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춘 “수십 년 이어진 정책 틀 변화 가능성”…단기 물가지표·중립금리보다 통화량과 추세 중시
이미지 확대보기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통화량을 물가와 경기 판단의 핵심 변수로 다시 끌어들이면서 연준의 통화정책 운영방식에 상당한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통화주의는 경제의 통화량이 물가와 경제활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통화량 증가 속도를 통화정책의 핵심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경제학적 접근이다. 밀턴 프리드먼이 대표적인 통화주의 경제학자로 꼽힌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의 스티브 한케 선임 객원 칼럼니스트 겸 존스홉킨스대 응용경제학 교수와 존 그린우드 존스홉킨스대 응용경제·글로벌보건·기업연구소 연구원은 19일(이하 현지시각) 포춘에 낸 공동 기고문에서 워시 의장이 최근 보인 발언들이 전통적인 통화주의 접근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고 평가했다.
두 사람은 “워시 의장이 공식적으로 자신을 통화주의자라고 선언한 것은 아니지만 최근 잇따른 발언을 보면 연준의 기존 정책 틀에서 벗어나 통화주의에 가까운 접근을 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통화는 중요하다”…잭슨홀서 첫 신호
실제로 워시 의장은 지난달 28일 잭슨홀 경제정책 심포지엄에서 자신의 통화정책 원칙을 설명하면서 통화량의 중요성을 직접 언급했다.
그는 “요즘 유행하는 생각은 아니지만 통화는 통화정책과 중요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며 중앙은행이 만들어내는 통화뿐 아니라 은행과 금융시스템을 통해 생성되는 통화도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혁신 등에 따라 통화기초와 통화유통속도, 경제의 관계가 달라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통화가 금융여건과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한케와 그린우드는 이 발언을 워시가 기존 연준의 주류적인 정책 접근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첫 신호로 해석했다.
통화주의는 시중에 공급되는 통화량이 지나치게 빠르게 증가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반대로 통화 증가가 지나치게 억제되면 경제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정책금리 자체보다 경제 전체의 광의통화 증가율과 은행 시스템의 신용창출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유가·식료품 상승과 ‘인플레이션’ 구분
두 사람이 통화주의적이라고 평가한 두 번째 대목은 워시 의장이 개별 상품의 가격 상승과 경제 전체의 인플레이션을 구분한 점이다.
워시 의장은 1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연준이 식료품이나 에너지 등 개별 품목의 가격을 통제할 수는 없다”면서 “중요한 것은 이런 상대가격 변화가 경제 전체 물가에 지속적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케와 그린우드는 이를 전형적인 통화주의적 설명으로 평가했다.
예를 들어 국제유가가 급등하면 휘발유 가격은 오를 수 있지만 이것만으로 경제 전체 물가가 계속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이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통화주의 관점에서는 전체적인 물가 상승이 지속되려면 경제 전체의 통화량과 총수요 여건을 함께 봐야 한다.
이는 공급 충격으로 특정 상품의 가격이 오르는 현상과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을 구분해야 한다는 접근이다.
◇월별 지표보다 ‘추세’ 중시
워시 의장은 최근 소비자물가지수(CPI)가 FOMC의 금리 인상 결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느냐는 질문에도 개별 지표 하나에 정책을 좌우시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지표에는 잡음이 많다며 하나의 수치보다 추세가 중요하고 현재 인플레이션 추세가 여전히 지나치게 높다는 판단을 내놨다.
한케와 그린우드는 이 역시 통화주의적 접근과 일치한다고 분석했다.
통화량 변화가 실물경제와 물가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한두 달의 물가지표만으로 장기 물가 흐름을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연준은 16일 FOMC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려 3.75~4.00%로 높였다. 2023년 이후 첫 금리 인상이었다.
연준은 당시 미국 경제활동이 안정적인 속도로 확대되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며 2% 물가 목표로 보다 신속하게 복귀하기 위해 금리를 올렸다고 밝혔다.
◇중립금리 ‘r*’에도 거리 둬
워시가 이른바 ‘중립금리’에 거리를 둔 것도 두 사람이 주목한 부분이다.
중립금리는 경기를 부양하지도 억제하지도 않는 이론적인 금리 수준으로 흔히 ‘r*’라고 불린다.
워시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스웨덴 경제학자 크누트 빅셀의 중립 실질금리 개념을 배웠지만 실제 연준의 정책결정에서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한케와 그린우드는 통화주의자들이 관찰할 수 없는 중립금리 추정치보다 실제 통화량의 증가 속도를 통화정책의 긴축·완화 정도를 판단하는 데 더 유용한 지표로 여긴다고 설명했다.
금리가 낮다고 반드시 통화정책이 완화적인 것은 아니며 금리가 높다고 반드시 긴축적인 것도 아니라는 논리다.
통화 공급이 급격하게 늘어나면 초기에는 금리가 내려갈 수 있지만 이후 경제활동과 신용수요, 물가가 상승하면 금리가 다시 오르는 과정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연준 정책 틀 상당한 변화 가능성”
한케와 그린우드는 현재 미국의 광의통화 증가율이 연 6~8% 수준으로 여전히 높은 편이라며 연준의 2% 물가 목표와 일치하려면 통화량 증가 속도가 약 6% 수준으로 낮아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두 사람의 분석으로 연준이 공식적으로 제시한 통화량 목표는 아니다.
워시 의장도 지금까지 특정 통화량 증가율을 연준의 공식 정책 목표로 제시하지 않았다.
다만 워시는 잭슨홀 연설에서 통화량을 정책 판단에서 다시 살펴야 한다고 명확하게 언급했고 최근 FOMC 기자회견에서도 개별 물가지표보다 추세, 관찰하기 어려운 중립금리보다 실제 경제와 금융여건을 강조했다.
한케와 그린우드는 이런 발언들이 이어질 경우 연준의 통화정책 분석 틀이 수십 년간 유지해온 방식에서 상당히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연준이 공식적으로 통화주의를 새로운 정책체계로 채택한 것은 아니다.
현재 확인되는 것은 워시 의장이 통화량과 금융시스템의 역할을 과거보다 명시적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실제 FOMC 정책 결정에서 통화량 지표가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지가 연준의 정책체계 변화 여부를 판단할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