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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오라클 엘리슨... AI 아픈 손가락 "실리콘밸리 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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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오라클 엘리슨... AI 아픈 손가락 "실리콘밸리 악동"

오라클 창업주 엘리슨/ 사진=오라클  이미지 확대보기
오라클 창업주 엘리슨/ 사진=오라클
[김대호의 인물 오디세이] '실리콘밸리의 악동' 래리 엘리슨의 위험한 승부수

주식 대규모 매각 발표와 전격 보류


오라클의 창업자 래리 엘리슨은 실리콘밸리의 악동으로 통한다. 실리콘밸리에서 엉뚱한 일을 많이 벌이면서 얻은 별명이다. 미 공군 전투기를 사들여 직접 몰다 소음 규제 위반으로 소송을 당하는가 하면, 하와이의 6번째로 큰 섬 라나이의 98%를 통째로 집어삼키고, 경쟁사 뒤를 캐기 위해 사설탐정을 고용하는 등 그의 행보는 늘 상식을 비웃어 왔다. 반세기 동안 실리콘밸리의 온갖 규칙을 깨부수며 제국을 일군 이 팔순의 노장은 최근 또 한 번 자본시장을 뒤흔드는 희대의 기행을 연출했다.

발단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접수된 한 장의 공시였다. 오라클 지분의 40% 이상을 쥔 절대 권력자 엘리슨이 최대 5,000만 주, 시가 75억 달러(한화 약 10조 원)에 달하는 주식을 대거 매각하겠다는 '10b5-1 거래 계획'을 전격 발표한 것이다. 시장은 발칵 뒤집혔다. "고점에 달한 AI 랠리에서 마침내 창업자가 차익 실현에 나서는가", "아들 데이비드 엘리슨의 미디어 제국 인수를 위한 막대한 실탄 마련인가"를 두고 월가는 온갖 비관론과 추측을 쏟아냈다.

시장의 경악이 채 가시기도 전에 상상을 초월하는 반전이 이어졌다. 매각 계획을 공식 발표한 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슨 측이 단 한 주도 처분하지 않은 채 매각 계획을 돌연 '보류 및 철회'한다고 밝힌 것이다. 주식을 팔겠다고 공표해 시장을 뒤흔들어 놓고는, 하루아침에 "없던 일로 하겠다"며 판을 접어버렸다.공식적인 해명은 없었다. 그러나 노회한 승부사가 던진 이 기이한 소동은 단순한 변덕이나 행정 착오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오라클과 래리 엘리슨이 마주하고 있는 거대한 모순, 즉 '인공지능(AI) 인프라 올인'이라는 거대한 도박판이 빚어낸 극심한 내부 스트레스를 여과 없이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었다.

불과 1년 전 오라클 주가 급등에 힘입어 세계 2위 부호에 오르며 순자산 4,000억 달러를 넘보던 엘리슨의 자산은 주가 급락과 함께 반토막 났고, 오라클은 1,200억 달러가 넘는 천문학적 부채 속에서 회사채 신용등급이 정크(투기) 등급 직전인 'BBB-'까지 추락하는 수모를 겪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수만 명의 인력을 새벽 이메일 한 통으로 잘라내며 확보한 현금을 모조리 AI 데이터센터로 밀어 넣고 있다. 82세의 '악동'은 왜 또다시 벼랑 끝으로 회사를 몰고 가는가.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그의 기형적인 출생과 성장, 그리고 오라클 제국을 일궈낸 50년 궤적을 짚어보아야 한다.

