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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힐빌리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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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힐빌리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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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주필 겸 연구소장

미국 대선 트럼프 재집권 '플랜B'와 밴스 '힐빌리의 노래'


피격 사건 이후 재집권 가능성이 부쩍 높아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올 11월 대선 러닝메이트로 J. D. 밴스 연방 상원의원(오하이오주)을 선택했다. 영어 풀 네임은 제임스 데이비드 밴스(James David Vance)다. 미국 뉴욕증시 등 금융시장은 밴스의 부통령 지명에 환영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달러환율·국채금리·금값·국제유가 그리고 비트코인·이더리움·리플 등도 랠리를 보이고 있다.

금융시장이 밴스의 부통령 지명에 환호하는 것은 그가 철저한 자유시장주의자인데다 규제 타파주의자이면서 또 자수성가 입지전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두메산골 촌뜨기 노동자 집안 출신이면서도 신세를 한탄하기보다는 어려운 역경을 뚫고 30대의 젊은 나이에 연방 상원의원에까지 올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화당 전당대회 첫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 트루스소셜을 통해 "오랜 숙고와 생각"을 거쳐 "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은 오하이오주 연방 상원의원 밴스라고 결정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밴스 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발표하면서 그의 해병대 근무, 오하이오주립대 및 예일대 로스쿨 졸업, 영화로도 만들어진 베스트셀러 '힐빌리의 노래' 집필, 기술과 금융 분야 사업 성공 등의 이력을 열거했다. 그러면서 밴스 의원이 향후 선거 과정에서 펜실베이니아·미시간·위스콘신·오하이오·미네소타주 등지의 노동자 및 농민들에 "강도 높게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힐빌리 후예로서 힐빌리의 고충을 잘 알고 있는 밴스가 아직도 가난에 신음하는 '러스트 벨트'(rust belt·미국 오대호 주변의 쇠락한 공업지대)에서 힐빌리들과 직접 교류하면서 새로운 미국의 꿈을 실현해줄 것이라는 기대다. 이 과정에서 러스트 벨트 노동자들의 표를 얻겠다는 게 트럼프의 구상인 것이다.

이날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버니 모리노 오하이오 상원의원 후보는 밴스 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추천하면서 "그는 가난하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안다. 워싱턴은 이를 잊어버렸다"면서 "그는 어떤 미국인도 다시 잊히지 않도록 헌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밴스 의원이 부통령 후보로 확정되자 전당대회 행사장에서는 "J. D." "J. D." 연호가 계속됐다. 밴스 부통령 후보를 앞세운 러스트 벨트 잡기가 이미 시작된 모습이다.

부통령 후보인 밴스는 올해 39세다. 1952년 이래 최연소 부통령 후보다. 밴스 의원은 이른바 러스트 벨트로 불리는 오하이오주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해병대에 복무하면서 학비를 모아 예일대 법대에 진학했다. 이후 변호사, 벤처캐피털 기업인을 거쳐 연방 상원의원까지 올라간 입지전적 인물이다. 밴스는 2016년 그는 자신의 이야기와 러스트 벨트 미국인들의 상실감을 파고든 회고록 '힐빌리의 노래'를 펴내 공전의 히트를 쳤다. 이 회고록은 론 하워드 감독의 영화로도 제작되며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밴스의 자전적 회고록 '힐빌리의 노래'는 백인이면서도 미국 사회의 최하층으로 살아가는 저학력 노동자와 도시 빈민의 아픔을 잘 대변하고 있다. 이 책에서 묘사된 힐빌리의 삶은 노예로 출발한 흑인이나 가난한 아시아 및 히스패닉 천민보다도 훨씬 더 열악하다. 흑인과 이민자들은 그나마 정부의 인종차별 시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이나 사회보장의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힐빌리들은 피부가 하얀 백인이라는 이유로 그 어떤 구제책도 받기 어렵다고 폭로하고 있다. 이른바 저소득·저학력 백인 하층계급의 한과 분노를 대변한 책이다.

