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빈소’와 ‘분향소’의 차이

글로벌이코노믹

‘빈소’와 ‘분향소’의 차이

이재경 기자의 말글산책
이미지 확대보기
[글로벌이코노믹 이재경 기자] 지난 22일 새벽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정부는 임시국무회의에서 그동안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신 김 전 대통령의 장례식을 국가장으로 치르기로 했습니다.

다음날 어느 신문사의 한 사회부 기자는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자 '통합과 화합의 승부사'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0시 22분 서울 종로구 연건로 서울대병원에서 운명을 달리하셨습니다"라는 내용의 기사를 보내왔습니다.
여기에서 ‘운명을 달리했다’라고 쓴 표현은 제대로 쓰인 걸까요?

‘운명(殞命)’은 ‘운명(運命)’과 발음이 같지만 뜻은 전혀 다른 동음이의어이죠. 한자어로 죽을 운(殞), 목숨 명(命)자를 써서 ‘사람의 목숨이 끊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죽었을 때 ‘사망했다’ 또는 ‘운명했다’고 합니다. ‘운명(運命)’은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다.’ ‘운명적인 사랑.’처럼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생사나 존망에 관한 처지’를 말합니다.

‘유명(幽明)’은 검을 유(幽), 밝을 명(明)자로 ‘어둠과 밝음’, 즉 ‘저승과 이승’을 아울러 이르는 말입니다. 저승은 사람이 죽은 뒤에 가는 곳이고, 이승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을 말합니다. 이처럼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은 있는 곳이 다르기 때문에, 죽는다는 것은 ‘저승과 이승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자어로는 “유명을 달리한다.”라고 씁니다.

그러니까 앞에서 기자가 써온 ‘운명을 달리했다.’라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유명을 달리했다’라고 하거나 ‘운명했다’라고 써야 맞습니다.

또 신문기사를 하나 더 볼까요?
"24일 오전 10시 현재 서울대병원 빈소를 찾은 조문객이 1만3000명에 달했지만 빈소는 서울대병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이 역대 최다선인 9선에 최연소 국회의원이라는 기록을 남긴 의회주의자라는 점을 기려 국회를 대표 빈소로 하고 더욱 많은 조문객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 바 있다."
여기에서 '서울대병원 빈소'와 '국회 대표 빈소'는 제대로 쓰인 걸까요?

‘빈소’와 ‘분향소’는 의미가 달라 구별해서 써야 합니다.
‘빈소(殯所)’에서 ‘빈(殯)’자는 시신을 입관한 후 장사를 지낼 때까지 안치하는 것을 의미하며, 안치 장소가 곧 ‘빈소’입니다. 즉 발인 때까지 관을 놓아두는 방(곳)을 의미하죠. 국내 대부분의 장례식장에는 ‘빈소’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은 5일 내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울대병원 빈소를 지켰다.”처럼 쓰입니다.

‘분향소(焚香所)’는 시신은 외국이나 국내의 다른 곳에 있지만 추모객의 조문 편의를 위해 영정만 놓은 채 분향을 할 수 있도록 임시로 설치해 놓은 장소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인이 외국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거나 자연사해 시신이 국내로 들어오기 전에 국내 장례식장이나 어느 장소에 조문할 수 있도록 일시적으로 설치해 놓거나, ‘빈소’는 서울에 있지만 지방에 있는 조문객들의 편의를 위해 각 지방에 설치해 놓은 곳이 ‘분향소’입니다. ‘분향소’에는 시신이 없는 것이 ‘빈소’와 다릅니다.

그러므로 위에 쓰인 기사 가운데 서울대병원은 빈소가 맞지만 국회에 설치된 것은 분향소가 되어야만 합니다.
이재경 기자 bubmu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