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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AI 반도체 기업 열전 ⑪ 오라클 (Oracle)… 엔비디아 GPU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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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AI 반도체 기업 열전 ⑪ 오라클 (Oracle)… 엔비디아 GPU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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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클
오라클이 AI 열풍에 올라탔다. 오라클은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관리하면서 돈을 버는 회사이다. 인공지능과는 별로 관련이 없었다. 그러던 오라클이 인공지능용 클라우드를 대대적으로 깔면서 AI 주도주로 변신하고 있다.

오라클은 최근 실적 콘퍼런스 콜에서 최근 엔비디아와 새로운 클라우드-컴퓨팅 인프라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오라클의 CEO인 카츠는 "엔비디아와 아주 멋진 공동 발표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말했다. 엔비디아의 GTC(GPU 테크놀로지 콘퍼런스)에서 오라클이 뭔가를 발표할 것이란 의미다. 뉴욕증시에서는 오라클과 엔비디아의 공동 발표 계획은 엔비디아의 데이터센터용 GPU(그래픽 프로세싱 유닛)의 공급 부족으로 주요 고객사들이 AMD의 GPU로 눈을 돌릴 수 있다는 우려를 덜어줄 것으로 보고 있다. .
오라클의 회계연도(FY) 기준 3분기(12월~2월) 매출액은 132.8억 달러로 전년보다 7.1% 늘었다. 영업이익은 57.9억 달러로 전년보다 11.7% 늘었고, 주당순이익(EPS)도 1.41달러로 15.6% 늘었다. 오라클의 사업 부문 중 매출액이 가장 크게 늘어난 부문은 클라우드 서비스 & 라이선스 부문이다. 전년보다 11.7% 늘었다. 인프라 사업과 더불어 클라우드 애플리케이션과 클라우드 전사적 자원관리(ERP) 사업 매출도 각각 14%, 19% 늘어났다. .

오라클의 사프라 카츠 CEO는 “수요가 공급을 크게 초과하고 있다”며 “고객들과 대규모 계약을 잇따라 체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까운 미래까지 초성장 단계에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라클의 최고기술책임자(CTO)직을 유지하고 있는 오라클 공동창업자 겸 이사회 의장 래리 엘리슨은 "미국에 보잉 747기 8대를 나란히 세워놓을 수 있는 정도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지금 건설 중"이라고 소개했다. 오라클 주가가 급등하면서 의장인 엘리슨의 자산도 급증했다. 포브스 기준 글로벌 자산 순위에서 엘리슨은 메타플랫폼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에 이어 5위에 올라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 회사인 오라클이 AI(인공지능) 수요로 클라우드 인프라 계약이 대규모로 이뤄지고 있다.미국 뉴욕증시에서는 오라클이 AI 수혜주로 본격 자리매김했다.

사프라 카츠 오라클 최고경영자(CEO)는 실적 콘퍼런스 콜에서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를 매우 빠르게 신규 개설하고 기존 클라우드 데이터센터를 확장하고 있음에도 2세대 AI 인프라에 대한 수요가 공급을 크게 초과하고 있다"며 "클라우드 인프라 용량을 확보하기 위한 대규모 계약이 계속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래리 앨리슨 오라클 회장은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서비스 부문인 애저와 20개의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번주에 3개의 데이터센터를 추가로 주문했다"고 밝혔다.

오라클은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용 소프트웨어 기업이다. 텍사스 주 오스틴에 본사가 위치하고 있다. 메인 사업은 사업은 B2B 방식으로 IT 자원을 지원 하는 것 이다. OracleDB, MySQL, Java, 그 외에도 자사 미들웨어, 애플리케이션[4]을 기반으로 자사 OCI 클라우드 컴퓨팅 그리고 SaaS 제품들을 제공한다. 오라클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는 서드파티 클라우드, 온프레미스 고객사들에게는 개별 라이선스 판매와 유지 보수를 제공한다.

오라클의 역사는 19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암펙스의 직원이던 래리 엘리슨과 밥 마이너 그리고 에드 오츠 등 세 사람은 실리콘밸리에서 오라클의 전신인 소프트웨어 개발 연구소(Software Development Lab)를 설립했다. 당시 그들의 회사 설립 후 첫 목표는 CIA의 데이터베이스 관리 소프트웨어 계약을 따내는 것이었다. 여기서 많은 돈을 벌었다. 1979년 Relational Software로 회사명을 변경했다. 982년에는 사명을 오늘날의 오라클로 바꿨다. 2020년 9월, 미국-중국 패권 경쟁으로 인해 압박을 받고 있는 틱톡의 미국 사업부를 인수할 유력 후보로 떠올랐으나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 실패로 인해 흐지부지되었다.