이 책의 정식 제목은 '힐빌리의 노래: 가족과 문화의 위기에 관한 회고록'이다. 2016년과 2017년 연속으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2017년 데이턴 문학 평화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그해 오디 상 논픽션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힐러리를 꺾자 '힐빌리의 노래'를 "트럼프의 승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가장 중요한 책"으로 소개해 주목을 끌었다.

'힐빌리의 노래'는 몰락한 공업지대인 러스트 벨트 지역에서 태어난 밴스가 마약 중독에 빠지거나 아예 자식양육권을 포기해버린 부모, 자신의 어린 시절 가난과 되풀이된 가정폭력, 이후 개인의 우울과 불안을 딛고 예일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하면서 크게 성공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힐빌리는 두메산골 촌뜨기 출신의 백인 저소득층 노동자를 의미하는 단어다. 밴스는 전형적인 힐빌리 집안에서 태어난 백인 남성이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과 자기 가족, 이웃의 삶을 통해 힐빌리의 비참한 삶을 보여주었다.

밴스의 저서 '힐빌리의 노래'를 가장 열독한 이가 바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다. 그는 '힐빌리의 노래'를 통해 백인 하층민들의 한을 목도하게 된다. 그리고 이 백인 하층민들을 그의 정치적 기반으로 설정하기에 이른다. 트럼프는 틈만 나면 저소득 백인 노동자들을 만났다. 트럼프의 모든 공약은 저소득 백인 노동자에 맞춰졌다. 전 국경에 이민금지용 담장을 만들고 중국 상품에 고율의 관세를 때린 것도 사실은 저소득 백인 노동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MAGA 프로젝트도 대부분 저소득 백인 노동자의 환심을 사는 것으로 구성돼 있다.

이 전략은 주효했다. 미국 인구의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저소득 백인들은 트럼프의 정책에 환호했다. 미국 정치계의 이단아였던 트럼프는 힐빌리들의 폭발적 지지로 기존의 주류 공화당 정치인들을 압도적으로 깨부쉈다. 급기야 워싱턴 주류사회의 영웅이었던 힐러리도 제치기에 이른다.

코로나19 와중에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간발의 차이로 조 바이든에게 권좌를 빼앗겼던 트럼프는 지난 4년 동안 백악관 탈환을 노리며 절치부심해 왔다. 펜실베이니아 피격 사건으로 다시 한번 '별의 순간'을 앞두고 있다. 이 엄중한 순간에 트럼트가 선택한 부통령 카드는 '힐빌리의 노래' 밴스였다. 밴스는 불법이민 차단, 기후위기 평가절하, 우크라이나 전쟁 조기 종식 등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대부분 견해를 같이하는 의회 내 핵심 '친트럼프' 의원이다. 그는 각종 정책 현안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사실상 동일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사실 밴스로부터 출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2022년 상원의원 선거에서 '조 바이든의 국경 개방이 오하이오 주민을 죽이고 있다'는 구호를 들고 나왔다. 트럼프와 판박이이다. 아니 트럼프 그 이상이다. 미국의 일자리가, 싼 임금으로도 고용이 가능한 불법 이민자들로 채워진다면 미국인 노동자들이 일자리에서 쫓겨나거나 임금이 깎인다는 논리다. 밴스 의원은 불법 이민자에게 혜택을 주거나 사면하는 것도 반대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 퇴임 후 중단된 국경 이민장벽 설치도 계속하자는 입장이다. 석유산업이 발달한 오하이오주 출신인 밴스 의원은 인간의 각종 활동이 지구 온난화 현상을 가속한다는 과학계의 정설을 부정하고 있다. 그는 기후변화 대처를 위한 풍력과 태양력 등 대체에너지 개발이나 전기자동차에 대한 연방정부 차원의 지원에 대해서도 반대하고 있다. "미국의 일자리를 외국으로 보내고, 그 이익으로 각종 반(反)미국적 행사나 운동을 지원하는 기업에 대해선 세금을 더 물리겠다"고 공약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경제와 통상외교 정책에서도 기존의 바이든과는 완전히 다른 천지개벽의 큰 변화가 예상된다. 트럼프와 밴스 시대에 대비한 플랜B가 시급한 상황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플랜B를 작성하기에 앞서 밴스의 '힐빌리의 노래'를 탐독해 볼 필요가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 경제학 박사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