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교육 등 AI가 가능해도 사람에게 맡기는 영역 보호
로봇·AI 이용 과세도 주장…"정부, 대규모 일자리 변화 준비 부족"
로봇·AI 이용 과세도 주장…"정부, 대규모 일자리 변화 준비 부족"
이미지 확대보기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인공지능(AI)이 수행할 수 있더라도 일부 일자리는 의도적으로 사람에게만 맡기도록 보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AI와 로봇의 성능이 빠르게 향상되면서 일부 직업이 일시적으로 줄어드는 데 그치지 않고 영구적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정부가 어떤 일은 인간의 영역으로 남길지 미리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6일(이하 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게이츠는 이날 공개한 에세이에서 이 같은 개념을 'Human Reserved'라고 명명하며 이같이 밝혔다. 이는 '인간 전용' 또는 '인간에게 남겨둔 영역'에 가까운 개념이다.
게이츠는 자연보호구역을 예로 들었다.
보호구역에도 건물과 도로를 만들 수 있지만 사회가 보존할 가치가 더 크다고 판단해 개발하지 않는 것처럼 AI가 어떤 일을 할 능력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사람을 대체하도록 허용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할 수 있다고 반드시 맡겨야 하나"
게이츠가 염두에 둔 대표적인 분야는 돌봄이다.
그는 알츠하이머병을 앓다 2020년 세상을 떠난 자신의 아버지를 돌본 간병인들을 사례로 들었다.
아버지가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때도 간병인들은 필요한 것을 알아차렸으며 게이츠는 이런 돌봄에는 대체하기 어려운 인간적 요소가 있다고 설명했다.
기술적으로 로봇이 간병 업무를 할 수 있더라도 사람이 계속 맡도록 사회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료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AI나 로봇이 환자에게 불치병 진단 결과를 전달할 능력을 갖추더라도 그런 역할까지 기계에 맡기는 것이 적절한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게이츠는 지적했다.
교육과 정신건강 관리 같은 분야에서는 AI가 사람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교사나 전문가가 AI를 활용해 자신의 능력을 확장하는 형태가 적절할 수 있다고 봤다.
어떤 일자리를 인간에게 남길지는 경제적인 이유로도 결정할 수 있다.
오랫동안 한 업종에서 일해온 중·장년 근로자가 자동화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 경우 다른 직종으로 쉽게 옮기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게이츠는 건설업에서 평생 일해온 55세 근로자에게 일자리가 없어졌으니 노인 돌봄 분야로 옮기라고 요구하는 것이 현실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인간 전용' 영역은 영구적인 형태뿐 아니라 사회가 AI 전환에 적응할 시간을 벌기 위해 일정 기간 자동화를 늦추는 방식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AI 전환, 역사상 가장 격동적인 시기 될 수도"
FT에 따르면 게이츠의 문제의식은 AI가 이전 기술혁신보다 훨씬 빠르게 노동시장과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데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아무리 상황이 순조롭게 진행되더라도 AI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이 인류 역사상 가장 격동적인 시기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각국 지도자와 전문가, 지역사회가 이에 충분히 대비하고 있다는 증거를 찾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AI 확산으로 생산성이 크게 높아질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대규모 일자리 상실과 불평등 확대가 발생하면 기술 발전의 혜택이 사회 전체에 고르게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AI 발전으로 사라지는 일자리가 이전 기술혁신처럼 새로운 직업으로 충분히 대체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고 봤다.
AI가 사무직 업무를 자동화하는 데 이어 로봇 기술까지 발전하면 육체노동을 포함한 더 광범위한 직종으로 영향이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이츠는 이런 변화가 현실화한 뒤 대처하는 것보다 실업이 급격히 늘기 전에 사회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I·로봇 쓰면 세금 부과 방안도 제안
게이츠는 기업이 사람 대신 AI와 로봇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현재의 세금체계도 손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기업은 사람을 고용하면 임금과 관련된 각종 세금을 부담하지만 기계나 기술에 투자한 비용은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어 세제 자체가 자동화를 상대적으로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로봇과 AI 이용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AI의 경우 시스템을 얼마나 많이 이용했는지를 나타내는 처리 단위인 '토큰' 사용량 등에 세금을 매기는 방안도 거론했다.
이렇게 확보한 재원은 AI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의 재교육이나 사회안전망 강화에 사용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게이츠는 앞서 로봇세를 제안했을 당시에는 이를 이상한 생각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지만 여전히 자동화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 가운데 하나로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AI와 로봇 과세만으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직업을 인간 전용으로 지정할지, 누가 이를 결정할지, 기업이 규정을 지키도록 어떻게 관리할지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는 점도 인정했다.
국가마다 상황이 달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기도 어렵다.
고령화로 돌봄 인력이 부족한 국가에서는 다른 나라보다 돌봄 로봇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교육·정신건강·사이버 위험도 경고
게이츠의 우려는 일자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AI가 어린이와 청소년의 성장과 교육,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용자의 말에 지나치게 동조하는 AI 챗봇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특히 젊은 이용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학생들이 AI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스스로 사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약해질 가능성도 문제로 꼽았다.
사이버안보 위험 역시 주요 과제다.
AI가 방어 기술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범죄자들이 해킹이나 다른 공격을 수행하는 능력도 크게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게이츠는 이런 문제를 개별 기술기업의 자율적인 판단에만 맡겨서는 부족하다고 보고 정부와 국제사회의 역할 확대를 주장했다.
특히 AI의 위험이 국경을 넘는 만큼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주요 국가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FT는 게이츠가 AI의 긍정적인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AI가 의료와 교육, 농업, 정부 서비스 등의 생산성과 접근성을 크게 개선할 가능성은 여전히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의 혜택만 기대한 채 노동시장과 사회에 미칠 충격에 대한 준비를 미룰 경우 AI가 불평등을 줄이는 기술이 아니라 오히려 확대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게이츠의 경고다.
그가 제안한 '인간 전용 일자리'는 결국 AI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느냐만 따질 것이 아니라 무엇을 AI에 맡기고 무엇을 인간의 역할로 남길지를 사회가 선택해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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