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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존 터너스 (John Ternus) 애플 후계자 " 스티브잡스- 팀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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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존 터너스 (John Ternus) 애플 후계자 " 스티브잡스- 팀쿡

존 터너스 애플 CEO /사진=애플 이미지 확대보기
존 터너스 애플 CEO /사진=애플
[김대호 인물 오디세이] '포스트 팀 쿡' 애플의 새로운 선장, 존 터너스는 누구인가

<쿠퍼티노 회의실, 엔지니어의 반란>

2019년 초가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위치한 애플 파크(Apple Park) 본사의 한 회의실에는 숨 막히는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그 자리에는 스티브 잡스의 영혼적 동반자이자 애플 디자인의 절대 권력자였던 최고디자인책임자(CDO) 조니 아이브(Jony Ive)의 디자인 철학이 짙게 배어 있는 신형 맥북 프로의 시제품들이 놓여 있었다. 당시 애플의 랩톱 라인업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두께를 단 1밀리미터라도 줄이기 위해 도입했던 '나비식(Butterfly) 키보드'는 먼지 한 톨만 들어가도 자판이 먹통이 되었다. 펑션 열을 대체했던 화려한 터치바는 전문가들에게 외면당했다. 본체의 두께를 줄이느라 포트를 죄다 없애버린 탓에 이용자들은 주렁주렁 젠글(동글)을 달고 다녀야만 했다.
디자인의 극단적 유려함에 취해 '기계로서의 본질과 신뢰성'을 상실해 가던 그 순간,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회의실의 공기를 가른 인물이 있었다. 당시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부사장이었던 존 터너스(John Ternus)였다. 그는 화려한 미사여구 대신, 실측 데이터와 수천 시간의 내구성 테스트 결과가 적힌 두꺼운 리포트를 조용히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선언했다.

"디자인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타이핑이 되지 않는 컴퓨터는 도구가 아닙니다. 두께를 1밀리미터 늘리더라도 물리적 ESC 키를 되살리고, 가위식 매직 키보드로 전면 회귀해야 합니다. 그것이 전문가들이 애플에 바라는 진짜 신뢰입니다." 스티브 잡스 사후 그 누구도 감히 정면으로 반박하지 못했던 조니 아이브식 '형태 우선주의'의 벽을 깨부순 순간이었다. 터너스는 물러섬 없이 경영진을 설득했고, 결국 2019년 말 출시된 16인치 맥북 프로는 기적처럼 가위식 키보드와 물리 키, 향상된 쿨링 시스템을 탑재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글로벌 테크 커뮤니티는 "애플에 제정신을 가진 엔지니어가 돌아왔다"며 열광했다.

이 일화는 존 터너스라는 인물이 어떤 철학을 가진 엔지니어인지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목소리를 높여 권력을 휘두르는 정치가가 아니다. 철저히 데이터와 제품의 본질, 그리고 사용자의 손끝에 닿는 경험을 기준으로 거대한 조직의 흐름을 바로잡는 '조용한 완벽주의자'다. 이제 이 단단한 엔지니어가 15년간 애플을 이끈 팀 쿡의 뒤를 이어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테크 제국의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 수영 선수 출신의 유펜 공학도>

존 패트릭 터너스(John Patrick Ternus)는 1975년 5월에 태어났다. 컴퓨터와 아날로그 기계가 공존하던 유년 시절, 그는 고장 난 라디오나 시계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일에 흠뻑 빠져 지냈다.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사물의 작동 원리를 파헤치는 기계적 메커니즘에 남다른 감각을 보였던 그는 1993년 미국 아이비리그의 명문 사학인 펜실베이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 기계공학과에 입학하였다. 대학 시절 터너스는 학업뿐만 아니라 대학 대표 수영 선수(NCAA)로 활약하며 강인한 체력과 고도의 절제력을 길렀다. 레인을 가르며 극한의 지구력을 훈련하던 수영 선수로서의 경험은 훗날 수백 명의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를 이끌며 밤샘 개발을 마다하지 않는 그의 끈질긴 집중력의 원천이 되었다.
그의 인간 중심 공학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결정적 사건은 대학교 4학년 졸업 과제였다. 당시 터너스는 동료들과 함께 '사지마비 환자를 위한 기계식 급식 장치(Mechanical Feeding Arm)'를 개발하였다. 목 아래를 전혀 쓰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이 머리의 미세한 각도 움직임과 센서 조작만으로 기계 팔을 움직여 스스로 음식을 떠먹을 수 있도록 고안한 정밀 공학 장치였다.단순히 학점을 따기 위한 화려한 공학 기술을 과시하는 대신, 신체적 약자의 존엄성과 일상적 자립을 돕는 메커니즘을 설계한 이 경험은 터너스의 뇌리에 깊은 각인을 남겼다. 이는 훗날 애플의 하드웨어 전반에 깊게 배어든 '접근성(Accessibility)' 철학, 즉 기술은 소수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장애인과 노약자를 포함한 모든 인간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가치관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대목이었다.