오라클은 기업용 DBMS 시장의 절반 이상을 항상 점유하고 있는 시장 지배 기업이다. 기업용 DBMS 한정으로 Microsoft와 IBM을 합한 것보다 막강한 영향력을 가졌다. 대표적인 공개 DB인 MySQL도 오라클의 손에 있다. 공개 DB로 널리 알려진(정확히는 상용+GPL 이중 라이선스) MySQL의 제작사 MySQL AB를 썬 마이크로시스템즈가 인수했고, 그 썬을 오라클이 인수했다. 창업주 래리 엘리슨은 1977년 밥 마이너와 Ed Oates와 함께 소프트웨어 디밸롭먼트 래버러토리스(Software Development Laboratories, SDL)라는 이름으로 오라클을 공동 설립하였다. 엘리슨은 "A Relational Model of Data for Large Shared Data Banks"라는 이름의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RDBMS)에 관한 에드거 F. 커드의 1970년 논문에서 사업의 영감을 얻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악동'으로 불릴만큼 사치스런 생활과 기행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영화 아이언 맨 2에 카메오 출연하기도 했다. 엘리슨의 딸 메건 엘리슨은 안나푸르나 픽처스 대표, 아들 데이비드 엘리슨은 스카이댄스 픽처스 대표이다.
오라클의 대표적인 제품은 데이터베이스 관리시스템인 오라클 DBMS(DataBase Management System)이다. 유닉스 체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다. DBMS는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정리하고 보관하기 위한 기본 소프트웨어이다. 그리고 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인 ERP, 공급망 관리 시스템인 SCM, 고객관계관리 시스템인 CRM 소프트웨어도 개발한다. RDBMS 제품을 필두로 전 세계 DBMS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소프트웨어, 서버, 네트워크, 스토리지 등의 부문에서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래리 엘리슨은 1944년 뉴욕에서 미혼모였던 유대인 생모 밑에서 태어났다. 생부는 이탈리아계 육군 항공대 소속 미군이었으나 2차 세계 대전 도중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출생 9개월 만에 폐렴에 걸리자 생모는 양육을 포기하고 엘리슨의 이모와 이모부에게 맡겼다. 이모와 이모부는 다시 시카고 사우스쇼어에 사는 독실하게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 가족이었던 엘리슨 집안에 입양시켰다. 엘리슨은 양아버지에 대해 엄격하고 지원이 적으며 자주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이라 했던 것과 달리 양어머니는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말 한 적이 있다. 10살 즈음해서 엘리슨은 입양 가족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13살에 하는 유대 성년의례를 거부했다. 래리 엘리슨은 성년이 되어 일리노이 대학교의 어배너-섐페인 캠퍼스에 입학했으며 수학과 물리학, 그리고 컴퓨터 설계를 공부했으나 2년 만에 그만뒀다. 그는 양아버지의 설득으로 시카고 대학교에 다시 입학했으나 22세가 되던 해인 1966년 양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대학을 마치지 못한 채 그만두었다. 이후 캘리포니아 버클리에 이주했다. 그곳의 히피 문화에 젖어들며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로 부터 10여년간 IBM 메인프레임 유지 보수 관련 여러 일자리들을 전전했다. 10여년간 그가 전전한 회사들 중 암펙스에서 그는 밥 마이너(Bob Miner)와 에드 오츠(Ed Oates)를 만났다.

2018년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 주식을 매입해 비상장 기업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어나자 머스크가 테슬라 이사회 의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머스크를 견제하기 위한 독립 이사 2명을 선임하기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합의하는 사건이 터졌다. 그때 래리 엘리슨이 머스크를 옹호하면서 테슬라 주식 1.6%에 달하는 300만 주를 10억 달러에 사들이고 직접 테슬라 이사로 합류한 적이 있다. 젊었을 때의 요트에 빠졌다. 지금도 선체 길이 88m에 달하는 대형 요트를 포함 요트를 여러 척 가지고 있으며 요트 경주 팀도 운영하고 있다. 1995년에는 사요나라라는 요트를 타고 아메리카컵 경기에 직접 참여해 우승한 적도 있다. 스티브 잡스와의 친분이 깊다. 그의 퇴임 이후 망해가던 시절의 애플을 50억 달러에 통째로 사서 잡스를 CEO로 복귀시키려는 계획을 세웠을 정도였다. 적대적인 인수를 반대한 잡스의 의사 때문에 해당 계획은 현실화되지 않았으나, 이후 투자를 단행하고 이사로 합류하며 NeXT 인수를 통해 애플의 CEO로 복귀하도록 우회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잡스의 아들도 '부자 삼촌 엘리슨'으로 그를 부를 정도였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