결핍이 빚어낸 맹수: 사생아에서 반골 해커로


래리 엘리슨의 일생을 관통하는 내면의 엔진은 거대한 '결핍'과 '인정 욕구'다. 그는 1944년 뉴욕 브롱크스에서 19세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생후 9개월 만에 중증 폐렴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자, 양육을 감당하지 못한 생모는 시카고에 살던 엘리슨의 이모와 이모부에게 아이를 보냈다.그를 키운 양부 루이스 엘리슨은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로, 대공황 시절 모든 재산을 잃고 냉소주의에 찌든 인물이었다. 양부는 어린 래리에게 칭찬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오히려 걸핏하면 "너는 커서 결코 아무것도 되지 못할 놈", "실패자의 피가 흐르는 녀석"이라며 모욕과 언어폭력을 일삼았다. 가정 내에서의 깊은 불화와 억압은 소년의 가슴에 깊은 상흔을 남겼지만, 역설적으로 세상 모든 권위와 통념을 부정하고 오직 승리로써 자기를 증명해 보이겠다는 맹렬한 반골 기질을 키워냈다.

엘리슨은 정규 교육에 적응하지 못했다. 일리노이 대학교 어배너-샴페인에 입학했으나 양모가 사망하자 기말시험조차 치르지 않고 중퇴했다. 이후 시카고 대학교에 다시 들어갔으나 불과 한 학기 만에 학업을 영구히 집어치웠다. 대학 문을 박차고 나온 그가 쥐고 있던 밑천은 시카고 대학 시절 어깨너머로 독학한 기초 프로그래밍 지식과 낡은 폭스바겐 승용차 한 대가 전부였다.

1966년, 스물둘의 청년 엘리슨은 무작정 캘리포니아 북부로 향했다. 바야흐로 실리콘밸리가 태동하던 역사의 격변기였다. 웰스파고 은행, 암달(Amdahl) 등 여러 회사를 전전하며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엘리슨은 결코 천재적인 코더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기술 천재들을 압도하는 비범한 재능이 있었다. 바로 '상업적 직관'과 '기술 트렌드의 병목을 정확히 짚어내는 눈'이었다. 남들이 코드의 우아함에 집착할 때, 그는 코드가 어떻게 권력이 되고 막대한 자본으로 치환되는지를 본능적으로 꿰뚫어 보았다.
오라클의 태동: CIA 암호명에서 거대 소프트웨어 제국으로

1977년, 래리 엘리슨은 동료 엔지니어 밥 마이너(Bob Miner), 에드 오츠(Ed Oates)와 함께 단돈 2,000달러를 모아 오라클의 전신인 '소프트웨어 개발 연구소(SDL)'를 설립했다.당시 컴퓨터 업계는 IBM 연구원 에드거 F. 코드(Edgar F. Codd)가 발표한 관계형 데이터베이스(RDB) 이론 논문으로 술렁이고 있었다. 데이터를 테이블 형태로 저장하고 SQL 언어로 신속하게 검색하는 이 이론은 혁명적이었으나, 시장을 지배하던 IBM 경영진은 자사의 기존 메인프레임 비즈니스를 갉아먹을까 두려워 상용화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엘리슨은 이 거인의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IBM이 주저하는 사이, 코드의 논문을 바탕으로 즉시 상용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돌입했다. 첫 번째 대형 고객은 미 중앙정보국(CIA)이었다. CIA는 이 극비 데이터베이스 프로젝트에 비밀 암호명을 붙였는데, 그것이 바로 ‘오라클(Oracle, 신탁·예언자)’이었다.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마친 엘리슨은 회사 이름을 아예 '오라클'로 바꿨다. 1980년대 기업 전산화 붐이 일면서 전 세계 모든 은행, 통신사, 항공사, 정부 기관이 오라클의 데이터베이스를 앞다투어 사들였다. 오라클은 시장을 독점적으로 잠식해 나갔다.

엘리슨의 사업 방식은 언제나 공격적이고 무자비했다. 영업 사원들에게 "경쟁사의 숨통을 끊어놓으라"며 극단적인 실적 압박을 가했고, 제품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계약부터 체결하는 대담한 영업을 펼쳤다. 그 결과 1990년 오라클은 무리한 매출 과대계상과 분식회계 스캔들로 파산 직전까지 내몰렸다.

