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미국과 아시아의 AI 수용도 비교…일자리 불안·정부 대응·문화적 배경 분석
고령화·노동력 부족 겪는 한국·일본은 자동화 기대…미국은 기술 혜택 불평등 우려
고령화·노동력 부족 겪는 한국·일본은 자동화 기대…미국은 기술 혜택 불평등 우려
이미지 확대보기미국에서 인공지능(AI)에 대한 반감이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한 반면 한국과 일본,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AI에 대한 기대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자리 상실과 개인정보 침해 등 기술 발전에 따른 위험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공통적으로 존재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에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분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과 아시아의 AI 인식 차이를 분석한 주말 기획기사에서 경제적 여건과 정부 정책뿐 아니라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바라보는 문화적 가치관이 AI 수용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7일(현지시각) 진단했다.
특히 미국에서는 AI가 기존 일자리를 위협하고 기술기업에 부를 집중시키는 수단으로 인식되는 반면 한국과 일본 등에서는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 AI 반감 정치 쟁점으로…데이터센터 건설에도 반대
미국에서는 AI 기술 발전에 대한 불안이 일자리 문제를 넘어 사회·정치적 갈등으로 확산하고 있다.
AI가 대규모 실업을 초래하거나 사이버 공격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데이터센터 건설에 대한 지역사회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FT는 이번 미국 중간선거에서도 AI 데이터센터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감이 중요한 쟁점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NBC방송의 조사에서는 다수 유권자가 데이터센터 관련 문제가 투표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응답했다.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전력과 물을 많이 소비한다는 환경적 우려가 반대 이유로 제시되고 있지만 AI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론조사 전문가 패트릭 루피니는 “미국인은 아마존 물류센터처럼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다른 시설보다 AI 관련 시설에 훨씬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FT는 이같은 현상이 미국 사회에서 AI를 둘러싼 불신이 단순한 환경문제를 넘어 기술 자체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한국·일본은 고령화 부담…AI를 노동력 부족 해결책으로 인식
아시아 국가들의 분위기는 상대적으로 다르다.
FT는 중국과 아시아 상당수 국가에서 AI의 긍정적인 효과에 대한 기대가 미국보다 높고 위험에 대한 우려는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민주주의 국가라는 점에서 중국의 정치체제나 표현의 자유 제약만으로 이같은 차이를 설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FT가 주목한 첫 번째 요인은 인구구조다.
한국과 일본은 고령화와 노동인구 감소에 직면해 있다. 노동력 부족 문제가 심화하는 상황에서는 로봇과 AI를 사람이 하던 일을 대신 수행할 수 있는 기술로 받아들이기 쉽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상대적으로 인구 감소 압박이 덜하기 때문에 자동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할 경제적 유인이 약하다고 FT는 분석했다.
경제성장 경험의 차이도 영향을 미친다.
아시아의 여러 국가는 기술 발전을 통해 생산성과 소득이 향상되는 경험을 해왔다. 이같은 경험이 새로운 기술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저소득 국가에서도 AI가 교육과 의료서비스의 접근성을 높이고 선진국과의 격차를 줄일 수 있다는 기대가 나타나고 있다.
반면 이미 높은 소득수준에 도달한 서구 선진국에서는 AI가 기존의 사무직 일자리를 대체하고 생활수준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상대적으로 크다.
FT는 “사람들이 AI를 새로운 성장 기회로 볼지 기존의 경제적 지위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볼지가 기술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기술기업에 부 집중…싱가포르는 정부가 재교육 지원
정부의 정책 대응도 국가별 AI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FT는 미국에서 AI 산업의 이익이 일부 기술기업과 부유층에 집중되는 가운데 일반 노동자들이 기술 변화에 적응하도록 돕는 정책은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AI로 일자리를 잃을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다른 직업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반면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는 정부가 AI 활용을 장려하면서 노동자들의 기술교육과 고용 전환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국민이 생애 전반에 걸쳐 AI 관련 기술을 습득하도록 지원하고 있으며 AI에 따른 허위정보 확산과 일자리 대체 문제에도 대응하고 있다.
