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발 호르무즈 봉쇄 4개월, 전 세계 해상 원유 20% 마비로 공급망 충격
내러티브에서 실적 검증대로 이동하는 AI…고금리·양적긴축 체제 속 부채 임계점
내러티브에서 실적 검증대로 이동하는 AI…고금리·양적긴축 체제 속 부채 임계점
이미지 확대보기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탄과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으로 버텨온 세계 경제가 이란 전쟁이라는 대형 악재를 만났다. 다행히 최근 미국과 이란의 전격적인 협상이 시작되면서 호르무즈 해협에 묶였던 유조선들이 대부분 통과하는 등 극단적인 물류 마비 사태는 이제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해협 봉쇄가 남긴 상흔과 글로벌 금융 시장의 구조 취약성은 여전히 세계 경제의 행운이 다했다는 경고를 뒷받침한다. 이에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글로벌 경제가 팬데믹 이후 최대 고비를 맞았다고 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석유 수송로 폐쇄 4개월…근원 인플레이션 자극
이란 전쟁 여파로 세계 주요 석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폐쇄된 지 4개월이 지났다. 이곳은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핵심 요충지다. 이번 봉쇄로 하루 평균 수백만 배럴 규모의 원유 공급이 차단됐다. 공급 물량 기준으로는 현대 에너지 시장에서 가장 큰 충격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러한 유가 상승은 운송·전력·석유화학 전반의 비용 구조를 자극하며 근원 인플레이션까지 확산되는 경로를 갖는다.
그동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상업용 원유 재고와 미국의 전략비축유(SPR) 방출로 충격을 완화해 왔다. 하지만 OECD 상업용 재고 일수가 팬데믹 이전 평균을 크게 밑돌며 완충 여력이 축소됐다.
잠잠하던 물가가 다시 고개를 들면서 세계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 재발화 차단에 비상이 걸렸다. 팬데믹 직후 급등에 이어 물가가 두 번째로 목표치를 벗어난다면, 시장의 물가 안정 기대 심리가 무너져 중앙은행의 신뢰도는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실적 검증대 선 AI…임계 구간 마주한 금융 시장
그동안 세계 경제 성장을 견인한 AI 투자 붐도 변곡점을 맞았다. 시장의 관심은 미래 성장성에서 구체적인 수익성 검증 단계로 이동 중이다. 빅테크 기업들의 설비투자(CapEx) 증가율이 둔화할 조짐을 보이고, 막대한 투자 대비 투하자본이익률(ROIC)과 마진 압박이 커진 탓이다.
특히 일부 빅테크의 AI 관련 투자 회수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자본 효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최신 연례 경제 보고서에서 치열한 경쟁과 기대 이하의 수익률이 맞물려 투자가 급격히 붕괴했던 과거 혁신 기술의 사례가 재현될 가능성을 짚었다.
더 큰 문제는 금융 시장의 취약한 연결 고리다. 현재 전 세계 민간 부채 규모는 글로벌 금융 위기 직전인 2007년 수준에 육박한다. 시장의 본질적인 위험은 부채의 절대 규모보다 레버리지와 유동성 구조에 있다. 위험 프리미엄이 낮아진 상태에서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비은행 금융 중개업(섀도우 뱅킹)이 급성장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작은 가격 변동이 아니라 레버리지 포지션이 버티지 못하는 임계 구간에 진입할 때다. AI 투자 둔화로 자산 가격이 하락하면, 고레버리지 투자자들의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이 발생하고 이는 국채 시장의 유동성 급감과 채권 가격 폭락으로 이어지는 연쇄 전염 경로를 밟게 될 우려가 있다.
‘고금리+양적긴축’ 체제의 경고…재정과 금리의 정면 충돌
특히 고소득 국가 정부들은 재정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 부채 비율은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수준까지 치솟았다. 유럽 국가들은 높은 에너지 가격과 고령화 비용 탓에 구조 재정 적자가 심화하고 있다. 시장의 명목 금리와 실질 금리는 이미 글로벌 금융 위기 이전 수준을 웃돈다. 저인플레이션과 제로 금리 시대가 지나갔다는 진단이 나온다.
정부 부채가 과거보다 위험한 이유는 금리 체제의 근본 변화에 있다. 과거에는 저금리 환경 속에서 중앙은행이 국채를 매입하며 버텼지만, 지금은 고금리와 양적긴축(QT)이 동시에 진행되는 환경이다. 부채의 성격 자체가 훨씬 취약해진 셈이다. 국채 시장의 금리와 정부의 재정 정책이 정면 충돌하는 구간에 진입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BIS는 정부 자금 조달에서 헤지펀드의 역할이 커진 점을 주요 취약점으로 꼽았다. 헤지펀드는 높은 레버리지를 활용하기 때문에, 채권 가격이 떨어지면 포지션을 급격히 청산한다. 이 경우 2022년 영국 채권 시장을 마비시켰던 ‘트러스 쇼크’ 같은 국채 시장 패닉 사태가 글로벌 규모로 증폭될 가능성이 있다.
'만기 불일치'가 부르는 스테이블코인의 디지털 뱅크런
중앙은행들의 대처 능력은 과거보다 제한적이다. 정부 부채 부담으로 통화 정책의 자율성이 묶여 있고, 금융 시장 혼란을 막기 위해 구원투수로 나설 경우 자산 시장의 도덕적 해이만 심화한다.
여기에 스테이블코인 확산이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부상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은 국채나 상업어음(CP) 같은 준비자산을 보유하며 화폐와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단기 환매 요구와 중장기 채권 중심의 준비자산 간 만기 불일치가 위기 시 취약성을 키운다.
환매 압력이 쏟아질 때 준비자산의 유동성이 막히면 순식간에 디지털 뱅크런으로 이어진다. BIS는 2022년 가상자산 시장을 뒤흔든 테라·루나(UST) 사태처럼, 실제 금융 위기가 닥쳤을 때 스테이블코인이 화폐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시스템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불확실성 속 갈림길…정치 협상과 유가 안정세가 핵심 변수
국제결제은행(BIS)은 연례 보고서 분석을 통해 글로벌 매크로 환경의 회복력이 앞으로 금융 시스템의 탄력성 테스트를 거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만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충격은 최근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미국과 이란이 본격적인 협상에 착수하면서, 한때 폭등했던 국제 유가는 7월 1일 기준 배럴당 68(두바이유)~72달러(브렌트유)선까지 하락하며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물론 양국의 대화가 다시 교착 상태에 빠진다면 유가가 재차 반등할 불씨는 남아 있다. 하지만 극단적인 공급 차단 시나리오를 현 시점에서 전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시장의 시선은 호르무즈 해협의 완전한 통행 재개 시점과 원유 비축량 변화로 이동하고 있다.
앞으로의 경제 향방은 지정학 협상의 타결 여부와 유가의 하향 안정화 속도에 달려 있다. 투자자들은 에너지 가격의 안정세가 근원 인플레이션 하락으로 이어지는지 점검해야 한다. 이와 함께 빅테크 기업들의 AI 설비투자 유지 여부와 고금리 압박에 따른 주요국 국채 금리 변동 추이를 핵심 지표로 삼고 자산 배분 전략을 유연하게 조정해야 한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