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7세 부모 동거 비율 코로나19 때 최고치 회귀…취업난·주거비 부담 속 ‘독립 실패’ 낙인은 약화
이미지 확대보기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청년 4명 가운데 1명 이상이 부모와 함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미국 경제가 비교적 견조한 흐름을 보이는 것과 달리 사회에 처음 진입하는 대졸 청년이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진 데다 높은 주거비까지 겹친 결과로 분석된다.
다만 부모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독립에 실패했다’고 보는 사회적 시선은 과거보다 약해지고 있다. 청년들도 생활비를 줄이면서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기 위한 현실적인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미국의 23∼27세 대졸자 가운데 부모와 동거하는 비율이 지난 2025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당시 기록한 최고 수준으로 다시 높아졌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 대졸 청년 25% 이상 부모와 거주
경제학자 스테파니아 알바네시 등 연구진이 미국의 23∼27세 대졸자를 대상으로 최근 분석한 결과 지난해 부모와 함께 사는 비율은 25%를 넘어섰다.
지난 2001년 약 18%였던 것과 비교하면 20여년 사이 7%포인트 이상 높아진 것이다.
이 비율은 코로나19 유행 초기 대학과 직장이 문을 닫으면서 청년들이 대거 귀향했던 당시의 최고 수준으로 돌아갔다.
미국에서는 대학 진학을 계기로 부모와 떨어져 살기 시작한 뒤 졸업 후 다시 부모 집으로 돌아오는 청년을 흔히 ‘부메랑 세대’라고 부른다. 집을 떠났던 자녀가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온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취업시장과 주거비 등 개인이 통제하기 어려운 경제적 요인이 커지면서 부모와의 동거를 청년 개인의 문제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 전체 고용은 버티는데 대졸 신입만 악화
부모와 함께 사는 대졸자가 늘어난 가장 큰 배경은 졸업 직후 들어갈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체 경제와 고용시장은 비교적 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최근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의 사정은 다르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최근 대졸자의 실업률은 올해 1분기 5.6%로 높아졌다.
최근 4년 동안 대졸 청년 실업률은 미국 전체 실업률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
대학을 졸업했더라도 경력이 없으면 기업이 요구하는 직무에 바로 진입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기업들이 신입사원을 채용해 업무를 가르치기보다 이미 경험을 갖춘 경력직을 선호하는 현상도 청년들의 취업 문을 좁히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인공지능(AI)이 사무·기술직의 초급 업무를 대신하기 시작하면서 대졸자가 주로 지원하는 신입 일자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공학 전공자도 취업 보장 어려워
취업난은 문학과 인문학 등 전통적으로 취업이 어렵다고 여겨진 전공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비교적 높은 임금과 안정적인 취업이 예상됐던 공학 전공 졸업생도 일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졸업한 화학공학 전공자의 실업률은 2022년부터 2024년 사이 두 배 이상 높아져 4.7%에 달했다.
컴퓨터공학 전공자의 실업률은 같은 기간 세 배 이상 상승해 7.8%를 기록했다.
캐나다 맥길대를 졸업한 한 화학공학 전공자는 전공 분야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지난 4월 부모 집으로 돌아갔다. 함께 졸업한 동급생 상당수도 관련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고 NYT에 전했다.
과거에는 이공계 학위가 졸업 직후 취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기술기업의 채용 축소와 AI 도입이 겹치면서 전공과 일자리 사이의 연결이 약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부모 집에서 생활비 줄이며 구직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타크루즈를 졸업한 토미 발마트는 졸업한 지 몇 달이 지나도록 출판업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자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 있는 부모 집으로 돌아갔다.
부모와 살면 임대료와 생활비를 줄일 수 있어 취업 준비에 집중하기가 더 쉽다고 판단했다.
부모도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했다.
발마트는 부모와 생각을 거의 모두 나눌 정도로 관계가 가깝다며 자신이 원한다면 집으로 돌아오라고 부모가 먼저 격려했다고 말했다.
부모 집에 머무는 청년은 당장 생계를 위해 전공이나 희망 직무와 무관한 일자리를 급하게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생활비 부담이 줄어들면 더 오랫동안 구직하면서 임금과 업무 내용이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좋지 않은 일자리를 서둘러 택하지 않아
미네소타대를 졸업한 앨리슨 요호는 경제학 학위와 인턴 경력이 있어 졸업 전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전에 인턴으로 근무했던 청정에너지 업체가 감원을 실시하면서 신입사원 채용 과정이 열리지 않았다.
그는 2025년 8월 미네소타주 부모 집으로 돌아간 뒤 구직을 계속했다.
두 달 뒤 첫 취업 제안을 받았지만 업무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모와 살면서 당장 임대료를 마련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더 적합한 일자리를 기다릴 수 있었다.
요호는 같은 해 12월 자신에게 더 잘 맞는 일자리를 구했다.
연구진은 부모의 지원을 받으며 일자리를 신중하게 고를 수 있는 대졸자가 취업난 때문에 서둘러 좋지 않은 일자리를 택한 청년보다 27세 무렵 임금 손실을 겪을 가능성이 작다고 분석했다.
