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판매 300마일 전기차 2020년 4종서 2025년 43종으로 증가
BMW i3·iX3 등 400마일대 신차 예고…가격·배터리 비용이 관건
BMW i3·iX3 등 400마일대 신차 예고…가격·배터리 비용이 관건
이미지 확대보기전기차 주행거리 경쟁의 기준선이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한때 고가 전기차의 상징이던 300마일(약 483km) 주행거리가 미국 시장에서 사실상 새 기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제는 400마일(약 644km) 전기차가 다음 대중화 단계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전기차 전문매체 인사이드EV는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300마일 주행거리가 빠르게 보편화되고 있으며 BMW와 볼보 등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400마일급 신차를 준비하고 있다고 28일(현지시각) 보도했다.
◇ 테슬라 모델S가 연 300마일 시대, 이제는 보편화
당시만 해도 테슬라가 아닌 전기차 상당수는 한 번 충전으로 100마일대(약 160~320km) 주행거리에 머물렀다. 그러나 배터리 가격 하락과 전기차 기술 발전, 완성차 업체 간 경쟁이 맞물리면서 300마일은 더 이상 일부 고가 모델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됐다.
인사이드EV에 따르면 미국에서 판매되는 2025년형 전기차 가운데 미국 환경보호청(EPA) 기준 300마일 이상 주행거리를 갖춘 모델은 43종에 이른다. 2020년에는 4종에 불과했다. 올해 말에는 제조사들의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 미국 시장의 300마일 이상 전기차가 60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 모델의 주행거리도 꾸준히 늘고 있다. 포르쉐 타이칸은 2019년 출시 당시 주행거리가 200마일(약 322km)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지만 현재는 최대 318마일(약 512km)까지 늘었다. 토요타 bZ4X도 초기에는 최대 252마일(약 406km)에 그쳤으나, 부분변경 모델은 314마일(약 505km)까지 주행거리가 늘었다.
◇ 300마일 전기차 가격도 크게 낮아져
주행거리뿐 아니라 가격 장벽도 낮아졌다. 2017년 테슬라 모델3가 4만4000달러(약 6785만원)에 출시되면서 300마일 전기차 가격은 한 단계 내려갔다. 당시 기준으로는 장거리 전기차의 진입 가격을 수만달러 낮춘 사건이었다.
이후 쉐보레 이쿼녹스 EV는 2024년 319마일(약 513km) 주행거리를 3만3495달러(약 5165만원)에 제시하며 또 다른 이정표가 됐다. 연방 전기차 세액공제가 적용되던 당시에는 실구매가가 3만달러(약 4626만원) 아래로 내려갈 수 있었다.
최근에는 2026년형 닛산 리프가 303마일(약 488km) 주행거리를 2만9990달러(약 4624만원)부터 제공하면서 가격 경쟁을 더 끌어내렸다. 2026년 물가 기준으로 환산하면 2017년 모델3의 300마일 전기차 진입 가격은 6만달러(약 9250만원)에 가까웠지만 현재는 사실상 절반 수준으로 내려온 셈이다.
스바루 언차티드, 가격이 크게 할인된 현대차 아이오닉5, 3만6990달러(약 5704만원)짜리 테슬라 모델3 등 4만달러 미만의 300마일급 전기차도 늘고 있다. 장거리 전기차가 고소득층의 프리미엄 상품에서 더 넓은 소비자층이 선택할 수 있는 차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 400마일 전기차, 아직은 고가 중심
문제는 400마일 전기차가 300마일처럼 빠르게 보편화될 수 있느냐다. 현재까지 400마일 이상 전기차는 대부분 두 가지 유형에 머물러 있다. 하나는 공기역학 성능이 뛰어난 대형 고급 세단이고, 다른 하나는 대형 배터리를 실을 수 있는 고급 SUV나 픽업트럭이다.
테슬라 모델S는 2020년 EPA 기준 400마일 이상 주행거리를 인정받은 첫 전기차가 됐다. 루시드 에어는 2021년 500마일(약 805km) 장벽을 넘기며 주행거리 경쟁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그러나 루시드 에어,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IQ, 리비안 R1S, 쉐보레 실버라도 EV 같은 400마일급 차량은 대부분 고가 모델이다.
아직 400마일 전기차에는 모델3나 이쿼녹스 EV처럼 대중화를 촉발한 ‘가격 파괴형’ 모델이 없다. 이 때문에 400마일이 300마일처럼 빠르게 보편화될지는 불확실하다.