엘리슨은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내부 시스템을 뜯어고치며 기적적으로 회사를 살려냈다. 위기를 넘긴 엘리슨은 더욱 거친 포식자가 되었다. 2000년대 들어 피플소프트(PeopleSoft)를 18개월간의 진흙탕 싸움 끝에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집어삼켰고, 자바(Java)를 탄생시킨 썬 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를 인수하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거대 제국을 완성했다. 그는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를 공개적으로 저주하고, SAP와 세일즈포스를 조롱하며 기술 업계의 모든 이들과 전선을 형성했다.

AI 과잉투자의 덫:CAPEX와 신용등급 ‘BBB-’

2010년대 이후 클라우드 컴퓨팅 혁명이 도래하자 오라클은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 애저(Azure), 구글 클라우드에 밀려 구시대 레거시 기업으로 전락하는 듯했다. 시장은 엘리슨의 시대가 완전히 끝났다고 여겼다.그 편견을 뒤흔든 것이 바로 생성형 AI 혁명이었다. 오픈AI, xAI(일론 머스크), 메타 등 빅테크와 AI 스타트업들이 거대언어모델(LLM) 학습을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GPU와 초고속 클라우드 인프라를 갈구하기 시작했다. 엘리슨은 오라클 클라우드 인프라스트럭처(OCI)가 데이터 전송 속도와 비용 효율 면에서 빅3 클라우드보다 월등하다고 선언하며, 모든 자본을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쏟아붓는 도박을 감행했다.

초기 성과는 눈부셨다. OCI 부문 매출은 세 자릿수 폭발적 성장세를 기록했고, 수주 잔고(RPO)는 수천억 달러 규모로 불어났다. 2025년 가을, 오라클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엘리슨의 개인 자산은 4,000억 달러를 돌파하며 일론 머스크를 위협했다.AI 인프라 사업은 밑 빠진 독이었다. 엔비디아의 최신 칩을 수만 개씩 사들이고, 원자력 발전소와 연결된 기가와트(GW)급 데이터센터 부지를 확보하는 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모되었다.

오라클의 재무지표는 급속도로 망가졌다. 2026년 들어 단 한 분기에 집행한 자본적 지출(CAPEX)만 무려 285억 달러(약 38조 원)에 달했다. 전년 동기(85억 달러) 대비 3배 이상 폭증한 수치다. 반면 설비투자의 폭증으로 분기 잉여현금흐름(FCF)은 마이너스 50억 달러 안팎으로 곤두박질쳤고, 총부채는 1,250억 달러(약 170조 원)를 넘어섰다.

결국 글로벌 신용평가사 S&P는 오라클의 신용등급을 ‘BBB-’로 전격 강등했다. 투자 적격 등급 중 가장 낮은 단계로, 여기서 한 노치(Notch)만 더 떨어지면 기관투자자들의 자금이 일제히 이탈하는 '정크(투기) 등급'으로 추락하게 된다. S&P는 오라클이 오픈AI 등 아직 자체 수익 모델이 불투명한 신생 스타트업들에 대한 대규모 인프라 계약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으며, 부채를 통한 인프라 확장이 한계에 봉착했다고 경고했다.

월가에서는 "오라클이 소프트웨어 기업의 높은 마진을 포기하고, 저마진에 부채만 잔뜩 짊어진 위험천만한 유틸리티 하드웨어 기업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경고음이 터져 나왔다. 주가는 고점 대비 20% 넘게 폭락했고, 엘리슨의 순자산 역시 수천억 달러가 증발했다. 지분 매각을 전격 발표했다가 하루 만에 보류한 희대의 소동 이면에는, 이처럼 벼랑 끝으로 내몰린 재무적 긴장감과 주가 방어를 둘러싼 엘리슨의 초조함이 깔려 있었다.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 2만 명의 피눈물

재무적 압박이 목을 죄어오자 '실리콘밸리의 악동'이 꺼내 든 카드는 예상대로 피도 눈물도 없는 극단적 '비용 절감'이었다.오라클은 2026 회계연도 동안에만 전체 인력의 13%에 달하는 약 2만 1,000명을 감원했다. 글로벌 임직원 수가 14만 명 선으로 줄어들었으나 구조조정의 칼날은 멈추지 않았다. 2026년 9월 중순, 오라클은 기존 21억 달러 규모였던 구조조정 비용에 7억 달러를 추가해 총 28억 달러(약 3조 8,000억 원) 규모로 해고 프로그램을 확대 집행한다고 공시했다.곧바로 직원들에게 피의 숙청이 닥쳤다. 수많은 오라클 직원들이 새벽 6시, 회사로부터 차가운 통보 이메일을 받았다.

