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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보호주의에 거세지는 무역장벽 ‘파고’…EU CBAM 2026년 본격 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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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보호주의에 거세지는 무역장벽 ‘파고’…EU CBAM 2026년 본격 시행

각국의 탄소중립 정책 모습 드러내면 철강업계 등 국내 기업에 타격
IRA 등 미중 패권경쟁으로 국내 자동차 기업 피해 우려도

유럽연합(EU)이 철강 수입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2026년 도입키로 하자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기업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경북 포항시 포스코 포항제철소 전경.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유럽연합(EU)이 철강 수입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2026년 도입키로 하자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기업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경북 포항시 포스코 포항제철소 전경. 사진=뉴시스
우리나라는 탄소 순수출국에 해당하며 탄소국경조정이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국제교육에 내재된 국가별 이산화탄소 배출(20202.03월 기준). 자료=대외경제정책연구원
우리나라는 탄소 순수출국에 해당하며 탄소국경조정이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국제교육에 내재된 국가별 이산화탄소 배출(20202.03월 기준). 자료=대외경제정책연구원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 명분을 내세운 새로운 형태의 녹색보호주의 파고가 거세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이 역내 시장에 대한 역외기업의 접근을 제한하고 자국 기업의 환경 관련 분야 경쟁력 확보를 꾀하려는 조치지만, 탄소 순수출국인 우리나라 수출 업체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22일 정부와 산업계 등에 따르면 BMW와 볼보 등 EU 완성차 업체들이 국내 기업에 알이100(RE100)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전기차 부품을 제조하는 국내 한 기업은 스웨덴 볼보 자동차 업체로부터 재생에너지로만 생산한 제품의 납품을 요청받았으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납품 계약이 최종 무산됐다. 다른 자동차 부품업체도 BMW로부터 최근 2~3년 내 양산 제품에 대해 RE100 이행을 요청을 받았다. RE100 이행을 앞세워 EU가 본격적으로 보호무역을 강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처럼 각국의 탈탄소화 정책과 규제가 점차 모습을 드러내며 국내 수출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이나 환경정책을 표면적 이유로 내세웠지만, 새로운 형태의 녹색보호주의가 본격화하는 것이다. 각국의 규제수준과 목표가 달라서 탈탄소 정책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기업들은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 EU 탄소국경조정제도 2026년 본격 시행…탄소배출 많은 철강업계 긴장

최근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이어 또 하나의 무역장벽이 세워졌다. EU 이사회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지난달 최종 승인하면서 시행을 3년여 앞두고 있어 국내 산업계가 위기를 맞았다. 특히, 탄소 배출량이 가장 많은 철강업계를 비롯해 국내 산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온실가스 총배출량 6억8000만t의 14.3%(9724만t)를 철강업계가 차지하고 있다.

CBAM은 온실가스 감축 비용을 수입품에 부과해 국가 간 감축 노력 차이를 보정하기 위한 일종의 무역 제한 조치다. 역외 제품의 생산과정에서 배출된 온실가스에 대한 관세나 탄소세 등 세금을 부과하거나, 배출권 매입·제출 등이 가능하다. 오는 10월부터 전환 기간을 거쳐 3년 후 본격 시행한다. 전환 기간에는 실제 비용 부담은 없지만, 수입품의 탄소 배출량 정보보고 의무가 있다.

제도를 시행하면 실제 과세를 시작한다. EU에서 승인한 수입업자는 CBAM 적용 품목 수입 시 상품 유형별 수입 총량과 수입상품에 '내재한 탄소배출량' 만큼의 CBAM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이산화탄소 1t 배출량에 대해 EU-ETS 탄소배출권의 주간 평균가로 판매된다. 현재 t당 80~85유로인 배출권 가격은 100유로까지 오를 것으로 보인다.

내재 배출량은 생산 공정에서 발생하는 직접 배출량과 생산 공정에 쓰이는 전력을 생산하면서 발생하는 간접 배출량, 중간재에 내재된 배출량을 모두 포괄하는 일종의 제품 탄소발자국을 의미한다.
CBAM 입법안 초안의 5대 품목 기준 유럽의 주요 교역국 중 러시아, 우크라이나, 튀르키예, 중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부담액이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료= 국회미래연구원, 에너지재단
CBAM 입법안 초안의 5대 품목 기준 유럽의 주요 교역국 중 러시아, 우크라이나, 튀르키예, 중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부담액이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료= 국회미래연구원, 에너지재단

탄소국경조정은 탄소누출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탄소 배출량 추정치를 탄소배출권거래제와 연동해 탄소세를 부과하는 사실상 자국 산업 보호제도다. 시멘트, 철강 및 철강제품, 알루미늄, 비료, 전기, 수소 등 탄소 집약적이고 탄소누출 위험이 큰 6개 분야가 대상이다.

우리나라의 EU 총 수출액은 2021년 기준 전체의 9.9%인 636억1400만달러 규모다. 3위권 수출대상국으로 주요 수출 품목은 자동차, 석유화학 조선, 기계, 철강 등이다. 탄소 배출량이 높은 철강은 전 세계 대상 수출액 중 대EU 수출액 비중이 11.5%를 차지하고 있다.

국회미래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EU가 2030년 전 분야를 대상으로 CBAM을 확대 적용하고, 무상할당이 종료되면 국내 산업계의 총부담액은 간접배출을 포함해 8조2456억원 규모로 총 수출예상액의 11.3%에 해당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 CBAM 비용 부담을 최소화해야 하며, 장기적으로 저탄소화를 통해 탄소중립 달성이 필요하다”며 “EU-EST와 국내 배출권거래제 규제 강도의 상응성을 확보하고, 탄소배출량 측정방식·과정의 투명성도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지난해 발효된 미 IRA 세액공제서 국내 자동차 기업 제외

미·중 패권경쟁으로 인한 국내 자동차산업의 피해도 우려된다. 지난해 발효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기후변화 대응과 친환경 에너지 보급을 위한 법안이지만, 사실상 CBAM처럼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무역 성격이 짙다.

IRA 전기차 세액공제 관련 조항의 핵심 내용을 보면 미국과 캐나다. 멕시코 등 북미에서 최종 조립돼야 전기차 보조금에 해당하는 세액공제 대상이 된다. 배터리 핵심광물 조건도 까다롭다. 배터리 제조에 사용된 핵심광물은 40% 이상을 미국 또는 미국의 FTA 체결국에서 추출 또는 처리돼야 한다.

이 때문에 미국 내 전기차 생산기반이 없는 국내 자동차 업체는 IRA 법안 발효로 현지 전기차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다. 미국시장 점유율을 지난해 상반기 9%대까지 크게 높여온 국내 업계가 타격을 입게 됐다. 미국에 현대차·기아 전기차의 새로운 공장이 가동되는 시점인 2025년까지는 어려움이 예상된다.

미국이 IRA로 자국 내 투자유치에 나서자 유럽을 대표하는 프랑스 정부도 이에 대응해 녹색산업법을 내놓았다. 친환경 기술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전기차 보조금 차등 지급, 신축 공장 허가 기한 단축 등을 담았다.

배터리, 열펌프, 풍력 발전용 터빈, 태양광 패널 등 친환경 기술에 투자하면 투자 금액의 25∼40%를 세액 공제받을 수 있다.

이처럼 미국과 EU 등 선진국의 탄소중립 정책은 지구 온난화 대응을 표면적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보호무역주의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어 정부와 국내 산업계의 면밀하고 차질 없는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남상인 글로벌이코노믹 선임기자 baunamu@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