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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렌즈] 승자 없는 이·팔 전쟁, 한국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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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렌즈] 승자 없는 이·팔 전쟁, 한국의 선택은

한국이 '중동 2.0시대' 열려면 확전 막는 데 앞장서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8일 이스라엘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에게 미국의 9·11테러 대응과 같은 실수를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는 미국2001년 9·11테러 뒤 분노에 휩싸여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이라는 실수를 저질렀다이스라엘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21년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강행했다. 그러나 과정에서 이슬람국가(IS)의 공항 테러로 미군 13명이 숨지는 등 혼란스러운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여론조사 결과를 집계하는 파이브서티에이트(538)에 따르면 취임 직후였던 2021년 3월 22일 고점(55.1%)을 찍었던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은 그해 8월 아프가니스탄 철군 혼란으로 급락했다. 차기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바이든은 현재 40% 초반대의 지지율에 머물러 있다.
바이든의 네타냐후에 대한 충고는 그런 점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문제는 극우 강경파 네타냐후 총리의 귀에는 그런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네타냐후는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을 ‘9·11’이 아니라 홀로코스트’로 여긴다.

네타냐후 총리는 24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하마스가 기관총으로 무고한 유대인을 쏜 것은 3만4000여 명의 유대인이 희생된 키이우 바빈 야르 학살에 비유할 수 있다"고 했다. 바빈 야르 학살은 1941년 9월 독일과 소련의 전쟁 중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의 골짜기 바빈 야르에서 벌어진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뜻한다. 네타냐후는 하마스를 '신(新)나치'라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네타냐후에게 막후에서 가자 지구 지상전 연기 또는 취소를 권고할지 모르나 이를 드러내놓고 압박하지는 못한다. 유대인이 미국의 정계·관계·재계·문화예술계를 장악하고 있고, 이들과 척을 지면 정치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29세에 상원의원에 당선돼 1973년부터 2009년까지 재임했고, 부통령 8년을 지낸 뒤 대통령이 된 베테랑이다. 그는 외교·국방 전문가로 누구보다 이·팔 전쟁 확전이 몰고 올 지정학적 충격을 잘 알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상대로 한 테러와의 전쟁을 20년가량 치렀지만, 끝내 승리하지 못했다. 바이든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비교할 수 없는 군사력이 있지만, 하마스를 결코 ‘섬멸’할 수 없다고 믿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973년 욤키푸르 전쟁(이스라엘과 아랍 간 전쟁)이 발발한 지 거의 50년이 지났으나 중동의 안정 피비린내 나는 신기루로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이라크·아프가니스탄 간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자가 없었듯이 이·팔 전쟁의 승자도 있을 수 없다. 이스라엘이 군사력으로 가자 지구를 점령할 수 있지만, 3000여 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이·팔 분쟁을 끝낼 수는 없다. 네타냐후 총리가 천명한 ‘하마스 완전 파괴’는 신기루이고, 허황한 정치 구호에 불과하다.
중동 사태는 수습되기보다 악화하고, 휴전보다는 확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윤석열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국빈 방문을 통해 202억 달러 규모의 수출·수주 계약을 따낸 ‘오일 머니 잭팟’도 심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한국 정부가 '중동 빅3'인 사우디·카타르·UAE와의 협력을 기존 원유·건설 위주에서 청정에너지·디지털·스마트팜·문화 등 전방위로 확대하는 '중동 2.0시대'를 열려면 무엇보다 먼저 국제무대에서 이·팔 전쟁 확전을 막는 데 앞장서야 한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