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마이클 버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하며 전 세계에 이름을 떨쳤다. 그의 이 영웅적 스토리가 영화 '빅쇼트(The Big Short)'로 나오기도 했다. 그 마이클 버리가 이번에는 '인공지능(AI)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류의 미래를 바꿀 것이라는 대중의 종교적 신념에 대해 반기를 든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자산과 명성을 걸고 역베팅(공매도)을 선언했다. 마이클 버리는 1971년 6월 1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서 태어났다. 두 살이 되던 해, 그는 안구암의 일종인 망막모세포종을 진단받았다. 수술 과정에서 왼쪽 눈을 완전히 적출해야 했다. 이후 평생 인공 안구를 착용하며 살아가게 된다.
이 신체적 결함은 소년 마이클 버리의 성격을 형성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왼쪽 눈의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은 사춘기 소년에게 극심한 대인기피증과 사회적 소외감을 안겨주었다. 타인과 시선을 마주하는 것조차 두려워했던 그는 인간관계 대신 책과 데이터의 세계로 도피했다. 훗날 성인이 된 버리는 자신이 아스퍼거 증후군(Asperger Syndrome)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이 증후군의 특징인 '특정 분야에 대한 과도한 몰입'과 '타인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극단적 객관성'은 훗날 그가 월가의 집단 광기에 전염되지 않고 독자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었던 강력한 무기가 된다.
그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UCLA)에서 경제학과 의학예과(Pre-med)를 동시에 전공했다. 이후 밴더빌트 대학교 의과대학원에 진학하여 의학박사(M.D.) 학위를 취득했다. 졸업 후 스탠퍼드 대학교 병원에서 신경과 레지던트 과정을 밟으며 촉망받는 의학도의 길을 걸었다. 병원 업무로 녹초가 된 상태에서도 밤마다 금융 시장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투자 아이디어를 정리하여 인터넷 포럼(Silicon Investor)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당시 그가 작성한 심층적인 가치투자 분석 글은 월가의 전문 투자자들 사이에서 전설적인 호평을 받았다. 의학이라는 복잡한 유기체를 분석하던 시각으로 기업의 재무제표를 해부하는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이들이 늘어났고, 결국 버리는 2000년 레지던트 과정을 중도 하차하며 청진기를 내려놓고 전업 투자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마이클 버리를 불멸의 레전드로 만든 사건은 바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다. 2005년 무렵, 버리는 미국 주택 시장의 기저에 흐르는 기괴한 이상 징후를 포착했다. 대출 자격이 없는 신용불량자들에게까지 무분별하게 주택 담보 대출이 이뤄지고, 이를 기반으로 짜 맞춰진 부실 채권(MBS)과 부채담보부증권(CDO)이 유량 등급(AAA)으로 둔갑해 유통되는 거대한 사기극을 목격한 것이다. 버리는 주택 시장의 붕괴에 베팅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당시 금융시장에는 주택 시장 하락에 베팅할 수 있는 마땅한 상품이 없었다. 이에 버리는 직접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와 도이치뱅크를 찾아가 주택 채권이 부도날 경우 보상받는 일종의 보험 상품인 신용부도스왑(CDS, Credit Default Swap) 개설을 요구했다. 은행가들은 대마불사의 상징인 미국 주택 시장이 무너질 리 없다며 속으로 버리를 비웃으며 계약에 응했다.
파국이 오기 전까지의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매달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CDS 프리미엄(보험료)이 지출되면서 펀드의 수익률은 곤두박질쳤다. 투자자들은 버리가 미쳤다며 자금을 회수하겠다고 폭동을 일으켰고, 그는 투자자들의 환매 요구를 강제로 동결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며 사면초가에 몰렸다. 2007년 하반기, 마침내 미국의 부동산 거품이 서서히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리먼 브라더스와 베어스턴스가 파산하고 월가가 비명을 지르던 2008년, 마이클 버리는 홀로 환호했다. 이 세기의 베팅으로 버리는 개인적으로 1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고, 그의 펀드 투자자들에게는 총 7억 달러 이상의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었다.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대담하고 정확했던 '역베팅'의 성공이었다.
