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에브리싱’ 빈 살만, 사면초가 최악의 위기
이미지 확대보기사막의 패자(覇者)를 덮친 검은 연기
페르시아만의 거센 바람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을 뒤흔들고 있다. 21세기 중동의 지정학적 지형을 단신으로 재편하며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으로 군림해 온 무함마드 빈 살만(Mohammed bin Salman, 약칭 MbS) 왕세자 겸 총리가 집권 이래 최대의 전략적 위기에 직면했다.
호르무즈 해협의 위험을 우회하여 홍해로 하루 500만 배럴의 원유를 실어 나르던 국부의 대동맥, ‘동서송유관(Petroline)’이 드론의 기습 타격으로 화염에 휩싸이며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0년 가까이 사우디의 남부 안보를 갉아먹어 온 예멘 후티 반군의 비대칭 타격 역량은 날로 정교해지는 반면, 가장 든든한 안보의 버팀목이어야 할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은 철저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의 계산기 뒤로 숨어버렸다.모든 권력을 손에 쥐었으나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안보의 외줄 타기를 강요받고 있는 젊은 군주. 과연 그는 이 험난한 사면초가의 파고를 넘어 자신이 꿈꾸던 ‘사우디 르네상스’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토종 출신’ 이력은 훗날 그가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양날의 검이 되었다. 서구 외교가에서는 그를 ‘베일에 싸인 예측 불가능한 인물’로 경계했으나, 사우디 내부적으로는 부족장들과 왕실 원로들의 속내를 꿰뚫어 보고 보수적인 종교계의 허점을 공략하는 독보적인 정치적 감각을 제공했다. 대학 졸업 직후 민간 기업과 정부 산하 위원회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으나, 그의 시선은 언제나 권력의 심장부를 향해 있었다. 반세기 동안 수도 리야드의 주지사로 재직하며 왕실 내부의 규율을 총괄하고 재정 및 족보를 관장하던 부친 살만 공의 최측근 비서실장 역할을 자임하면서, 그는 일찍부터 왕궁 깊숙한 곳에서 벌어지는 권력 암투의 본질을 학습했다.
모래폭풍 같은 권력 승계: 정적 숙청과 전권 장악
2015년 1월, 압둘라 국왕이 서거하고 부친 살만 빈 압둘아지즈가 제7대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빈 살만의 초고속 권력 질주가 시작되었다. 불과 30세도 되지 않은 나이에 세계 최연소 국방장관에 임명된 그는 경제개발협의회(CEDA) 의장직까지 거머쥐며 국가의 안보와 금고를 동시에 틀어쥐었다. 사우디 왕실의 전통적인 승계 구도는 ‘형제 상속’이었다. 당시 왕세제는 무크린 빈 압둘아지즈였고, 제2왕위 계승자는 미국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던 무함마드 빈 나예프 내무장관이었다. 빈 살만은 권가차 없는 권력 재편에 돌입했다.
우선 2015년 4월 무크린 왕세제를 퇴진시키고 빈 나예프를 왕세자로 올리는 한편, 자신은 제1부총리 겸 부왕세자로 올라섰다. 이어 2017년 6월, 빈 살만은 빈 나예프를 전격 실각시키고 가택 연금에 처하며 마침내 왕세자 자리에 등극했다. 사우디 건국 이래 60여 년간 이어져 온 형제 상속의 고리를 끊고 ‘부자 상속’의 기틀을 확립한 순간이었다.
왕세자에 오른 그의 권력 굳히기는 전격적이고 무자비했다. 2017년 11월, 그는 ‘반부패 척결’을 기치로 내걸고 리야드의 최고급 호텔인 리츠칼튼을 사우디 왕족과 정·재계 거물들의 호화 감옥으로 탈바꿈시켰다. 세계적인 거부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를 비롯한 왕족 수십 명, 전·현직 장관 및 유력 사업가 수백 명이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국고로 환수된 자금만 1,000억 달러(약 130조 원)를 웃돌았다.리츠칼튼 숙청은 단순한 부패 수사가 아니었다. 사우디의 전통적 권력 구조였던 ‘왕실 가문 간 합의제’와 ‘종교계와의 공두 체제’를 파괴하고, 모든 권력이 국왕과 자신 1인에게 집중되는 절대군주정을 완성하기 위한 정밀한 정치 쿠데타였다. 그는 종교 경찰(무타와)의 체포권을 박탈하고 여성 운전을 허용하는 등 파격적인 사회 개혁을 단행하여 청년층의 열광적인 지지를 확보하는 동시에, 반대파의 싹을 완전히 잘라냈다.
