공식 재개하며 러시아 로사톰의 기술력을 빌려 공기를 최대한 단축하겠다는 계산이다.

26(현지시각) 영국 BBC 뉴스 보도를 보면, 글로벌 투자은행(IB)과 에너지 분석가들은 베트남 원전이 단순한 일정 지연을 넘어 세 가지의 치명적인 구조적 리스크가 얽혀 있는 늪이라고 평가한다.

첫째는 착공 리스크다. 베트남 당국은 2026630일까지 부지 인도를 완료하겠다고 확약했으나, 이달 중순 기준 토지 회수율은 22% 선에서 멈췄다.

사업 표류 기간 발생한 무허가 토지 매매와 지적 공부의 오차 탓에 행정 절차가 완전히 꼬인 결과다. 이주 대상 주민 역시 2015년 계산보다 13.4% 늘어난 1461가구에 달해 보상금 갈등의 골이 깊다.
둘째는 운영 리스크다. 60년에서 80년에 이르는 원전 수명 주기 동안 안전을 책임질 4000명 규모의 전문 인력 인프라가 현지에 전무하다.

일본 정책연구대학원대학(GRIPS) 히산오리 네이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원전 강국인 일본과 미국조차 착공 후 완공까지 최소 7년이 소요되며, 착공 전 규제 기관의 인허가 심사에만 3년이 추가로 걸린다"고 지적했다. 부지 정리를 올해 끝내고 당장 첫 삽을 뜬다 해도 가동까지 남은 시간은 5년에 불과해 상업 운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진단이다.

셋째는 공급망 폐쇄 리스크다. 베트남이 러시아 로사톰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제3국 부품사들이 진입할 틈새가 원천 차단된다.

싱가포르 전략에너지자원센터 빅터 니안 공동설립자의 분석처럼, 2031년이라는 시점은 실무적 타당성보다 국가적 자원을 쥐어짜기 위한 정치적 슬로건에 가깝다. 자본시장 전문가들이 베트남 원전 프로젝트를 실질적인 부품 계약이 체결되는 시장이 아니라 단기 변동성을 키우는 뉴스 이벤트로 치부하는 이유다.

다만 베트남 정부가 이처럼 무리한 속도전을 감행하는 배경에는 뼈아픈 경제적 조급증이 자리한다.

지난 2023년 발생한 북부 지역의 극심한 전력난으로 글로벌 제조 기업들이 타격을 입자, 세계은행(WB)은 베트남이 약 14억 달러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을 보았다고 추산했다.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 실패와 전력 수입 의존도 심화 속에서 원전을 유일한 에너지 안보의 탈출구로 낙점한 셈이다.

프라하의 반격, 표준과 허브 선점하는 체코… 기회와 불확실성 사이의 SMR 게임체인저


베트남이 대형 원전의 행정 늪에 빠져 공전하는 사이, 체코는 소형 모듈 원자로 시장에서 극도로 실리적인 행보를 보이며 게임체인저로 부상하고 있다.

체코 전력공사(CEZ)는 지분 약 20%를 직접 확보한 영국의 롤스로이스 SMR과 손잡고 테멜린 원전 부지에 자국 최초의 소형 모듈 원자로 건설을 확정했다. 이어 카르비나 인근 디엔마로비체 지역의 후속 프로젝트 계약 체결도 이번 여름 중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

지난 25일 체코 경제지 e15 보도에 따르면, 체코가 단순한 원전 도입국을 넘어 유럽 소형 모듈 원자로의 표준 및 부품 허브 후보로 꼽히는 이유는 명확하다.

유럽연합(EU)의 친환경 경제활동 기준인 'EU 택소노미' 편입 혜택과 더불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긴박해진 탈러시아 에너지 안보 강화, 그리고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따른 전력 공백 우려가 한데 맞물려 강력한 정책적 드라이브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날 25일 프라하에서 개최된 공급망 설명회에는 체코의 핵심 기계공학, 엔지니어링, 설계 기업 60여 개사가 총출동해 부품 국산화 협의에 착수했다. 체코 경제상공회의소는 자국 기업들이 글로벌 핵 공급망의 1차 협력사로 진입할 수 있도록 유관 부처와 함께 국제 스탠더드 인증 지침을 선제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다만 자산운용사 전문가들은 시장의 균형 잡힌 시각도 함께 주문한다. 롤스로이스 SMR은 현재 설계 승인 절차가 진행 중인 단계로, 전 세계적으로 아직 상업적 가동 실적이 없다. , 시장 선점의 기회는 매우 크지만, 기술적·규제적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초기 단계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분석이다.

