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돌풍이 연일 뉴욕증시를 강타하고 있다. 인공 지능(AI)이 뜨면서 AI 제조에 필요한 반도체 이른바 GPU 수요가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 AI 반도체 GPU를 만드는 반도체 팹리스인 엔비디아가 인공지능 반도체 돌풍의 핵인 셈이다.반도체 GPU 생산의 원조는 AMD 이다. 엔비디아가 만들기 훨씬 이전부터 AMD는 각종 GPU를 생산해왔다 .AI 폭풍 속에 엔비디아가 먼저 뜬 것은 오픈 AI 의 생성형 GPT에 납품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AMD가 생성형 GPT에 한발 늦었으나 범용 GPU 에서 저력이 있은 만큼 추격한다면 엔비디아를 따라 잡을 수도 있다.
AI 반도체 시장의 잠재력이 분명한 만큼 엔비디아의 뒤를 쫓는 경쟁사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중 대표주자는 AMD다. AMD는 지난해 12월 엔비디아의 서버용 그래픽처리장치(H100)의 성능을 뛰어 넘는 AI 반도체 M1300X 시리즈를 시장에 내놓았다. AMD의 AI 연산 성능이 H100보다 1.3배 높고 메모리 용량도 크다. 그 성능을 인정받아 이미 메타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주요 빅테크와 공급 계약도 마쳤다. 실제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AI 시장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아직 초입 단계라 앞으로의 AI의 발전은 이전과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엔비디아의 H100이 AI 훈련 워크로드 측면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AI 시장은 한 칩 제품이 다른 칩 제품보다 더 나은 이분법적 시장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AMD가 MI300을 통해 AI 추론 시장에서 큰 수요를 창출할 것이라고 자신한 것이다.
물론 엔비디아의 시장 지배력은 단단하다. AMD가 자체 소프트웨어(ROCm)를 통해 쿠다의 빈틈을 파고 들고 있지만 워낙 엔비디아의 쿠다 지배력이 강고해 AMD의 GPU가 기를 펴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AMD가 엔비디아 추격에 나서더라도 최근 엔비디아가 기록한 주가 흐름을 보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AMD는 그 지배력 돌파도 시간 문제라고 호언하고 있다. AMD는 ‘MI300X’라는 최첨단 인공지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공개하고, 올해 말 출시한다고 밝혔다. GPU는 대규모 인공지능 언어모델(LLM)을 훈련시키는데 필수적인 칩이다. 이 시장은 엔비디아가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리사 수 최고경영자(CEO)는 “LLM의 중심에는 GPU가 있고, GPU는 생성 AI를 가능하게 한다”며 “이는 회사의 가장 크고 전략적인 장기 성장 기회”라고 말했다.
AMD의 MI300X 칩은 최대 192GB의 메모리를 탑재해 큰 AI 모델에 장착할 수 있다. 이는 엔비디아 H100의 120GB 메모리를 능가하는 것이다. 리사 수 CEO는 “MI300X 칩은 엔비디아 H100 대비 2.4배의 메모리 밀도와 1.6배 이상의 대역폭을 제공한다”고 했다. AMD가 인공지능 GPU 제품을 출시한 이유는 이 시장이 고속 성장 중이기 때문이다. 리사 수 CEO는 “우리는 데이터 센터 AI 칩 시장이 올해 300억달러에서 연간 50% 이상 성장해 2027년에는 1500억달러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AMD MI300X의 가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뉴욕증시에서는 엔비디아의 H100보다는 쌀 것으로 예상한다. AMD 칩이 엔비디아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엔비디아 H100의 경우 개당 가격이 3만달러가 넘는다.