1997년 대학을 졸업한 터너스는 곧바로 대기업으로 향하지 않았다. 그는 가상현실(VR) 기기 및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HMD) 초기 개발 벤처였던 '버추얼 리서치 시스템스(Virtual Research Systems)'에 기계 엔지니어로 입사하였다. 당시는 VR이라는 개념조차 대중에게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터너스는 이곳에서 초소형 디스플레이 하우징, 렌즈 광학계 고정 장치, 착용 시 두개골에 가해지는 압력을 분산하는 인체공학적 프레임 설계 등 첨단 정밀 하드웨어의 기초를 밑바닥부터 체득하였다.

<스티브잡스와 애플>

2000년대 초반, 버추얼 리서치 시스템스에서 탄탄한 실무를 쌓아가던 터너스에게 한 가지 깊은 갈증이 찾아왔다. 당시 VR 기기는 군사 훈련용이나 대학 연구소의 특수 목적에 국한된 소량 생산 장비였다. 자신이 밤낮으로 설계한 정밀 기계가 소수의 연구원 손에서만 맴도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수억 명의 일상에 들어가 삶의 방식을 바꾸는 거대한 파동을 일으키기를 갈망했다.

바로 그 무렵, 파산 직전의 애플로 복귀한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발칵 뒤흔들고 있었다. 반투명 청록색 바디로 무장한 '아이맥 G3(iMac G3)'와 조약돌 같은 외형의 '아이북(iBook)'은 무미건조한 회색 상자에 불과했던 PC 시장에 디자인과 감성, 완벽한 하드웨어 설계의 결합이라는 충격을 던졌다.대부분의 테크 기업들이 단가 후려치기와 조립식 양산에 급급할 때, 나사 하나의 마감과 내부 기판의 배치까지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던 애플의 제품 중심주의는 젊은 엔지니어 터너스의 심장을 뛰게 만들었다.

2001년, 존 터너스는 망설임 없이 애플의 문을 두드렸고 '프로덕트 디자인(Product Design)' 팀의 일원으로 합류하였다. 그의 첫 프로젝트는 전문가용 대형 모니터인 '애플 시네마 디스플레이(Apple Cinema Display)'의 기계식 알루미늄 인클로저 및 힌지 구조 설계였다.모니터를 손가락 하나로 가볍게 밀어도 부드럽게 각도가 조절되면서도 흔들림 없이 고정되는 정밀한 기계적 균형, 그리고 모니터 후면의 완벽한 알루미늄 마감은 터너스의 치밀한 손끝에서 완성되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애플 내부에서 확실한 눈도장을 찍은 그는 이후 아이맥, 맥북, 그리고 애플 역사를 바꿀 차세대 기기 개발의 핵심 인력으로 전격 차출되었다.

<아이패드에서 '애플 실리콘'까지>

존 터너스가 애플에서 걸어온 25년은 현대 소비자 가전의 진화사와 궤를 같이한다. 그는 조용하지만 가장 확실한 결과물로 자신의 영역을 넓혀나갔다.2013년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부사장(VP)으로 승진한 터너스는 아이패드(iPad) 하드웨어 전 라인업의 총사령관을 맡았다. 스티브 잡스가 남긴 1세대 아이패드부터, 얇기의 한계에 도전했던 아이패드 에어, 전문가용 도구로 재탄생한 아이패드 프로 시리즈, 그리고 애플 펜슬의 마그네틱 무선 충전 구조에 이르기까지 아이패드 생태계의 모든 기계적 폼팩터 혁신이 그의 지휘 아래 탄생하였다. 초박형 'M4 아이패드 프로'는 터너스가 추구하는 극한의 박형화와 구조적 강도의 집대성으로 평가받는다.