다만 변화의 조짐은 있다. BMW iX3와 볼보 EX60은 미국 자동차 시장의 중심인 중형 SUV급에서 400마일 안팎의 주행거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BMW는 iX3 가격을 6만달러(약 9250만원) 수준으로 제시했고 400마일급 볼보 EX60은 약 7만달러(약 1억790만원)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2027년 미국 출시가 예상되는 BMW i3도 주목된다. 3시리즈의 전기차 버전으로 개발되는 이 모델은 EPA 기준 440마일(약 708km) 주행거리를 목표로 한다. 가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미국 시장에서는 약 5만5000달러(약 8480만원) 수준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 배터리 구조 혁신이 주행거리 늘려
400마일급 신차들이 주행거리를 끌어올릴 수 있는 배경에는 배터리 구조 변화가 있다. BMW iX3와 i3, 볼보 EX60 등은 배터리 셀을 모듈 단위로 묶은 뒤 팩에 넣는 기존 방식 대신, 셀을 배터리 팩에 직접 넣는 셀투팩 구조를 채택한다.
이 방식은 중간 구조물을 줄여 무게를 낮추고 에너지 밀도를 높이는 데 유리하다. 배터리 팩을 차체 바닥 구조의 일부로 활용하는 설계도 주행거리 향상에 도움이 된다. 같은 크기와 무게에서 더 많은 에너지를 담거나, 비슷한 에너지를 더 가볍게 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기술 발전만으로 400마일 전기차가 곧바로 대중화되는 것은 아니다. 배터리 비용 하락 속도가 과거보다 둔화하고 있고 완성차 업체들은 더 긴 주행거리와 더 낮은 가격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 저가형은 LFP, 고급형은 장거리 배터리로 갈릴 수도
향후 전기차 시장은 주행거리 기준으로 더 뚜렷하게 나뉠 가능성도 있다. 전 세계 배터리 비용 하락에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확산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LFP 배터리는 니켈 함량이 높은 배터리보다 가격이 낮고 내구성이 좋지만 에너지 밀도는 상대적으로 낮다.
이 때문에 저가형 전기차는 LFP 배터리를 사용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대신 주행거리가 300마일 안팎에 머물고 고급형 전기차는 더 비싼 고에너지밀도 배터리로 400마일 이상을 제공하는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
차체 크기도 한계다. 닛산 리프나 쉐보레 이쿼녹스 EV 같은 비교적 작은 차에 400마일 주행거리를 넣으려면 배터리 에너지 밀도의 추가 혁신이 필요하다.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 개선이나 전고체 배터리 같은 차세대 기술이 변수로 거론되는 이유다.
전고체 배터리는 초기에는 고가 차량에 먼저 적용될 가능성이 크지만, 장기적으로는 전기차 주행거리와 충전 속도 경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기술로 평가된다.
◇ 충전 인프라 확산 땐 400마일 필요성 줄 수도
또 다른 변수는 소비자들이 실제로 얼마나 긴 주행거리를 필요로 하느냐다. 충전 속도와 충전 인프라가 빠르게 개선되면 소비자가 굳이 큰 배터리를 탑재한 400마일 전기차를 고집하지 않을 수도 있다.
비야디는 최근 10%에서 거의 완충 수준까지 10분 안팎에 충전할 수 있는 기술을 공개했다. 미국의 속 충전망도 지난해 30% 성장한 것으로 집계됐다. 충전기가 더 촘촘해지고 충전 시간이 내연기관차 주유 시간에 가까워지면, 긴 주행거리 자체의 가치는 줄어들 수 있다.
미국 운전자의 하루 평균 주행거리는 약 30마일(약 48km) 수준이다. 300마일 전기차라면 완전히 방전하거나 100%까지 충전하지 않는 일반적인 사용 방식을 감안해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충전하면 충분한 경우가 많다.
장거리 주행이 필요한 순간은 주로 여행이나 장거리 출장 때다. 300마일 안팎 주행거리에 충전 속도가 빠른 전기차라면 고속도로에서 몇 시간 달린 뒤 20~30분 충전하고 다시 출발하는 방식으로 충분히 운용할 수 있다. 장거리 여행을 1년에 몇 차례만 하는 소비자라면, 충전소에서 10~20분을 아끼기 위해 수천달러를 더 내고 대형 배터리를 선택할 필요가 크지 않을 수 있다.
◇ 소비자는 ‘만약의 상황’까지 산다
그럼에도 400마일 전기차 수요는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일상적인 필요만 보고 차를 사지는 않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캠핑, 장거리 여행, 혹한기 주행, 충전기 고장 같은 ‘만약의 상황’까지 고려해 더 큰 차와 더 긴 주행거리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인사이드EV에 따르면 미국 도로에 혼자 또는 두 명만 탄 대형 픽업트럭과 대형 SUV가 많은 것도 같은 이유다. 소비자는 월 납입액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때로는 그 범위를 넘어서는 수준까지 더 큰 차와 더 넉넉한 성능을 원한다. 전기차 주행거리도 예외가 아니다.
결국 400마일 전기차는 당장 모든 차급의 표준이 되기보다는 고급형과 중대형 모델을 중심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300마일 안팎은 대중 전기차의 기본 기준이 되고 400마일 이상은 장거리·고급형 전기차의 차별화 요소로 자리 잡는 흐름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