예멘 후티 반군과의 질긴 악연
빈 살만의 거침없는 대내적 비상과 달리, 대외 정책의 첫 시험대였던 군사 안보 분야는 그의 발목을 잡는 거대한 족쇄가 되었다. 국방장관에 취임한 지 불과 두 달 만인 2015년 3월, 빈 살만은 아랍 연합군을 결성하여 예멘 내전에 전격 개입하는 ‘결단적 폭풍 작전(Operation Decisive Storm)’을 개시했다.
당시 시아파 분파인 자이디파 기반의 후티(Houthi) 반군이 친사우디 하디 정부를 무너뜨리고 수도 사나를 장악하자, 빈 살만은 이를 사우디 턱밑에 들어서는 ‘이란의 대리 세력’으로 규정했다. 첨단 미국제 무기로 무장한 사우디 공군력이면 수주일, 길어야 수개월 내에 산악 부족 반군을 제압할 수 있으리라는 군사적 오판이 지배적이었다. 현실은 참혹했다. 예멘의 험준한 산악 지형과 수십 년간 게릴라전으로 단련된 후티의 저항은 완강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사우디가 투입한 막대한 군사비는 천문학적 숫자로 불어났고, 병원과 민간인 구역 폭격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비판이 사우디를 향해 쏟아졌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후티의 비대칭 전력 고도화였다. 후티는 이란의 기술 지원을 바탕으로 탄도미사일과 자폭 드론을 대량 생산하여 사우디 본토를 직접 타격하기 시작했다. 사우디 남부의 공항과 군사기지는 물론, 아람코(Aramco) 정유 공장과 수도 리야드의 왕궁까지 사정권에 들어갔다.1,800km에 달하는 국경선을 방어하기 위해 사우디는 수억 달러에 달하는 패트리엇 요격미사일을 쏘아 올려야 했지만, 수천 달러짜리 드론 벌떼 공격을 완벽히 차단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단기전 승리’를 장담했던 젊은 국방장관의 야망은 사우디의 재정과 안보를 바닥부터 갉아먹는 ‘중동판 베트남전’의 수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거래적 동맹의 달콤함과 배신의 그림자
국제 외교 무대에서 고립될 뻔했던 빈 살만에게 구원의 동아줄을 던진 인물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었다. 2017년 5월,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지로 사우디를 선택한 트럼프는 리야드에서 빈 살만을 만나 1,100억 달러 규모의 무기 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그에게 강력한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했다.빈 살만과 트럼프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 간의 밀월 관계는 워싱턴 정가를 움직이는 핵심 채널이었다. 트럼프는 2018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으로 빈 살만이 국제사회의 거센 지탄을 받을 때도 “사우디는 미국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엄청난 고객”이라며 빈 살만을 노골적으로 비호했다.
트럼프의 외교는 어디까지나 ‘철저한 비즈니스이자 거래(Transaction)’였다. 상호 방위 조약이나 피로 맺은 혈맹이 아니라, 철저하게 ‘미국의 이익’이 앞서는 관계였다. 트럼프의 본질은 ‘고립주의자’였으며, 사우디의 안보를 위해 미군의 피를 흘릴 의사가 전혀 없었다.이 잔인한 현실은 2019년 9월, 아람코의 핵심 정유 시설인 아브카이크와 쿠라이스가 드론 및 순항미사일 공격을 받아 전 세계 석유 생산의 5%가 마비되었을 때 명백히 드러났다. 사우디는 미국의 강력한 보복 군사 공격을 기대했으나, 트럼프 행정부는 "그것은 미국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사우디에 대한 공격"이라며 선을 긋고 군사 개입을 거부했다.
백악관의 주인이 바뀌고 다시 트럼프가 귀환한 시점에서도 미국의 태도는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사우디의 전면적 방위 지원 요구에 냉담하다. 미국 선박에 직접적인 피해가 없는 한, 예멘의 산악 지대에서 미군이 피를 흘릴 이유는 없다는 태도다. 비대칭전의 비효율성과 전 세계 석유 패권의 무게중심이 셰일 혁명으로 미국 본토로 이동한 상황에서, 미국은 사우디의 SOS 요청에 등을 돌리며 발을 빼고 있다. 빈 살만에게 트럼프는 가장 달콤했던 우군인 동시에, 결정적인 안보 위기의 순간에 가장 차갑게 등을 돌린 비즈니스 파트너였던 셈이다.
