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치기 여행 이야기 다룬 미드폼 콘텐츠…소소한 재미 볼거리

고등학교 국어교사 박하경(이나영)은 어느 날 교실 창밖으로 바람에 날리는 비닐봉지를 바라보게 된다. "저 하찮은 일회용품도 날아다니는 데 나는 이 갑갑한 교실에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을까? 박하경은 그 길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게 된다.
웨이브는 박하경의 여행기를 묶어서 '박하경 여행기'로 내놓게 된다. 웨이브는 5월 24일 '박하경 여행기' 공개를 앞두고 지난달 27일 개막한 전주국제영화제에서 1~4화를 묶어서 공개했다.
'박하경 여행기'는 회당 25분에 8부작으로 이뤄진 미드폼 콘텐츠로 매회 이어지는 것이 아닌 옴니버스 드라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이종필 감독과 손미 작가가 다시 손잡고 만든 웨이브 오리지널 콘텐츠로 이나영 주연에 구교환, 한예리, 박인환, 선우정아, 서현우, 심은경 등이 특별출연한다.
디스커버리 채널에서는 관찰예능으로 '잠적' 시리즈를 내놓고 있다. 김다미, 권유리, 도경수 등 유명 연예인들이 1박 2일 동안 혼자서 낯선 여행지로 떠나 먹고 마시며 구경한다는 내용이다. '박하경 여행기'를 보기 전에 상상할 수 있는 내용은 이런 휴식과 같은 드라마였다.
그런데 '박하경 여행기'는 휴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박하경이 여행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들 매력이 넘치다 못해 독특하기까지 하다. 나중에는 그들의 서사까지 납득할 수 있었지만, 여러 사람을 만나는 그 여행은 '휴식'보다는 '모험'에 가깝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박하경 여행기'보다 '박하경의 기묘한 모험'이 더 어울리는 듯하다. 드라마를 연출한 이종필 감독은 "'박하경 여행기'라는 제목은 '걸리버 여행기'에서 착안했다"고 밝힌 바 있다.
요즘 유행하는 MBTI를 절대적으로 신뢰하진 않지만, 꽤 극단적인 '내향형'인 본 기자에게 박하경의 여행담은 '힐링'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배우 박인환이 특별출연하는 4화는 꽤 긴 시간 어르신의 잔소리를 '체험'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잔소리에 누적되는 스트레스는 해소되지만, 해소에 이르는 길은 길게만 느껴진다.
구교환이 특별출연하는 3화는 휴식에 꽤나 가깝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한 박하경은 보수동 헌책방과 밀면집을 방문하며 부산을 즐긴다. 그 가운데 우연히 자꾸 부딪히는 창진과 스치는 인연을 쌓아간다. '비포 선라이즈'나 에릭 로메르의 어떤 영화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장면은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도 떠오른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인연과 걱정 없이 걷고 이야기하고 공감하는 3화는 '박하경 여행기'가 '여행기'일 수 있는 정체성이 된다. 이 밖에 이상하게 치근덕대는 것 같은 소설가 서현우나 기괴한 예술세계에 심취한 제자 한예리의 에피소드는 재미있지만, 그 순간에 박하경은 사람의 마음 속으로 모험을 떠나는 베어그릴스처럼 보인다.
'박하경 여행기'는 소품 같은 재미를 주는 작품이다. 이 때문에 웨이브의 가입자 수를 유치하는 데 도움이 되거나 큰 흥행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악한영웅 class1'이나 '모범택시'처럼 카타르시스나 큰 재미를 주는 대신 소소한 웃음과 잔잔한 감동을 준다. 그래서 '박하경 여행기'는 웨이브에 꼭 필요한 콘텐츠다.
묵직하고 자극적인 콘텐츠만으로 플랫폼을 꾸리기에는 플랫폼이나 구독자 모두 부담스럽다. 가벼운 제작비로 부담 없이 찍은 자유분방한 콘텐츠는 대중교통 출근길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주는 잠깐의 휴식이 될 것이다.
'박하경 여행기'를 제작한 박은경 더램프 대표는 "출근길에 한 편씩 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5월 24일 이후 출근길 버스나 지하철에서 누군가 핸드폰을 보면서 피식댄다면, 그 사람은 '박하경 여행기'를 보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박하경 여행기'는 '힐링 여행'과는 거리가 멀다. 박하경이 여행을 떠난 곳은 당일치기 소도시가 아닌 이상하고 낯선 타인의 마음속이다. 그 기묘한 모험이 끝났을 때 시청자는 "모험을 마쳤다"는 작은 카타르시스와 힐링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소소하고 기묘한 모험은 5월 24일에 웨이브에서 시작된다.
여용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dd093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