체코 전력산업연합회 요세프 코트르바 집행위원장은 "수십 년간 축적한 체코의 정밀 기계공학과 원전 특수 부품 제조 역량은 유럽 모듈형 원자로 시장에서 대체 불가능한 경쟁 우위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규제 심사가 까다롭고 대규모 자본이 묶이는 대형 원전과 달리, 소형 모듈 원자로는 공장에서 모듈 단위로 대량 생산해 현장에서 조립하므로 자본 회수가 빠르고 진입 장벽이 낮다는 점을 영악하게 파고든 결과다.

한국의 전략, '수출 모델'에서 '현지 생산'으로… 업계가 제시하는 3단계 생존 전략


글로벌 원전 시장의 급변 격랑 속에서 국내외 에너지 전담 연구소와 대형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는 한국 기자재·부품 업체들이 기존의 완제품 수출 모델에서 현지 생산 모델로의 전환을 뼈대로 하는 단계별 출구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단기 전략은 베트남 시장에 대해 철저히 정책 추이를 지켜보는 관망세를 유지하는 방향이다. 올 하반기 확정될 차기 전력 수급 기본계획(SPP8) 수정안의 향방과 독자적 규제 감독 기관 설립 여부를 모니터링하며 리스크를 회피하는 전략이 우선이다.

중기 전략으로는 체코 시장을 겨냥해 현지 60개 기자재 연합군과의 조인트벤처(JV) 설립, 지분 투자, 유럽 인증 획득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체코를 유럽 진출의 우회 생산 기지로 삼는 합작 투자가 가장 확실한 돌파구라는 설명이다.

궁극적인 장기 전략은 자체 소형 모듈 원자로 노형 고집을 넘어, 글로벌 표준화 속도가 빠른 영·체코 연합 등 주도적인 소형 모듈 원자로 플랫폼에 핵심 부품 공급사로 깊숙이 참여하는 생태계 융합 전략으로 꼽힌다.

에너지 학계와 시장 분석가들은 국내 기자재 업계 중에서도 기존 대형 원전 납품 경험이 풍부하고 유럽 기술 인증(ASME, EN )을 선제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고정밀 밸브, 펌프, 배관 및 열교환기 제조사들이 이 같은 체코형 공급망 구조에 가장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유력한 수혜 후보군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투자 판단을 가르는 4가지 핵심 지표


원전 시장의 장기적인 흐름과 투자 방향을 결정지을 핵심 지표는 네 가지 거시적 트리거(Trigger)의 전개 양상에 따라 구체화된다.

가장 먼저 주시해야 할 지표는 베트남 닌투안 부지의 실질적인 토지 인도율이다. 이는 정부의 정치적 수사를 넘어 실제 착공이 가능한 시점을 판가름하는 핵심 변수로 작용한다.

두 번째는 올여름 계약 체결을 앞둔 체코 디엔마로비체 소형 모듈 원자로(SMR)의 메가와트(MW)당 건설 단가다. 이 수치는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SMR의 실질적인 상업적 경제성을 검증할 첫 번째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전망이다.

세 번째로 베트남 원자력법 개정안의 규제 수위를 살펴야 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기준에 맞춘 이 법안의 문턱에 따라 러시아 외에 한국을 포함한 외국 기업의 진입 장벽 높이가 최종 결정된다.

마지막 분수령은 영국과 체코 연합이 추진하는 유럽 공동 노형 인증의 통과 속도다. 이 인증을 얼마나 빠르게 획득하느냐에 따라 이들이 유럽 SMR 시장의 기술 표준을 선점할 수 있을지 그 여부가 판가름 난다.

그 패권을 가를 표준은 현장이 아니라 유럽의 공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