애플 역사상 가장 위험하고도 찬란했던 도박은 인텔 x86 프로세서와의 결별이었다. 당시 맥북은 인텔 칩의 극심한 발열과 전력 소모 때문에 쿨링팬이 굉음을 내며 돌아갔고 성능 개선은 정체되어 있었다.터너스는 반도체 설계 총괄인 조니 스루지(Johny Srouji) 팀과 한 몸처럼 움직였다. ARM 기반의 독자 칩인 M1 프로세서의 특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팬이 아예 없는 완전 무소음 구조의 'M1 맥북 에어' 폼팩터를 설계해 세상을 경악시켰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애플 맥 사업부는 역사상 최대의 르네상스를 맞이했고, 인텔 의존을 완벽히 청산하며 PC 산업의 권력 지형을 단숨에 재편하였다.

터너스의 탁월한 성과는 그를 초고속 승진으로 이끌었다. 2020년 전설적인 엔지니어 댄 리치오(Dan Riccio)의 뒤를 이어 아이폰 하드웨어 개발까지 손에 넣었고, 2021년 마침내 애플 최고경영진(Executive Team)의 일원인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수석부사장(SVP)' 자리에 올랐다. 2022년에는 애플워치 하드웨어 조직까지 통합 흡수하며, 사실상 손목 위의 시계부터 책상 위의 맥 프로, 머리에 쓰는 비전 프로까지 애플이 만드는 모든 물리적 기기의 최종 승인권자가 되었다.

<팀 쿡의 선택>

팀 쿡 현 CEO가 15년 만에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나며 자신의 후계자로 제프 윌리엄스(COO)나 크레이그 페더리기(소프트웨어 총괄) 대신 존 터너스를 낙점한 배경에는 애플의 미래 10년을 좌우할 정밀한 전략적 셈법이 자리 잡고 있다.팀 쿡 체제의 지난 15년은 '공급망 관리(SCM)와 사업 확장의 시대'였다. 쿡은 글로벌 조달망을 쥐어짜고 마진을 극대화하며, 서비스 부문 매출을 폭발시켜 애플을 거대한 현금 창출 머신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스티브 잡스 시절의 가슴 뛰는 하드웨어 혁신이 사라졌다", "매년 카메라 렌즈 위치만 바꾸는 안전제일주의에 갇혔다"는 뼈아픈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존 터너스는 이 갈증을 채울 완벽한 대척점에 서 있다.첫째, '엔지니어링 DNA'로의 회귀다. 인공지능(AI) 기술이 소프트웨어 단계를 넘어 디바이스 자체에 이식되는 온디바이스 AI 시대, 그리고 공간 컴퓨팅(Vision Pro)과 폴더블, 나아가 미래 가정용 로보틱스에 이르기까지 차세대 전장은 결국 '하드웨어를 얼마나 완성도 있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바닥부터 부품 설계를 해온 터너스는 제품의 본질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는 리더다. 팀 쿡 본인 역시 "존 터너스는 엔지니어의 날카로운 두뇌와 혁신가의 뜨거운 영혼을 동시에 지닌 인물"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둘째, 탁월한 조직 통합력과 겸양의 리더십이다. 애플 내부에서 터너스는 거만한 천재가 아닌, '경청하는 지휘관'으로 통한다. 과거 조니 아이브의 독주로 벌어졌던 디자인 팀과 엔지니어링 팀 사이의 감정적 골을 완벽하게 봉합하고 유기적인 원팀 문화를 복원해 낸 일등공신이 바로 그다. 무대 위에서도 과장된 쇼맨십 대신 담백하고 신뢰감 넘치는 언어로 제품을 설명하는 그의 태도는 월가와 개발자 커뮤니티 모두에게 두터운 신뢰를 주었다. 셋째, 안정적인 10년을 보장하는 세대교체다. 1975년생인 터너스는 50대 초반의 완숙한 나이다. 60대 중후반에 접어든 다른 경쟁 후보들에 비해, 향후 10년에서 15년 이상 장기적인 비전을 흔들림 없이 끌고 갈 수 있는 최적의 체력과 연령을 갖추고 있다.

팀쿡에서 존 터너스로의 권력 이양을 완벽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애플이라는 거대 기업을 지배하는 주주 지형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애플은 창업자 일가가 세습하는 아시아적 가족기업이 아닌, 철저한 전문경영인 체제와 분산 소유 구조를 지닌 글로벌 공공기업에 가깝다.애플의 실질적 지배권은 글로벌 자본시장을 움직이는 거대 자산운용사들이 쥐고 있다.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는 약 8.0~8.6%의 지분을 쥐고 있는 뱅가드 그룹(The Vanguard Group)이다. 그 뒤를 이어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BlackRock Inc.)이 약 7.9%의 지분을 보유하며 확고한 2대 주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어 스테이트 스트리트(State Street Corp)가 약 4%, 지오드 캐피털(Geode Capital Management)이 약 2.5% 수준을 점유하고 있다.

