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필자는 우연한 기회에 김우중 회장을 만난 적이 있다. 거제도 애광원(김임순 원장) 모임에서 부산 중부교회 고 최성묵 목사님과 두 내외분을 가까이에서 뵈었던 것이다. 1980년대 초기는 조선업 현장에서 노사분규가 극심하던 시절이었다. 김 원장 말씀은 김우중 회장과 부인인 정희자 여사가 지적•중증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어렵게 운영되는 이 복지시설에 최고의 후원자라고 말씀했다. 당시 대우그룹은 현대•삼성•럭키금성(LG)•쌍용 등 재벌들과 더불어 경공업 중심에서 중화학•기계•건설업까지 진출하면서 수출과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우상과 같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대우의 역사는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1967년 설립한 대우실업에서 시작된다. 이후 세계경영을 바탕으로 고속성장이 지속되면서, 1998년에는 41개 계열사, 396개 해외법인에 자산총액이 76조7000억원으로 삼성을 제치고 현대에 이어, 재계 2위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대우(4위)•쌍용(5위)•기아(8위)•동아(13위)•진로(19위) 등은 외환위기 주범으로 몰리면서 차례로 쓰러졌다. 김우중 회장은 전경련 회장을 역임하면서 정경유착의 의혹과 문어발확장, 그리고 차입경영과 41조원의 분식회계 의혹제기와 IMF의 파고 등이 겹치면서 1999년 그룹이 해체되는 아픔을 겪었다.
대우그룹이 해체되자 2001년 공적자금 2조9000억원을 투입해 한국산업은행 등 정부기관들이 인수하면서 환율효과 등으로 실적이 좋아 배당수익만 2500억원 이상을 챙겼다.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로 매각협상이 결렬되면서 주인이 없는 회사가 되었다. 이후부터는 느슨한 관리•문어발경영이 지속되면서 비호세력으로 전직 고위 관료•장성•임원 등 60여명에게 자문•고문•상담역으로 평균연봉 8800만원•고급차량•사무실 및 운용비•법인카드•학자금•의료비•보험료 등 100억원이 넘는 급여를 자급하는 등 방만한 경영이 이어져, 최근 2년간 6조억원의 적자와 사내유보금 제로가 되었다.
이제 관치금융이라는 요술지팡이보다 시장원리로 법정관리수순을 밟아 가되, 여•야•정 협의체에서 노동자•지역주민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중요한 결단을 내려주고 이에 대한 책임을 져 줘야 관료들이 구조조정에 적극 나설 수 있을 것이다. 경제부총리께서 경제 정책에 대한 구관(舊官)들의 생각을 듣고 참고하기 위해 역대 부총리•장관 등 경재수장들을 모시고 만찬 간담회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 경제단체장들과 골프회동을 갖는가 하면 3당 지도부들과 만나서 경제활성화법과 쟁점법안 처리 등 경제현안에 대해 공감대를 나누고 있는 것은 매우 잘하고 있다고 본다.
주인이 없는 회사처럼 방치된 대우조선해양이 어렵다는 소식에 가장 가슴이 아플 사람인 김우중 회장이 ‘김우중과의 대화’ 출판기념회를 통해 돌아왔다. 그는 15년 동안 베트남 등지에서 국가자문을 하면서도 여전히 한국경제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2017년이면 대우그룹 창립 50주년을 맞이한다. 그는 우리들에게 “대우흥망사를 소재로 한국현대경제사의 건전한 논쟁”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그의 공과를 논하기 이전에 한국경제근대화에 매진했던 신화의 주역 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팔순이 넘은 재계 1세대오너에게 이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임실근 한국에너지공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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