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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회화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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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회화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리는 성북동으로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모파상으로 일컬어지는 단편소설의 완성자 이태준 소설가의 자취를 더듬는 기행이었는데 첫 방문지가 ‘최순우 옛집’이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로 유명한 혜곡 최순우 선생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분으로 동양적인 안목과 심미안을 지닌 한국미의 순례자로 꼽힌다. 최순우 옛집은 재개발로 사라질 뻔한 것을 ‘내셔널트러스트에서 시민들의 성금으로 구입하여 관리·운영 중인 시민문화유산 1호이자 등록문화재 268호이기도 하다.

문학기행 해설을 맡은 터라 최순우 선생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혜곡이란 호의 유래를 새로이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율곡 이이 선생의 고향이 밤나무골을 가리키는 것처럼 아호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염두에 두고 짓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최순우 선생의 혜곡(兮谷)이란 호의 혜는 아무런 뜻이 없는 어조사 혜(兮)여서 고개를 갸웃했었는데 곧 궁금증이 풀렸다. 그의 아호를 지어준 간송 전형필 선생이 최순우의 고향이 해나무골이란 얘기를 듣고 해나무의 한자어인 괴(槐) 자를 넣어 괴곡이라 지을 수는 없어 궁리 끝에 발음이 비슷한 어조사 혜 자를 썼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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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나무란 다름 아닌 개성 사람들이 회화나무를 부르는 이명(異名)이다. 회화나무는 모든 나무 가운데서 으뜸으로 치는 신목(神木)으로, 옛사람들은 최고의 길상목(吉祥木)으로 여겼다. 회화나무는 학자수, 삼공나무로도 불린다. 이는 중국 송나라 때 왕우(王祐)가 뜰에다 세 그루의 괴목을 심고 자손들 가운데 삼공(三公)의 지위에 오를 것이라 예언했는데, 실제로 그의 아들이 삼공에 오른 데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옛날 선비들은 마을 입구에 회화나무를 심어 선비가 사는 곳임을 알리고, 뒷산에는 기름을 짤 수 있는 쉬나무를 심어 불을 밝히고 글을 읽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다. 최순우 선생의 고향 마을이 해나무골로 불릴 만큼 회화나무가 많은 동네였다니 그곳 또한 선비들의 고장이었던 모양이다.

중국 원산의 회화나무는 콩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으로 높이가 30m, 직경이 2m까지 자란다. 봄철 잎이 나기 전에는 수피가 아까시나무와 비슷해 구분이 쉽지 않다. 여느 나무들보다 잎과 꽃이 피는 시기가 늦은 편이다. 아까시나무 꽃이 봄의 끝자락을 향기롭게 수놓는다면 회화나무 꽃은 녹음이 한껏 짙어진 8월,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 연한 황색으로 피어나 여름을 장식한다. 새로 자라난 가지 끝에 작은 꽃송이가 모여 매달리듯 피는데 워낙 키 큰 나무이다 보니 나무에 핀 꽃보다 산책길에서 길 위에 떨어진 꽃을 먼저 보기 십상이다. 떨어진 꽃을 보고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꽃대가 휘어질 정도로 하얗게 피어난 자잘한 꽃들이 장관을 이룬 모습을 보고 놀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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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나무는 꽃과 열매, 껍질, 뿌리 등을 한약재로 사용하는데 주로 고혈압과 중풍, 손발의 마비 등 순환기계 질병과 치질 등에 효과가 크고 오래 먹으면 머리카락이 세지 않고 장수한다고 한다. 회화나무 꽃에는 루틴 성분이 많아 혈압을 내려주고 모세혈관을 강화해주는 효과가 있고, 열매에는 열을 내리고 혈액의 응고를 촉진해주는 성분이 있다고 한다. 특히 열매에는 천연 여성호르몬이 풍부해 갱년기 증상을 완화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하니 여러모로 이로운 나무가 아닐 수 없다.

회화나무는 느티나무, 은행나무, 팽나무, 왕버들과 더불어 우리나라 5대 거목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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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리에서 수백 년의 세월을 묵묵히 지키고 선 회화나무 노거수를 보면 그 우뚝한 모습에 절로 두 손을 모으게 된다. 그러고 보니 우리 문화재 발굴과 보존에 평생을 바친 혜곡 최순우 선생도 우리가 기리고 지켜야 할 한 그루 회화나무 같단 생각이 든다.


백승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