이들 패시브 펀드 및 글로벌 연기금 운용사들은 단기적인 주가 부양보다는 장기적인 기업 가치 제고와 안정적인 배당, 자사주 매입, 그리고 리스크 없는 리더십 승계를 최우선 가치로 둔다. 여기에 단일 법인 투자자로서 막강한 발언권을 행사해 온 인물이 바로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이다. 그가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는 장기간 애플 지분의 약 5% 안팎을 보유하며 팀 쿡의 강력한 우군 역할을 해왔다.

개인 주주 중에서는 애플 이사회 선임 독립이사이자 전 이사회 의장인 아서 레빈슨(Arthur Levinson)이 약 440만 주 이상을 보유해 가장 많은 보통주를 쥐고 있다. 15년간 애플을 이끈 팀 쿡 역시 성과급 주식 보상(RSU)을 통해 약 320만 주 이상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의 유족인 부인 로렌 파월 잡스(Laurene Powell Jobs)의 경우, 잡스 사후 상속받은 '스티브 잡스 트러스트'를 통해 당시 애플 전체 지분의 약 0.59%를 보유했었다. 스티브 잡스는 1985년 자신이 쫓겨났을 때 보유 주식을 단 1주만 빼고 전량 매각했었기에, 복귀 후 받은 스톡옵션을 합쳐도 잡스 가문의 지분율은 애초에 1% 미만에 불과했다. 로렌 파월 잡스는 이후 자선재단 '에머슨 컬렉티브'의 공익 활동과 투자 다변화를 위해 애플 지분을 점진적으로 처분해 왔으며, 현재는 경영권에 영향을 주지 않는 극소수 지분만을 보유하고 있다.

결국 존 터너스를 선임한 진짜 주체는 특정 오너 일가가 아니라, 뱅가드와 블랙록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연기금 자본과 이를 대변하는 이사회 독립이사들이다. 이들은 터너스가 가진 하드웨어 완결성이야말로 주주 가치를 영속시킬 최선의 카드라고 판단한 것이다.

존 터너스가 이끌어갈 '애플 3.0'의 항해는 결코 평탄한 꽃길이 아니다. 그는 취임과 동시에 3가지 거대한 암초를 넘어서야 한다.첫째, 생성형 AI 전쟁에서의 주도권 탈환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 연합, 구글, 엔비디아가 질주하는 생성형 인공지능 시장에서 애플은 다소 출발이 늦었다는 시장의 우려를 씻어내야 한다. 터너스는 '애플 인텔리전스(Apple Intelligence)'를 아이폰과 맥, 아이패드의 실리콘 칩 및 하드웨어 아키텍처와 어떻게 가장 완벽하고 매끄럽게 결합하여 온디바이스 AI의 표준을 제시할 것인가를 입증해야 한다.

둘째, 아이폰의 뒤를 이을 '넥스트 메가 폼팩터'의 성공이다. 고가의 공간 컴퓨터인 비전 프로를 대중화 모델로 안착시키는 일, 경쟁사들이 치고 나간 폴더블 디바이스의 완성도를 애플식 완성도로 끌어올리는 일, 그리고 애플카의 좌절을 딛고 가정용 스마트 로보틱스 생태계를 개척하는 일 모두가 기계공학자 터너스의 손끝에 달려 있다.셋째, 지정학적 리스크와 글로벌 반독점 규제의 파고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갈등 속에서 인도, 베트남 등으로의 생산 기지 다변화를 완수해야 하며, 미국 법무부(DOJ)와 유럽연합(EU)의 전방위적인 앱스토어 및 폐쇄형 생태계 반독점 칼날을 슬기롭게 방어해 내야 한다.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늘 이렇게 말했다."애플의 DNA는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술이 교양, 인문학과 결합할 때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결과물이 탄생한다."사지마비 환자의 숟가락질을 돕기 위해 밤을 새우며 기계 팔을 깎던 20대의 수영 선수, 조니 아이브의 서슬 퍼런 권력 앞에서도 "키보드가 쳐지지 않는 기계는 컴퓨터가 아니다"라며 제품의 본질을 지켜낸 40대의 완벽주의 엔지니어. 존 터너스는 잡스가 말했던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로에 가장 정확하게 서 있는 인물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