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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입추가 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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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입추가 멀지 않다

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
“어머 , 저 하늘 좀 봐 ! 마치 세잔느의 풍경화 같네.”

카페에 앉아 창 너머로 눈길을 옮기던 친구가 탄성을 질렀다. 장맛비가 그치고 잠시 드러난 쪽빛 하늘은 탄성을 자아낼 만큼 눈이 시리도록 파랬다. 그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적당히 피어난 뭉게구름까지 떠 있어 더없이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눈으로 보기에는 매우 매혹적인 풍경이지만 그 풍경을 마음 편히 완상할 수가 없다. 쾌적한 카페 안과는 달리 문을 열고 나가면 찜통더위가 숨을 턱턱 막히게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폭염 속에서도 마스크를 상시 착용해야 하니 여름나기가 여간 힘겨운 게 아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하루빨리 가을이 왔으면 싶다.
그러고 보니 절기상 가을로 접어든다는 입추(立秋)가 멀지 않다. 입추는 24절기 중 열세 번째 절기로, 태양의 황경(黃經 )이 135도에 있을 때이다. 흔히 입추부터 입동(立冬) 전까지를 ‘가을’이라고 한다. 하지만 입추 무렵은 장마가 물러가고 맑은 날이 이어지면서 무더위가 정점을 향해 치닫는 시기이기도 하다. 저녁 하늘에 날아온 고추잠자리 떼의 군무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풋감을 바라보며 한가하게 가을을 떠올리기엔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폭염의 날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통상 사람은 기온이 18∼20도일 때 습도 60% 정도가 쾌적하다고 느끼고, 24도 이상이면 습도가 40%만 넘어도 무덥다고 느낀다고 한다. 습도가 높으면 피부에 땀이 나도 쉽게 증발하지 않고 열이 잘 식지 않아 이른바 ‘열 스트레스’가 커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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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은 이틀 이상 체감온도가 33도를 넘으면 폭염주의보를, 이틀 이상 35도 이상 지속되면 폭염경보를 발령한다. 폭염을 피하는 방법으로는 에어컨이 가장 효과적이지만 에어컨은 실외기를 통하여 열기와 습기를 배출하기 때문에 외부 환경을 더 열악하게 만든다. 지구는 편리성을 추구하는 인간 문화가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되어 점점 더 더워지고 있다. 탄소 가스로 인한 오존층 파괴, 개발을 위한 무분별한 숲의 파괴, 도시 개발로 인한 사막화 등은 지구의 기온을 점점 더 높이고 있다. 이런 면에서 폭염은 자연현상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자초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폭염은 몸을 지치게 하는 것만 아니라 몸과 함께 마음도 지치게 되는 것이 문제다. 매사에 의욕이 떨어지고, 공연히 짜증이 올라오기도 한다. 그렇다고 무력증에 빠진 사람처럼 그저 맥 놓고 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 나는 가까이에 있는 숲을 찾아간다. 장마와 폭염으로 지쳐갈 때 우리 곁에 숲이 있다는 사실은 그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무더위에 지쳐 짙푸른 숲이 멀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일단 그 숲에 들어서면 다양한 나무들이 어깨를 겨루며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녹음 짙은 숲은 마음을 초록으로 물들이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면 어느새 무더위는 사라지고 나도 나무처럼 춤추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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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일색의 나무들 사이에 피어난 보랏빛 산도라지 꽃이라든가, 점박이 나리꽃도 팍팍하기만 하던 마음에 쉼표를 찍어주고 낙엽 사이로 봉긋 솟아오른 이름 모를 버섯들과 눈을 맞추다 보면 숨을 턱턱 막히게 하던 찜통더위도 계곡 물소리에 씻겨 내린 듯 견딜 만해진다. 생명을 품고 기르는 숲에서 나도 그 일부가 되어 다른 생명의 존재들을 바라보는 일은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지….

폭염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도, 식물도 모두 견디기 힘든 시련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란 믿음이 없는 것은 아니나, 무작정 기다리고 인내하기보다는 숲을 찾아 더위를 피하고 가을의 기미를 알아차리는 것도 좋을 듯싶다. 입추가 바로 코앞에 와 있다.


백승훈 사색의향기 문학기행 회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