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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비 오는 날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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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비 오는 날의 단상

백승훈 시인
백승훈 시인
연일 비가 퍼붓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물난리로 수많은 사람이 한순간에 생명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었다. 언젠가부터 국지성 호우란 말이 유행처럼 떠돌더니 이젠 ‘극한호우’란 생경한 용어까지 등장했다. ‘극한호우’를 검색해보니 기상청이 긴급재난문자 발송 기준을 설명하면서 사용한 용어라고 한다. 보통 1시간 강수량이 30㎜를 넘으면 ‘집중호우’라고 하는데 ‘극한호우’는 ‘매우 짧은 시간에 특정 지역에 집중되는 극단적인 비’를 가리킨다. 양동이로 들이붓듯 쏟아지는 비는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라 할 수 있지만, 그중엔 인재(人災)임을 자인할 수밖에 없는 주된 원인이 도사리고 있다. 해수면 온도의 상승과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급격한 기후변화의 주된 원인도 인간에게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리는 비를 탓할 뿐 좀처럼 삶의 방식을 바꾸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나 역시 숲을 찾아 꽃을 보거나 초록 그늘에 쉬면서도 자연이 주는 혜택만 누렸을 뿐 그들을 지키고 보존하는 데엔 게을렀음을 부정하지 못한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처럼 무엇 하나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 그런가 하면 지금의 내 모습이 살아온 세월의 이력인 것처럼 지금 우리가 겪는 이 난리도 언젠가 우리 인간이 행한 일에 대한 대가일 것이다. 자연을 함부로 대한 벌은 아닐까. 꽃을 함부로 꺾고, 나무를 함부로 베어내며 인간 아닌 다른 생명을 함부로 대했던 대가를 뒤늦게 치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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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친 틈을 타 중랑천에 나가 보았다. 뉴스마다 남쪽에서는 초유의 물난리로 수많은 수재민이 발생했다는데 다행히도 중랑천은 무탈하다. 둑 위에 올라 바라보는 중랑천은 수량이 불어나 물의 흐름이 예전보다 격렬해지고 물소리도 한층 우렁차졌지만 멀리서 보면 유유히 흐르는 게 그리 사납게 느껴지지 않는다. 궂은 비 속에서도 꽃들은 여전히 환한 얼굴이다. 청초한 자태를 잃지 않은 옥잠화와 요염한 호랑 반점의 나리꽃, 나무수국의 탐스러운 꽃송이들이 물방울을 머금고 있다. 쥐방울덩굴 잎에도 물방울이 맺혀 있다. 중랑천을 소리치며 흘러가는 저 거센 물살도 처음엔 한 방울의 작은 물방울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생태계(ecosystem)’라는 말은 ‘집’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와 체계를 뜻하는 시스템(system)이 결합한 말이다. ‘관계와 고리’는 생태계의 기본 원리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고리로 연결되어서 서로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세계는 관계 구조의 생태 공동체이다. 따라서 생태를 구성하는 고리 혹은 사슬이 끊어지면, 생태계는 생명을 상실하거나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오만을 버리고 스스로를 자연의 일부라고 여기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모든 생명체는 유기적 관계 속에서 상호 연결된 구성원으로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모든 생명은 어느 것 하나 귀하고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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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의 유사성을 통해 '영성'을 강조한 프리초프 카프라는 "착취적이고 파괴적인 행동 양식을 바꾸지 않으면 인간 문명은 지구에서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자연은 인간을 위한 환경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 자원은 늘 넘쳐나고 문제가 생기면 얼마든지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인간의 오만이 생태계의 위기를 유발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연을 떠나서 살 수 없다. 늘 자연의 품에 기대어 살면서도, 욕망에 떠밀려 생태계를 위협하는 것은 자해행위와도 같다. 우리가 욕심을 버리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꿈꾸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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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