부모와의 동거가 취업 실패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더 나은 일자리를 찾을 시간을 벌어주는 안전망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 높은 집값과 임대료도 독립 막아
대졸 청년의 부모 동거 증가를 취업 문제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미국 주요 도시의 높은 주택가격과 임대료도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청년의 독립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특히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처럼 주거비가 높은 곳에서는 취업하더라도 초봉만으로 집세와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
발마트의 어머니는 자신의 직장 동료와 지인 가운데 최근 대학을 졸업한 자녀가 부모 집으로 돌아오는 사례가 독립해 사는 경우보다 더 흔해졌다고 말했다.
직장을 구하지 못한 청년뿐 아니라 소득은 있지만 주거비를 줄이고 저축하려는 청년도 부모와 함께 사는 선택을 할 수 있다.
부모 집에서 지내는 기간을 완전한 경제적 의존보다 독립을 준비하기 위한 중간 단계로 보는 것이다.
◇ 스마트폰 시대 부모와 거리도 가까워져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과거보다 가까워진 점도 동거 증가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과거에는 대학 진학을 위해 집을 떠나면 부모와의 연락이 크게 줄어드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 대학생들은 스마트폰과 영상통화를 통해 떨어져 사는 동안에도 부모와 거의 매일 대화할 수 있다.
대학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부모와 정서적으로 가까운 관계가 유지되면서 졸업 후 다시 함께 사는 데 느끼는 불편함이 줄었다는 것이다.
로런스 카츠 하버드대 노동경제학자는 오늘날 청년들이 부모와 소통하는 정도는 25년이나 50년 전과 완전히 다르다고 설명했다.
부모도 성인 자녀가 반드시 졸업과 동시에 집을 떠나야 한다고 요구하기보다 경제적으로 자립할 준비가 될 때까지 지원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 금융위기·코로나19가 낙인 낮춰
NYT에 따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유행도 부모 동거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두 차례의 대규모 경제·사회적 충격으로 취업하거나 독립생활을 하던 청년까지 부모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부모와 다시 사는 일이 개인의 무능력 때문이 아니라 경기침체와 해고 등 외부 충격으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다.
미네소타주에서 대졸 청년들을 상담하는 치료사 대니얼 홀랜드는 부모 집으로 돌아간 청년들이 여전히 자신의 상황에 답답함을 느끼지만 과거보다 수치심과 죄책감을 덜 보인다고 말했다.
주변에 비슷한 처지의 친구가 많아진 것도 부담을 낮추고 있다.
워싱턴대를 졸업한 뒤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의 부모 집으로 돌아간 릴리 달레라는 “고등학교 친구 상당수가 같은 상황이어서 위안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친구들과 주말마다 달리기나 시장 방문 같은 활동을 함께하고 있다며 주변 친구들도 모두 부모 집에 살기 때문에 자신 역시 이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 함께 사는 생활이 늘 편한 것은 아냐
부모와의 동거가 경제적 부담을 덜어준다고 해서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학에서 몇 년 동안 독립적으로 살았던 청년은 부모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학생이나 미성년자처럼 취급받는다고 느낄 수 있다.
시러큐스대를 졸업한 한 청년은 부모 집에서 여동생과 2층 침대를 함께 사용해야 했다.
어머니가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위치를 계속 확인하면서 다시 10대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발마트도 부모가 많은 취업 지원서를 보내라고 압박해 지원서의 질보다 개수를 채우는 데 급급했던 적이 있다고 밝혔다.
연인을 집으로 초대했을 때 부모가 간식을 챙겨주겠다며 자주 거실에 들어와 당황한 경험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연인 역시 대학 졸업 후 부모 집으로 돌아간 상태여서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 ‘방향 잃은 청년’에서 ‘가로막힌 청년’으로
부모 집에 사는 대졸 청년의 모습도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
이전에는 졸업 후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취업 의지도 부족한 청년이 부모에게 의존한다는 이미지가 강했다.
최근에는 구체적인 목표와 학위, 인턴 경력을 갖췄지만 취업시장의 문이 막힌 청년이 부모 집으로 돌아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
NYT는 이들을 방향을 잃은 청년보다 열심히 준비했지만 경제적 환경에 가로막힌 청년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부모와의 동거가 모든 청년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가 넉넉한 주거공간과 생활비를 제공할 수 있는 청년은 취업을 서두르지 않고 더 좋은 일자리를 기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부모 역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서는 성인 자녀의 귀가가 가계 부담을 높일 수 있다.
부모 집이라는 안전망을 이용할 수 있는지에 따라 청년들 사이의 취업 기회와 초기 경력에도 격차가 생길 수 있는 셈이다.
발마트는 부모 집에서 생활비를 아낀 덕분에 저축한 돈으로 이달 대학 친구와 함께 살 집으로 옮길 예정이다.
부모와의 동거가 독립을 포기한 선택이 아니라 독립할 여건을 마련하기 위한 준비 기간이 된 사례다.
미국 대졸 청년의 부모 동거 증가는 취업시장 악화와 높은 주거비라는 경제적 어려움을 드러내는 동시에 성인이 된 자녀를 지원하는 가족의 역할과 독립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