국부의 동맥 동서송유관 파괴와 벼랑 끝의 안보
미국의 냉대와 후티의 기세가 교차하는 위기의 정점에서, 사우디의 숨통을 죄는 결정타가 터졌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대동맥인 ‘동서송유관(Petroline)’이 정밀 드론 타격을 받아 화염에 휩싸이며 전면 폐쇄된 것이다.동서송유관은 단순한 산업 인프라가 아니다. 페르시아만 연안의 동부 유전(아브카이크)에서 출발하여 내륙을 가로질러 서부 홍해 연안의 얀부 항구까지 1,200km를 관통하는 이 송유관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 사우디가 원유를 해외로 수출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선이자 국가적 비상 탈출구’였다. 하루 수송량만 500만 배럴에 달하여 전 세계 원유 공급량의 5%를 책임지던 관로다.
이번 송유관 피격은 세 가지 치명적인 타격을 사우디와 국제사회에 안겼다.
첫째, 에너지 안보의 완전한 무력화다. 호르무즈 해협의 지정학적 위기를 회피하기 위해 건설된 우회로마저 적의 타격권 안에 완벽히 노출되어 있음이 증명되었다. 사우디의 석유 생산과 수출은 이제 동서 양쪽 모두에서 인질로 잡힌 형국이 되었다.
둘째, 글로벌 경제의 공급 충격이다. 단기적으로 하루 수백만 배럴의 원유 수송이 멈추면서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며 요동치고 있다. 이는 인플레이션 둔화를 기대하던 세계 경제에 거대한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셋째, 빈 살만의 최대 야심작인 ‘비전 2030’의 재정적 붕괴 위기다. 5,000억 달러 이상이 투입되는 초대형 스마트 신도시 ‘네옴(NEOM)’과 경제 다각화 프로젝트는 아람코의 막대한 석유 판매 수익을 원천으로 삼고 있다. 송유관 폐쇄와 지속되는 인프라 위험은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위축시키고 국부펀드(PIF)의 곳간을 압박하는 치명적 도화선이 되고 있다.
무함마드 빈 살만은 현재 권력 장악 이후 최대의 정치적·군사적 시험대에 올라서 있다. 내부적으로는 왕족과 종교계를 제압하고 압도적인 권력을 누리고 있으나, 외부적으로는 후티 반군의 비대칭 전력, 전통적 우방인 미국의 안보 공약 후퇴, 그리고 핵심 에너지 인프라의 피격이라는 복합 위기에 포위되었다.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빈 살만은 세 가지 선택의 기로에 직면할 것이다. 그 첫째가 외교적 현실주의로의 선회이다. 미국에만 의존하던 안보 전략의 파산을 인정하고, 중국의 중재를 적극 활용하여 이란 및 후티 반군과의 실질적인 휴전 협상을 이끌어내는 길이다. 이미 베이징 중재로 이란과 국교를 정상화한 바 있으나, 후티의 실체를 인정하고 상당한 양보를 제공해야 하는 정치적 굴욕을 감내해야 한다. 둘째는 군사적 자립과 다변화의 가속화이다. 서방제 첨단 무기 일변도의 방공망이 저가 드론 공세에 무력하다는 교훈을 바탕으로, 한국의 천궁-II나 중국의 레이저 요격 체계 등 실효성 있는 대드론·다층 방공망 구축에 박차를 가할 가능성이 높다. 셋째는 비전 2030의 속도 조절이다. 국경 안보와 인프라의 안정성이 담보되지 않는 미래 신도시와 천문학적 개발 사업은 모래 위에 지은 성에 불과하다. 실질적인 안보 재건을 위해 대규모 프로젝트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는 경제적 결단이 불가피할 것이다.
역사는 종종 대담한 야망을 품은 지도자에게 가장 가혹한 형태의 현실을 들이민다. 무함마드 빈 살만은 낡고 정체되었던 중세적 왕국을 첨단 미래 국가로 탈바꿈시키려 했던 혁신적 군주로 기록될 것인가, 아니면 군사적 오판과 지정학적 맹점 속에서 국부의 젖줄을 불태운 비운의 권력자로 전락할 것인가. 송유관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는 그가 추진해 온 ‘사우디의 봄’이 직면한 차가운 겨울을 상징하고 있다. 미국이라는 맹방의 변심과 후티라는 질긴 적수 사이에서, 사우디의 젊은 통치자가 던질 다음 승부수에 전 세계 에너지 시장과 중동의 명운이 걸려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