"오라클의 현재 비즈니스 요구사항을 신중히 검토한 결과, 광범위한 조직 개편의 일환으로 귀하의 직무를 없애기로 결정했습니다. 따라서 오늘이 귀하의 마지막 근무일입니다(Today is your last working day)."

수년, 수십 년을 헌신한 엔지니어와 마케터들이 하루아침에 사내 인트라넷 접근을 차단당하고 쫓겨났다. 감원 대상 부서 중 일부는 감축 비율이 10%를 훌쩍 넘었다.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와 레디트에서는 격렬한 분노가 터져 나왔다. "회사는 AI로 사상 최대 수주 잔고를 올렸다고 자랑하면서, 뒤편에서는 새벽 이메일 한 통으로 우리를 길거리로 내모는가?"자본주의의 논리는 냉혹했다. 엘리슨에게 중요한 것은 기존 레거시 소프트웨어를 관리하는 인간 노동자가 아니라, 엔비디아의 최신 랙을 설치하고 전력망을 연결할 차가운 현금이었다. 인간을 해고해 쥐어짠 수십억 달러의 인건비는 그대로 AI 데이터센터의 전력비와 수랭식 냉각 장치 비용으로 전용되고 있다. 인간을 덜어내고 기계를 채워 넣는 이 냉혹한 자원 재배치야말로, 래리 엘리슨이 실리콘밸리에서 반세기 동안 살아남은 생존 공식이었다.

래리 엘리슨의 궤적을 돌아보면, 그에게 전통적인 의미의 도덕적 잣대나 인류애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는 스티브 잡스처럼 인류를 위한 심미적 도구를 만들겠다는 예술가적 철학을 내세우지 않는다. 빌 게이츠처럼 자선 재단을 통해 빈곤과 질병을 퇴치하겠다는 선한 비전을 설파하지도 않는다.엘리슨은 철저하게 '이기는 게임' 그 자체에 중독된 자본주의의 투사이자 포식자다. 상대를 굴복시키고, 규칙의 틈바구니를 파고들며, 거대한 부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75억 달러 주식 매각 계획을 전격 공시했다가 하루 만에 보류한 이번 소동 역시, 시장의 반응을 떠보고 유동성 리스크를 저울질하며 판세를 흔들어보려 했던 그 특유의 전술적 기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지금 걷고 있는 외줄타기는 과거 그 어떤 위기보다 위태롭다. 분기마다 수백억 달러를 퍼붓는 동안 회사채 등급은 투기 등급 강등의 낭떠러지 앞에 서 있다. 만약 AI 거품론이 현실화되어 오픈AI나 메타 등 주요 고객들의 투자가 꺾이거나 수익 회수가 지연된다면, 1,200억 달러의 빚더미는 오라클 제국 전체를 삼키는 거대한 쓰나미로 돌아올 것이다.

그럼에도 '실리콘밸리의 악동'은 브레이크를 밟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82세의 나이에도 그는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도박판에 앉아 자신의 모든 제국을 판돈으로 밀어 넣고 있다. 결핍에 울부짖던 시카고 빈민가의 사생아는 전 세계 테크 생태계를 쥐락펴락하는 거대한 상어가 되었지만, 그가 헤엄치는 바다는 여전히 피비린내 나는 생존의 전장이다. 과연 이번에도 그는 시장의 비관론을 비웃으며 마지막 승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AI라는 거대한 파도에 휘말려 제국의 몰락을 지켜보게 될 것인가. 실리콘밸리 역사상 가장 매혹적이고 위험한 악동의 오디세이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