AMD는 제리 샌더스(Jerry Sanders, 1969~2002)가 창업했다. 페어차일드 반도체에서 근무하다 퇴사해 페어차일드 동료 7인과 함께 AMD를 창업했다. 초기엔 레지스터를 생산하는 반도체 제조 업체로 명성을 쌓다가 인텔의 클론칩 제조로 주력 생산을 변경해 중견 기업으로까지 AMD를 성장시킨다. 인텔의 공세에 수많은 클론칩 제조 회사들이 몰락하는 와중에도 AMD를 끝까지 살려내 중앙 처리 장치 제조업계 2인자의 자리에까지 올려놓는다. '진짜 사나이는 반도체 생산 공장쯤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Real men have fabs.)'라는 명언을 남겨 업계의 능력자로서 성공한 그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헥터 루이즈(Hector Ruiz, 2002~2008)는 2대 CEO이다. 전문 경영인 출신 CEO로 현재의 AMD를 있게 한 경영의 귀재 또는 AMD 암흑기의 서막을 연 인물이라는 양면적인 평가를 받는다.
그는 AMD가 살아남으려면 AMD는 팹리스 회사가 돼야 한다는 판단을 내려, 반도체 생산 공장을 조금씩 매각해가며 AMD를 팹리스 회사로 탈바꿈 시킨다. 창업주인 제리 샌더스의 신조 즉 진짜 사나이는 반도체 생산 공장쯤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어긴데다가, 회사의 자체 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는 반도체 생산 공장을 반도체 생산 회사로서 업계에 첫 발을 디딘 AMD의 뿌리 깊은 정통성까지 훼손하면서 없앤다고 하자 처음엔 어마어마한 반대에 직면했다. 그 당시 AMD 자체 생산 라인은 애슬론 생산으로 불나게 돌아가고 있던 시절이라 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사업부를 판다는 결정을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헥터 루이즈 사장은 AMD를 팹리스 회사로 전환시켰다. 2010년대 들어 반도체 공정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증가하면서 반도체 생산 공장 매각은 신의 한 수가 됐다. 인텔이 14nm 공정에 정체될 때 AMD는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 생산 회사인 TSMC 덕에 10nm, 7nm 공정 향상 혜택을 입었다. 후임 CEO인 로리 리드도 AMD가 간간히 흑자를 내고 지금까지 살아 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이 상황을 예측한 헥터 루이즈의 기막힌 혜안 덕분이었다고 칭찬했을 정도이다.
문제는 ATI 인수였다. ATI 인수 이후 AMD는 대기업 중 x86 CPU와 PC 메인스트림 그래픽칩을 함께 설계할 수 있는 유일한 대기업이 되어 SoC 분야와 이기종 아키텍처 개발에서 높은 경쟁력을 얻게 됐으나 이 인수 과정에서 오랜 협력 관계였던 엔비디아를 적으로 돌렸다. 무리한 자금 동원으로 인해 연구 개발 예산을 대폭 삭감했는데 페넘 개발 부서가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페넘 출시가 1년여 가량 지연돼 출시 시기를 한참 놓쳤다. 설상가상으로 TLB 버그가 터지는 악재가 겹치며 CPU 경쟁에서 AMD가 완전히 인텔에게 밀리는 단초를 제공했다. 결국 헥터 루이즈 사장 재임 말기 AMD는 적자로 전환됐다. 헥터 루이즈의 내부자 거래 혐의가 들통나면서 헥터 루이즈는 CEO에서 물러났다. 이듬해에는 이사회에서도 물러났다.
3대 CEO는 더크 마이어(Dirk Meyer, 2008~2011)이다. 엔지니어 출신으로 AMD K7 마이크로아키텍처 설계를 이끈 사람으로서 짐 켈러보다 이 사람 권한이 더 막강했다. DEC 재직 시절부터 업계에 소문이 자자해 창업주인 제리 샌더스가 총애하던 핵심 인물이자 실력자였다. 나 반도체 설계자로선 일을 잘했지만 경영 능력은 빵점이었다. 그가 한 주요 실책들은 불도저와 모바일 그래픽 부서를 퀄컴에 판 것이다. 매각 이후 1년만에 모바일 그래픽 부서가 금괴 덩어리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그외에도 AMD의 진로에 대해 더크 마이어는 AMD 이사회의 견해와 서로 매우 달라 대립해 왔고 결국 이사회는 2011년 1월 10일 그를 해임했다.
