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간 약물로 인한 성범죄를 의심하여 감정을 의뢰하는 사건이 크게 늘었다. 몇 년 전 강남의 한 클럽에서 약물 성범죄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GHB를 술잔에 타는 방식으로 투약하여 의식을 잃게 한 후에 성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성범죄에 쓰이는 약물은 GHB 외에도 졸피뎀, 케타민, 로히프놀 등이 있다. 이런 약물을 투약한 피해자는 말도 하고 움직일 수 있지만 블랙아웃을 동반하므로 범행 당시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약물로 무력화된 상태에서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걷거나 움직이는 장면이 CCTV에 포착되면 동의하에 성관계한 것으로 여겨서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투약한 약물은 12~24시간 이내에 배출되므로 범행 당시 약물을 복용한 상태라고 입증할 수도 없다.
약물을 사용하여 정신을 잃게 만드는 것은 폭행, 협박으로 평가되므로 이 경우 준강간이 아니라 유형력을 사용하여 간음하는 강간죄가 된다. 그런데 약물의 성분은 진정 작용하는 중추신경 억제제가 대다수이다. 알코올과 함께 투약하면 상승작용을 하고 진정 효과가 더욱 강해져서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영구적으로 뇌 손상을 주거나 장기가 훼손될 수 있고 심장마비, 호흡곤란, 뇌출혈, 신경계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약물을 사용하여 강간하면 강간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강간상해·치상죄가 되고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처벌된다.
대법원은 향정신성의약품인 졸피뎀을 복용시켜서 강간한 사건에서, 약으로 인해 건강 상태를 불량하게 변경시키고 생리적 기능을 훼손했다며 강간치상죄를 인정한 바 있다. 비록 약물 사용 결과 특별한 부작용을 보이지 않아 외관상 상흔이 없고 자연치유 된다고 해도 상해로 인정한 것이다.
이때 강간치상과 강간상해는 처벌형이 같아서 구별의 실익이 없으나, 약을 투약하여 의식을 잃게 만든 행위를 폭행으로 평가하면 폭행을 통해서 생리적 기능을 훼손한 것으로 강간치상이 되고, 상해로 평가하면 강간상해가 된다.
이렇게 약물 이용 성범죄는 피해자의 성적 자기 결정권, 신체적·정신적 완전성과 자유, 건강권 등 기본권을 현저하게 침해하여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따라서 수사기관과 의료기관은 성범죄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증거를 확보하고 피해자를 위한 치료가 병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진실을 밝히기 위한 효율적인 수사 절차와 피해자 인권을 위한 법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민경철 법무법인 동광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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