특히 신규 대학 졸업자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타르만 샨무가라트남 싱가포르 대통령은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회의에서 정부와 민간기업이 협력해 청년층의 취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에서도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새로운 기술을 교육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FT는 일본 기업의 실제 AI 도입률이 아직 낮다는 점도 함께 지적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2028년까지 정부 서비스의 절반에 AI 에이전트를 활용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FT는 이같은 정책적 대응이 시민들에게 AI가 사회 전체에 혜택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서구는 인간과 기계 구분…일본은 로봇을 친숙한 존재로 인식
FT는 경제적 요인만으로 AI에 대한 태도 차이를 모두 설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바라보는 문화적 가치관 역시 중요한 변수라는 것이다.
서구 사회에서는 인간과 기계를 서로 구분되는 존재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FT는 “유대교·기독교 전통에서는 인간과 비인간 존재 사이의 구분이 강조돼 왔으며 이같은 관점이 기술을 인간의 경쟁자나 위협으로 묘사하는 문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영화 '터미네이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엑스 마키나'처럼 인간을 위협하는 AI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대표적인 사례로 제시됐다.
반면 일본에서는 로봇이 인간을 돕는 친숙한 존재로 묘사돼 왔다.
FT는 일본의 대표적인 로봇 캐릭터인 '철완 아톰'을 예로 들었다.
1950년대 등장한 아톰은 인간과 대립하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을 돕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그려졌다.
FT는 자연과 사물에도 영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일본의 전통적 세계관이 로봇을 인간과 완전히 분리된 존재로 보지 않는 인식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에서도 유교적 세계관과 인간·자연·기술의 관계에 대한 전통적 인식이 AI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베르그루엔연구소의 빙 송 소장은 인간이 자연과 우주로부터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함께 발전하는 존재라는 관점이 중국의 기술 인식에 반영돼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FT는 국가별 문화를 고정된 특성으로 간주해서는 안 되며 실제 사회 내부에서도 기술에 대한 태도는 다양하다고 지적했다.
◇개인주의 사회는 자율성 침해 우려…기계가 더 공정하다는 인식도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차이 역시 AI 수용도를 설명하는 요인으로 제시됐다.
FT가 인용한 사회심리학 연구에서는 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중시하는 사회일수록 알고리즘이 인간의 고유한 판단과 선택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났다.
반면 집단적 협력과 사회적 조화를 강조하는 문화에서는 AI를 개인의 능력을 보완하고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기술에 대한 신뢰가 인간에 대한 신뢰와 연결된다는 분석도 나왔다.
캐나다의 심리학자 노아 카스텔로의 연구에서는 사회적 부패에 대한 인식이 높은 국가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알고리즘에 의한 의사결정에 상대적으로 거부감을 덜 드러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이 내리는 판단이 반드시 공정하다고 믿지 않는 사회에서는 오히려 기계의 판단을 더 신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FT는 중국에서 얼굴인식 기술을 연구한 인류학자의 사례도 소개했다.
중국인들은 얼굴인식 기술이 제공하는 편리함과 기존 관료적 절차보다 공정한 처리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에서는 같은 기술이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상대적으로 강했다.
◇AI 인식은 고정된 것 아냐…정책·기술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도
FT는 현재 나타나는 국가별 AI 인식 차이가 앞으로도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미국에서도 얼굴인식 기술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개인정보 침해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지만 스마트폰에 관련 기능이 도입된 뒤에는 편리함 때문에 널리 받아들여졌다.
AI에 대한 인식 역시 실제 활용 경험과 정부 정책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와 기술기업이 일자리 상실이나 소득 불평등에 대응하는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면 AI에 대한 반감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아시아 국가에서도 AI가 대규모 실업을 초래하거나 핵심 기반시설을 겨냥한 사이버 공격에 악용되는 등 심각한 사고가 발생하면 기술에 대한 낙관론이 약해질 수 있다.
FT는 AI의 위험에 대한 우려가 어느 한 지역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각국의 경제적 여건과 사회적 경험, 문화적 가치관에 따라 그 강도가 다르게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특히 기술 발전의 혜택을 사회 구성원들이 얼마나 공정하게 나누고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느냐가 앞으로 AI에 대한 수용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FT는 미국과 아시아의 차이가 AI 기술 자체에 대한 판단뿐 아니라 인간의 역할과 사회적 신뢰를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평가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