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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AI 규제론, 허가제는 막고 첨단모델은 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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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AI 규제론, 허가제는 막고 첨단모델은 통제

퇴임 AI 고문 크리슈난 “AI판 FDA 없을 것”
오픈AI·앤스로픽 모델 보류는 국가안보 예외로 설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인공지능(AI)에 대해 중앙집중식 규제기관이나 정식 허가제를 만들지 않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다만 첨단 AI 모델이 사이버 안보나 국가 기반시설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될 경우 정부가 출시를 지연시키거나 접근을 제한하는 방식의 개입은 이어질 전망이다. 규제 완화를 내세우면서도 최전선 모델에 대해서는 국가안보 명분의 선별적 통제를 병행하는 구조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퇴임한 스리람 크리슈난 전 백악관 AI 정책 고문이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AI에 대해 식품의약국(FDA)식 중앙 규제기관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크리슈난 전 고문은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부담스럽고 관료적인 규제를 반대해왔다며 이같이 말했다. AI 모델을 출시하기 전에 변호사팀을 동원해 허가를 받아야 하는 체제는 AI 혁신에 모래를 뿌리는 일이라는 취지다.

◇“AI판 FDA는 없다”…실리콘밸리 규제 우려 차단

크리슈난 전 고문의 발언은 실리콘밸리의 가장 큰 우려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오픈AI, 앤스로픽, 구글, 메타플랫폼스 등 AI 기업들은 첨단 모델 개발 경쟁에서 정부 허가제가 도입될 경우 출시 속도가 느려지고 중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최첨단 AI 모델을 사전에 승인받아야 하는 체제가 생기면 사실상 정부가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크리슈난 전 고문은 트럼프 행정부가 그런 방식으로 기업을 고르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이는 백악관 AI·가상자산 책임자를 맡았던 데이비드 색스 등 트럼프 주변 실리콘밸리 인사들의 규제 최소화론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주정부 차원의 강한 AI 규제도 반대해왔다. 캘리포니아 등 개별 주가 AI 안전규칙을 강화하면 미국 전체의 AI 혁신 속도가 떨어지고 중국과의 기술 경쟁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는 논리다.

◇오픈AI·앤스로픽 모델 보류는 예외적 개입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실제 움직임은 단순한 무규제와는 거리가 있다.

미국 정부는 최근 국가안보 우려를 이유로 앤스로픽의 고성능 모델 ‘미소스’ 접근을 제한했고 오픈AI의 최신 모델 GPT-5.6 출시도 지연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최첨단 모델이 사이버 공격 능력 강화나 기반시설 위협에 악용될 수 있다는 판단이 배경이다.

크리슈난 전 고문은 정부가 이런 결정을 매우 신중하게 내렸다고 설명했다. 특히 아마존이 모델 취약점 문제를 제기했고 JD 밴스 부통령 등 고위 인사들도 핵심 기반시설 보호 문제를 우려했다고 전했다.

이 대목은 트럼프 행정부 AI 정책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공식 허가제나 상설 규제기관은 만들지 않겠지만, 개별 모델이 안보 위험을 낳을 수 있다고 판단되면 행정권과 수출통제 수단을 동원해 출시를 늦출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 자율감시 기구 구상도 부상

크리슈난 전 고문은 장기적으로 첨단 AI 모델 감독의 상당 부분을 업계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제시한 방식은 대형 기술기업, 반도체 업체, 보안기업이 참여하는 자율적 검증 기구다. 이 기구가 정보기관이나 전쟁부와 협력해 모델 취약점과 안보 위험을 점검하는 구조다.

이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과도 연결된다. 해당 명령은 미국 정부가 첨단 AI 모델 출시 전 30일 동안 검토할 수 있는 자발적 프레임워크를 담고 있다.

다만 크리슈난 전 고문은 정부 검토로 최첨단 AI 도구가 몇 주씩 묶이면 미국 혁신에 부정적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가 직접 허가권자가 되는 방식은 피하되 안보 우려가 큰 모델에 대해서는 업계와 정부가 함께 점검하는 절충안을 선호하는 셈이다.

◇AI 반발은 업계의 ‘종말론 마케팅’ 탓

크리슈난 전 고문은 미국 내 AI 반발이 커진 책임을 업계에도 돌렸다.

그는 AI 기업들이 첨단 의료 진단 같은 기술의 이점보다 일자리 상실, 실존적 위험,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지나치게 강조해왔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유권자들이 AI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기술인지 의문을 갖게 됐다는 설명이다.

FT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2026년 1분기에만 약 1300억달러(약 199조원) 규모의 데이터센터 프로젝트 75건 이상이 지역 주민 반대로 차질을 빚었다. AI 데이터센터가 전력망, 물, 지역 환경에 부담을 준다는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AI에 대한 반감은 민주당 지지층뿐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마가(MAGA) 지지층 내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빅테크가 AI를 통해 막대한 부를 쌓는 동안 일반 유권자는 전기요금 상승, 일자리 불안, 지역 개발 부담을 떠안는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공공 지분론에는 긍정적

크리슈난 전 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AI 기업 공공 지분 구상에는 긍정적 입장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선도 AI 기업들이 미국 국민에게 이익을 돌려줘야 한다며 정부나 공공기구가 주요 AI 기업 지분을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다.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과도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리콘밸리 일각에서는 이를 우회적 국유화로 우려하지만, 크리슈난 전 고문은 일반 국민이 AI 성장의 혜택을 체감할 방법이 필요하다고 봤다. AI 모델을 쓰거나 AI 기업 주가가 오르는 것을 볼 때 자신도 이익을 얻고 있다고 느끼게 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AI 규제에서는 친기업 노선을 유지하면서도 정치적으로는 AI 부의 독점 논란을 의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강한 허가제는 거부하지만 AI 기업이 국민에게 이익을 돌려줘야 한다는 메시지는 강화하는 방식이다.

◇미국식 AI 정책, 규제 완화와 안보 통제 병행

FT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의 AI 정책은 앞으로도 두 갈래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하나는 주정부 규제와 중앙 허가제를 막아 미국 기업의 모델 개발 속도를 최대한 유지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안보나 사이버 위험이 크다고 판단되는 모델에 대해서는 정부가 제한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실리콘밸리에는 규제 부담을 줄여주는 신호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불확실성도 남긴다. 공식 허가제는 없더라도 정부가 특정 모델 출시를 언제든 늦출 수 있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예측 가능한 규칙 대신 정치적·안보적 판단에 노출될 수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