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011년 연준 이사 시절 동료보다 인플레 우려…현재 전망모형 불신의 뿌리
이미지 확대보기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15년 전 연준 이사로 재직할 당시 거의 모든 동료보다 인플레이션을 더 심각하게 우려했던 사실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높은 실업률이 물가를 끌어내릴 것이라는 당시 연준의 일반적인 판단과 달리 워시는 금융위기와 정부 정책이 경제의 생산능력 자체를 훼손했다고 봤다.
현재 워시 의장이 기존 경제전망 모형과 연준의 금리 전망 공개에 강한 회의론을 보이는 배경에도 당시 경험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워시 의장이 지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연준 이사로 재직하면서 분기마다 제출했던 경제성장률, 실업률, 인플레이션 전망을 분석해 그의 현재 물가관과 통화정책 철학이 형성된 과정을 2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당시 전망치는 워시가 연준을 떠난 뒤 수년이 지나 공개됐다.
◇ 고실업인데도 물가 걱정…동료와 달랐던 판단
지난 2007~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실업률은 약 9%까지 치솟았다.
당시 연준 내 주류적인 판단은 실업률이 높고 공장과 노동력이 충분히 활용되지 않는 이른바 경제의 유휴능력이 큰 만큼 물가 상승압력이 약해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수요가 부족하면 기업이 가격을 올리기 어렵고 임금 상승압력도 낮아지기 때문에 결국 인플레이션이 내려간다는 전통적인 경제학적 접근이다.
그는 높은 실업률 가운데 상당 부분이 단순한 경기침체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 아닐 수 있다고 봤다.
금융위기가 경제에 지속적인 손상을 입히고 성장을 저해하는 정부 정책까지 겹치면서 미국 경제가 실제로 생산할 수 있는 수준 자체가 낮아졌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그렇다면 높은 실업률이 존재하더라도 경제에 남아 있는 여유가 다른 연준 위원들이 생각한 것만큼 크지 않으며 물가를 낮추는 힘도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논리가 된다.
이 같은 판단 때문에 워시는 동료들보다 지속적으로 높은 인플레이션을 예상했다고 WSJ는 전했다.
◇ 당시 물가 경고는 곧바로 현실화하지 않아
다만 워시의 당시 물가 우려가 실제 인플레이션 급등으로 곧바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WSJ은 워시가 거의 모든 동료보다 인플레이션을 더 우려했지만 그가 경고했던 물가 압력은 이후 여러 해 동안 현실화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뒤 미국 물가는 오랫동안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대규모 물가 급등이 나타난 것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대규모 재정·통화 부양책이 시행되고 공급망까지 흔들린 뒤였다.
따라서 과거 전망자료는 워시가 당시 물가를 정확하게 예측했다는 증거라기보다 그가 경제를 바라볼 때 수요 부족보다 공급능력과 생산성 변화에 상대적으로 더 큰 비중을 둬왔다는 점을 드러낸다.
◇ AI 시대에도 ‘공급능력’에 주목
이 같은 사고방식은 현재 워시 의장이 인공지능(AI)과 생산성을 바라보는 관점과도 연결된다.
AI가 생산성을 크게 높이면 경제가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도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질 수 있다.
반대로 전통적인 경제모형이 경제의 생산능력 변화를 정확히 잡아내지 못하면 성장률이나 실업률만으로 인플레이션을 판단하는 데 오류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 워시의 문제의식이다.
워시는 연준 의장 취임 이후에도 전통적인 경제전망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들이 향후 성장률과 물가, 금리 전망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경제전망과 금리 예상치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
향후 금리 경로를 점으로 표시하는 ‘점도표’를 비롯한 연준의 전망이 자주 빗나갔고 급변하는 경제를 기존 모형으로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 과거 전망표가 현재 워시 읽는 단서
워시 의장이 향후 금리가 어디로 향할지 구체적인 신호를 거의 내놓지 않으면서 금융시장에서는 그의 통화정책 판단기준을 파악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WSJ은 이 때문에 2007~2011년 워시가 직접 제출했던 전망자료가 현재 그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분석했다.
과거 워시는 높은 실업률 자체보다 미국 경제의 공급능력이 얼마나 훼손됐는지를 중요하게 봤고 그 결과 동료들보다 물가 상승 위험을 더 크게 평가했다.
현재는 당시와 반대로 AI가 생산성을 높여 경제의 공급능력을 확대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상황은 달라졌지만 단순한 실업률이나 성장률보다 경제의 실제 생산능력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먼저 살피는 접근법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WSJ은 월가에서 워시 의장을 인플레이션에 강경한 인물로 보는 시각이 많지만 과거 기록은 그의 판단을 단순한 ‘매파’ 성향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도 시사한다고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