그 다음 로리 리드(Rory Read, 2011~2014)가 4대 CEO에 취임했다. 레노버를 동종 업계 1위로 올려놓는 등 화려한 전적이 있어, 망해가던 AMD를 살릴 사람은 이 사람 밖에 없다며 이사회에서 구원 투수로 데려왔다. 로리 리드는 유능한 인물들을 영입했다. 리사 수와 마크 페이퍼마스터가 이 시기에 AMD에 입사했다. 1999~2004년간 AMD에 재직했던 짐 켈러도 2012년에 다시 입사했다. 로리 리드는 2014년 6월에 리사 수를 COO로 승진시키며 사실상 그녀를 자신의 후임자로 지목했다. 2014년 10월 8일 로리 리드는 리사 수에게 CEO 자리를 물려줬고 고문으로 물러나 2014년 말까지 재직했다. 로리 리드는 AMD를 떠난 이후에도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AMD를 떠난 이듬해인 2015년 훨씬 더 큰 회사인 델의 구원 투수로 투입되어 델의 EMC 합병에 공적을 세웠다. 그 후 2020년 Vonage라는 클라우드 컴퓨팅 회사의 CEO로 이직했다.
리사수는 1969년 대만의 타이난 시에서 출생했다. 3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하였다. 그 때 당시 아버지가 미국 대학원을 다니고 있을 무렵이었고, 리사 수가 미국으로 이민 후 자란 곳은 미국 뉴욕이었다. 리사 수의 부모님 중 아버지는 통계학자였고, 어머니는 회계사였다. 리사 수의 아버지는 가끔 식사 시간에 테이블로 딸에게 퀴즈를 내고 풀이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레 수학을 접하게 했다고 한다. 리사 수는 부모의 지원을 바탕으로 피아노 연주를 10년동안 공부하면서 뉴욕 시의 줄리어드 음대 오디션을 치를 정도로 몰두했었다고 한다. 리사 수는 피아노 연주보다는 엔지니어링에 대한 관심과 재능이 더 뛰어났다. 리사 수는 브롱스 과학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컴퓨터에 대해서 공부하기 시작하였고 1986년에 졸업하였다. 이후, 1986년에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에 입학했다. MIT 대학원에 진학 웨이퍼 제작 관련 분야 연구를 진행하였다. 1991년에는 석사 학위를 취득, 1994년에는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리사 수 박사 학위 취득한 논문 SOI(Silicon On Insulator) 이었다.
리사 수는 1994년 TI에 처음 입사 후 잠깐 일하다가, 이듬해인 1995년에 IBM의 반도체 R&D 부서 내 장치 물리학연구 부문으로 이직하였다. 2000년에는 최고경영자 기술 자문 직책도 맡게 되며, 2001년엔 MIT Technology Review에서 "35세 미만 최우수 혁신가"로 지명된다. 2006년엔 반도체 R&D센터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07년 프리스케일에 CTO 자리로 이직해 연구 지휘 업무를 하고 2년 후인 2009년엔 공학적 능력 뿐 아니라 대외 전략, 마케팅 능력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 프리스케일의 부사장 겸 총책임자로 승진했으며, 2011년 기업 IPO 과정에서 큰 기여를 했다. 프리스케일이 IPO 업무를 끝마친 이듬해인 2012년, 리사 수는 예전 직장인 IBM의 호환 PC 및 메인프레임 기초 설계를 맡았던 전설적인 전임 엔지니어 & 멘토이자 IBM을 퇴직한 이후 AMD 이사회 임원으로 재직하고 있었던 니콜라스 도노프리오(Nicholas Donofrio)에게서 제안을 받게 되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과는 5촌 관계이다. 인공지능(AI)용 반도체 시장의 양대산맥인 엔비디아(NVDA)와 AMD의 최고경영자(CEO)가 서로 5촌 친척 사이인 사실은 뉴욕증시와 화제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외삼촌 손녀가 바로 리사 수 AMD CEO이다. 미국 CNN은 진 우 대만 계보학자의 말을 인용해 공개된 기록, 신문 보도, 과거 사진 등을 조사하고 젠슨 황의 친인척 인터뷰를 통해 두 사람의 관계를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엔비디아 대변인 역시 CNN에 “젠슨 황의 어머니 쪽 가족을 통해 리사 수와 먼 사촌 관계임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