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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칼럼]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디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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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칼럼]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디테일

김신혜 플랜비디자인 컨설턴트
김신혜 플랜비디자인 컨설턴트
MZ니 K-컬처니, 요즘 시대를 수식하는 다양한 표현들이 쏟아지지만 뭐니 뭐니 해도 '디테일의 시대'라고 부르고 싶다. 동양의 언어는 고맥락적이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안다는 말 또한 얼마나 맥락을 중요시하는 문화권인지를 의미하는 것 아닐까.

우리는 서양의 언어처럼 편하게 "아니오"를 외치지 못한다. 말인즉슨 화자가 앞뒤로 하는 이야기를 포함하여 형용사나 뉘앙스도 매우 중요하다는 뜻이다. 1990년대생은 할 말은 다 한다며 이를 MZ의 속성처럼 얘기하던 데이터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생각보다 많은 MZ들은 더더욱 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꺼내어 표현하지 않는다. 최근에 MZ는 초고맥락적 커뮤니케이션을 한다는 글을 읽고 깊게 공감한 적이 있었다. 비대면 소통에 익숙할수록 목소리와 표정 등의 비언어적인 요소가 배제된 상태에서 더 맥락을 파악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비대면에서는 속 시원하게 "아니오", "싫은데요"를 외치면 좋을 것을 우리의 젊은 세대들은 오히려 눈치력을 고도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고맥락적 커뮤니케이션이 심화될수록 중요해지는 것은 디테일임이 분명하다. 이모티콘 하나, 띄어쓰기, 물음표나, 점의 개수, 답장의 타이밍, 문장을 어떤 호흡으로 쪼개느냐를 통해 우리는 상대의 뉘앙스를 파악한다. 이렇게 민감해진 세대에게 대면상 커뮤니케이션은 온갖 자극들이 난무하여 해석의 늪에 빠져들기 십상일 테다. 최근에는 콜포비아(전화 공포증)를 겪고 있는 사람들도 대다수라는 이야기가 많이 들려온다. 가수 아이유도 전화 통화는 부담스럽다고. 역시 예측 불가한 상대방의 디테일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곤란해질 것 같거나, 혹은 또 너무 많은 디테일이 배제된 상태에서 내가 어떻게 맥락을 파악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도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조직은 아직 그렇게 섬세하지만은 않다. 섬세한 것이 친절함의 또 다른 표현이라면 여전히 우리가 마주하는 커뮤니케이션은 많은 경우 일방적이고, 우악스럽고, 거칠기까지 하다. 리더 대상 교육의 시작은 커뮤니케이션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회사에서 가장 섬세한 커뮤니케이션을 고민하는 부서는 마케팅 조직일 가능성이 크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고객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구슬려야 하니까. 그런데 소비자의 마음 얻기보다 직원 마음 얻기가 더 힘들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이라 믿는다. 어쩌면 말 한마디의 디테일을 가장 고민해야 하는 것은 조직문화를 다루는 인사 조직이어야 하는 게 아닐까. 명절에 일하는 현장 직군이 대다수인 조직에서 전사 레터에 "행복한 연휴가 돼라"고 얘기한다거나, 계속되는 연봉 동결 속 선심 쓰듯 원래 다음 주 월요일이 월급날인데 "이번만 특별히 목요일에 줄게"라는 말에 우리 구성원들은 어퍼컷을 맞는다. 비록 누군가는 쉼을 선택할 수도 있는 연휴에도 애쓰며 고생하는 구성원들이 있어 고맙다거나, 며칠 앞당겨 월급을 주는 것밖에 지금은 할 수 없어 미안하다는 디테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경영진의 메시지도 마찬가지다. 다짜고짜 조직개편을 한다거나 회사의 정책을 바꾸면 구성원들은 어리둥절해진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변화인가? 경영진이 오랜 고민 끝에 우리는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는 말에도 빛 좋은 개살구 같다 여기면서 아무도 실천하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는 이유는 왜일까? 지시와 명령에 익숙한 조직은 친절함을 잃어버린다.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메시지를 통보하면서 수평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것은 그간의 고민과 의도를 충분히 설명하기에 너무 바쁘고 귀찮은 '나'를 위한 배려이며, 혹은 그 고민조차 제대로 공유할 준비가 되지 않은 부족한 '나'만을 위한 배려일 터다.

구성원들은 항상 궁금하다. 도대체 회사는 왜 이러는 걸까? 도대체 경영진은 무슨 생각일까? 그들은 윗분들이 용기 내어 의사결정한 결과물이 아니라 그 용기의 과정이 궁금하다. 어떠한 고민이 있었고 어떠한 기준으로 이러한 결정을 하는지, 이러한 메시지를 전하는지를 알게 되면 모든 결정과 메시지는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공격이 아닌 그의 고민을 위해 내가 도울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진정한 수평이란 내가 아는 것을 다른 사람도 아는 것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막상 설명하기 시작하면 그리 많은 단어들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진정한 변화는 수평으로부터 시작된다. 진짜 수평은 우리가 묵인해온 디테일들, 화자의 고민과 결정에 대한 용기의 과정을 설명하고 공유할 때에 비로소 가능해진다.

내 맘 같은 건 나 하나뿐이다. 하지만 내 맘을 설명할 때에 모든 이들은 듣는다. 설명한다는 행위는 상대방을 들을 수 있는 사람으로 존중한다는 것이다. 존중을 받은 청자 중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이해를 하고, 그중 기대보다 많은 이들이 공감을 해줄 것이다. 공감하는 이들은 동의를 하거나 동의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을 시작할 것이고, 동의하지 못하는 이들을 설득하기 시작하기도 한다. 우리 조금은 더 친절해져 보자. 디테일을 놓치지 말자.


김신혜 플랜비디자인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