마이클 버리에게도 뼈아픈 실패의 기록들이 존재한다. 그의 가장 큰 약점은 '지나치게 빠른 타이밍'과 '시장의 회복 탄력성에 대한 과소평가'에 있었다. 그는 버블의 존재를 정확히 짚어내지만, 그 버블이 광기에 의해 얼마나 더 부풀어 오를 수 있는지, 그리고 정부의 유동성 공급이 시장을 어떻게 왜곡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종종 계산을 그르쳤다. 버리는 2020년 말부터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테슬라의 주가 상승을 거대한 거품으로 규정했다. 그는 테슬라가 거두는 이익에 비해 시가총액이 지나치게 비대하며, 탄소배출권 판매 외에는 실질적인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2021년 초 기준 약 5억 3천만 달러 규모의 테슬라 풋옵션을 매수하며 전면전을 선언했다. 결과는 버리의 참패였다. 글로벌 유동성 랠리와 팬덤에 가까운 개인 투자자(개미)들의 강력한 매수세에 힘입어 테슬라 주가는 버리의 예측을 비웃듯 폭등했다. 결국 버리는 2021년 3분기,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고 테슬라 숏 포지션을 전량 청산하며 백기를 들어야 했다. 시장의 광기가 자신의 펀드가 버텨낼 수 있는 시간보다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월가의 격언을 몸소 체감한 순간이었다.
버리는 2023년 2분기에도 S&P 500과 나스닥 100 지수를 추종하는 ETF에 각각 8억 6천만 달러, 7억 4천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풋옵션 베팅을 감행했다. 인플레이션 압박과 연준의 고금리 정책으로 인해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또 오판이었다. 엔비디아를 필두로 한 빅테크 기업들의 깜짝 실적과 AI 랠리가 이어지면서 미국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해 나갔고, 버리는 그해 말 소리 소문 없이 포지션을 정리하며 또 한 번 막대한 프리미엄 손실을 입었다. 이로 인해 시장에서는 "버리의 시계는 항상 고장 나 있다", "양치기 소년이 되었다"는 조롱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동안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은 대규모 데이터 센터를 증설하며 막대한 자금을 AI에 쏟아부었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인프라 유지 비용에 비해 실제 AI 서비스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미미한 수준이다. 최근 빅테크 기업들이 비용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고성능 모델 대신 저비용 옵션을 잇달아 출시하는 현상은, 시장이 거대한 가격 저항선(스티커 쇼크)에 직면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이 버리의 시각이다. 미국 정부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앤스로픽(Anthropic)의 차세대 '미토스'급 AI 모델 출시에 제동을 건 사건은 버리에게 강력한 확신을 주었다. 기술의 발전이 시장의 기대만큼 무제한으로 뻗어나갈 수 없으며, 규제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언제든 꺾일 수 있다는 리스크를 포착한 것이다.
버리가 '종말의 시작'이라고 단언하며 숏 포지션을 확대한 결정적 계기는 역설적이게도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초대형 투자 발표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5000억 달러(약 776조원)를 투입해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시장은 환호하며 나스닥을 끌어올렸다.버리는 서브스택을 통해 이를 매섭게 비판했다. 역사적으로 모든 버블의 정점에서는 수요를 과대예측한 공급자들의 '치명적인 과잉 투자'가 일어났다는 이유에서다. AI 수요가 조금이라도 둔화되는 순간, 이 막대한 투자 규모는 고스란히 기업들의 고정비 부담과 재고 폭탄으로 돌아와 반도체 산업 전체를 파멸로 이끌 것이라는 징후로 해석한 것이다.
그는 반도체 지수(SOXX)가 고점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폭락하는 풋옵션을 매수하기 시작했다. 데이터 센터 증설의 수혜주였던 캐터필러, 그리고 자율주행이라는 AI 환상에 기대어 있는 테슬라(목표주가 416.22달러 제시)를 동시에 압박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해부터 이어온 엔비디아의 '순환 금융(고객사에게 돈을 빌려주어 자사 제품을 사게 만드는 방식)'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며 공매도 포지션을 확대했다. 그의 베팅은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있다. 팔란티어는 그의 경고 이후 40% 폭락하며 버리의 안목을 증명했고, 철옹성 같던 엔비디아 역시 고점 대비 5% 내외의 조정을 받으며 균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마이클 버리는 결코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투자자가 아니다. 그의 수익은 타인의 파멸과 시장의 비명 속에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장에서 그와 같은 '냉소적 관찰자'의 존재는 필수불가결하다. 모두가 탐욕에 취해 가속 페달을 밟을 때, 브레이크의 파열 가능성을 경고하는 누군가는 있어야 지 시스템의 완전한 붕괴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의사 시절 배운 가장 중요한 원칙은 '환자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진단하는 것'이었다. 그는 시장이라는 거대한 환자가 지금 'AI'라는 환각제에 취해 고통을 잊고 있다고 진단한다. 인공지능이라는 신인류의 탄생이 버리의 해묵은 가치 진단법을 무력화시켜버릴 것인지 아니면 버리가 또 한번 대박을 터드릴 것인지 전세계가 외눈박이 공매도 저승사자를 주목하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