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본토 자본·인력 영향력 확대에 영어만으로 취업 어려워져
최근 3년 인재 유입 승인 41만건 중 75%가 중국 본토 출신
최근 3년 인재 유입 승인 41만건 중 75%가 중국 본토 출신
이미지 확대보기외국인 인재들이 다시 홍콩으로 몰리고 있지만 금융과 기업 경영 분야에서는 영어 능력만으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환경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 본토 기업과 투자자들이 홍콩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과거에는 영어만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던 금융·관리직에서도 중국 표준어인 보통화 구사 능력을 필수 조건으로 요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홍콩 경제 회복과 함께 외국인 전문직 인력이 돌아오고 있지만 중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구직자들은 예상보다 훨씬 어려운 취업 환경에 직면하고 있다고 3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지원서 100건 보내도 답변 드물어…외국인 구직자들의 현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멕시코 출신 호세 마누엘 로드리게스 모레노(36)는 지난 5월 홍콩의 지속가능 기술 관련 신생기업에서 퇴사한 뒤 새로운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공학을 전공한 그는 덴마크의 물펌프 제조업체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으며 2019년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기 위해 홍콩으로 왔다.
현재 기업 운영과 프로젝트 관리, 사업 확장 관련 직무를 찾고 있지만 채용시장 상황은 6년 전과 크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지원서를 50건, 60건, 100건씩 보내도 답변을 거의 받지 못한다"며 "광둥어나 보통화 구사 능력을 필수로 요구하는 채용 공고가 많아졌다"고 밝혔다.
로드리게스 모레노는 여전히 홍콩에 장기적으로 거주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초 아이가 태어나면서 가족의 미래를 위해 다른 선택지도 고민하고 있다.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외국인 전문직 인력은 금융업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 유럽 출신 외국인은 금융서비스 분야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수개월 동안 200건이 넘는 지원서를 제출했다.
지인들과 채용 담당자를 만나면서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벌였지만 아직 채용 제안을 받지 못했다.
이 구직자는 향후 취업에 불이익이 생길 가능성을 우려해 익명을 요청했다.
◇영어 중심 국제 금융도시에서 중국어 필수 시장으로
홍콩의 채용 환경 변화에는 중국 본토 기업과 투자자들의 영향력 확대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에는 홍콩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고위 관리자나 금융 전문가들이 영어만으로도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중국 본토 고객을 상대하거나 중국 기업의 홍콩 증시 상장을 지원하는 금융 전문가들에게 보통화 능력이 요구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금융·기술 분야 채용 전문업체 애스터리크루팅의 시드 시발 전무는 몇 년 전만 해도 보통화 원어민을 반드시 채용하지 않았던 기업들이 이제는 이를 필수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보통화를 구사하지 못하는 지원자들이 홍콩에서 일자리를 구하기가 훨씬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같은 변화는 중국 본토 출신 전문직 인력의 홍콩 유입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다.
홍콩 정부 관계자가 지난 3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다양한 인재 유치 프로그램을 통해 승인된 41만건 이상의 신청 가운데 약 4분의 3이 중국 본토 출신이었다.
영어 구사 능력을 갖춘 중국 본토 출신 인력들이 홍콩으로 유입되면서 중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외국인들은 채용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고 있다.
2024년 HSBC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한 레바논 출신 조르주 엘헤데리조차 보통화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은 홍콩 금융시장에서 중국어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음을 드러내는 사례로 소개됐다.
◇홍콩 자산관리 시장 중국 비중 59%…2030년 68% 전망
중국 본토 자본은 홍콩 금융시장의 주요 수익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의 국경 간 자산관리 시장에서 중국 본토가 차지하는 비중은 59%에 달했다.
BCG는 이 비중이 2030년 68%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본토에 이미 상장된 기업을 포함해 중국 기업들은 홍콩의 신규 주식 발행 시장에서도 주요 참여자로 떠올랐다.
블룸버그는 홍콩 경제가 2024년 이후 회복되는 과정에서 중국 기업들의 기업공개(IPO)와 투자 활동이 주요 동력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이같은 변화로 중국 본토 기업과 투자자들을 상대할 수 있는 언어 능력과 업무 경험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홍콩은 과거 국제 기업들의 아시아 거점으로서 영어를 사용하는 외국인 전문직 인력에 폭넓은 기회를 제공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홍콩 시위 진압과 엄격한 코로나19 방역 정책 이후 일부 다국적 기업들이 인력을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키거나 사업 거점을 이전했다.
그 결과 영어만으로 일할 수 있는 직책이 줄어든 가운데 최근 경제 회복은 중국 본토 자본과 기업들이 주도하면서 채용 수요의 성격도 달라지고 있다.
◇외국인 금융업 취업비자, 코로나19 이전의 절반 수준
홍콩에서 외국인 취업비자 발급은 최근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금융서비스 분야에서 지난해 승인된 외국인 취업비자는 2019년의 약 절반에 그쳤다.
외국인 구직자들은 중국어 능력 부족으로 지원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 국적의 루펜 샤(47)는 지난해 초 국제 법률회사에서 퇴사한 뒤 새로운 직장을 찾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샤는 광둥어나 보통화를 구사하지 못해 관심이 있는 채용 공고에도 지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그는 "관심이 있었지만 언어 능력을 명시적으로 요구해 지원하지 않은 일자리가 많았다"고 말했다.
샤는 결국 올해 초 인맥을 통해 홍콩의 독립계 법률회사에 취업했다.
외국인 고위 금융 전문가들의 선택지도 줄어들고 있다.
임원급 인재 채용업체 셰필드하워스의 사이먼 로버츠 아시아·태평양 지역 회장은 홍콩에서 외국인들이 지원할 수 있는 고위직이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은행에서 전무이사나 고위 임원으로 일하다가 직장을 잃으면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가 매우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5년 전과 비교하면 구직 가능한 직책의 범위가 크게 좁아졌다고 말했다.
◇기업 내부 전근은 대안…특수 금융직은 여전히 기회
외국인 전문직 인력들이 홍콩에 취업하는 방법도 달라지고 있다.
일부는 홍콩 현지 기업에 직접 지원하는 대신 해외 지사에서 근무하다가 홍콩으로 전근하는 방안을 선택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한 은행원은 최근 캐나다에서 대학을 졸업한 아들이 현지 금융회사에서 경력을 쌓은 뒤 1~2년 안에 홍콩으로 전근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홍콩 현지 채용에 직접 지원하는 것보다 기업 내부 전근이 더 수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런던에서 홍콩으로 전근한 또 다른 은행원은 홍콩의 일과 생활의 균형에 만족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외국인 직원에게 제공되는 각종 복지 혜택은 이전보다 줄어들어 당초 기대했던 만큼 유리한 조건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모든 외국인 전문직 인력의 취업 기회가 줄어든 것은 아니다.
정량적 금융거래 전문가와 헤지펀드 운용역 등 전문성이 높은 직종에서는 중국어 능력보다 수익 창출 능력이 중요한 채용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고빈도 거래업체인 점프트레이딩과 제인스트리트 등 글로벌 금융업체들은 홍콩에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홍콩 경제 회복과 함께 외국인 인력의 유입이 다시 늘고 있지만 중국 본토와의 경제적 연계가 깊어지면서 영어만으로 취업할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로드리게스 모레노는 홍콩 취업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외국인은 현지인보다 두 배의 노력을 해야 할 수도 있다"면서도 "다행히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멕시코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