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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형의 프롭테크 '썰'] 쓰레기 더미에서 피어난 녹색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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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형의 프롭테크 '썰'] 쓰레기 더미에서 피어난 녹색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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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챗GPT
수개월 전, 한 통의 연락은 낯설면서 익숙했다. 과거 공유 킥보드 서비스 H사를 매각했던 Y씨가 천일에너지의 친환경 브랜드 '지구하다'에서 전략을 맡고 있다는 소식은 의외였다. '낡은 것을 버리는 대신, 생명을 불어넣는 사업'이라고 했다. 폐자재를 에너지로 전환하고 건설·인테리어 산업의 잉여 자원을 순환 가능한 자원으로 바꾸는 실험이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솔직한 심정은 '그린 워싱'이라는 의심의 씨앗부터 피어났다.

당시 우리 회사는 실적과 세일즈에 역량을 쏟아붓고 있었다. 섣불리 친환경이라는 타이틀을 앞세우다 본업에 손해라도 볼까 하는 우려가 컸다. 상업용 부동산과 인테리어 업계에서 ESG 실천 사례는 여전히 드물었고, 이 생소한 길을 먼저 걸어야 할 이유도 찾기 어려웠다. 친환경은 '좋은 이야기'일 뿐 '해야만 할 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나 의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Y씨가 제시한 테스트 시뮬레이션은 산업의 숨겨진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우리나라 건설·인테리어 산업은 해마다 수백만 톤의 폐기물을 쏟아낸다. 이 방대한 양은 대부분 매립되거나 소각되며, 재활용률은 터무니없이 낮고, 처리 과정의 투명성은 전무했다. 특히 다양한 혼합 폐기물이 발생하는 현장의 특성상, 분류와 재활용 과정은 복잡하고 불분명했다.

'지구하다'의 시스템은 이 곪아있던 부분을 정확히 찔렀다. 모회사 천일에너지의 전국 인허가 네트워크를 활용해 수거부터 자원화까지 전 과정을 직접 운영하는 방식. 여기에 전사적 자원관리(ERP)와 인공지능(AI) 기반 전자인계서, AI 입차 분석 시스템을 도입해 폐기물 발생부터 처리까지 전 과정을 디지털 데이터로 실시간 추적·관리했다. 이는 폐기물이라는 '쓰레기'를 잠재적 '자원'으로 인식하는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전환이었다.
나아가 이 시스템을 도입하면 폐기물 처리 비용이 평균 5% 이상 절감된다는 경제성 분석은 가뭄에 단비 같았다. 환경이라는 대의명분과 비용 절감이라는 실질적 이익,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데이터로 증명된 순간이었다.

'해보자'는 결심과 함께 유관 부서에 이 내용을 공유했을 때 반응은 싸늘했다. 새로운 절차의 복잡성, 기존 협력업체와의 관계 변화 등 현실적인 우려가 컸다. 하지만 시험 결과가 점차 내부 결정자들의 생각을 바꿔나갔다. 환경적 가치가 비용 절감으로 이어진다는 데이터는 실무자들의 닫힌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올해 상반기, 알스퀘어디자인과 함께 진행한 현장 실증을 통해 전국 약 600개 시공 현장에서 발생한 620톤의 폐기물을 대상으로 대규모 실험이 시작됐다. 목표는 하나, 단 한 건의 소각이나 매립 없이 모든 폐기물을 자원으로 전환하는 '폐기물 제로(Waste Zero)'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폐합성수지 247.8톤은 고형연료(SRF)로, 폐목재 185.9톤은 바이오연료(Bio-SRF)로, 폐콘크리트 185.8톤은 순환골재로 각각 자원화되며 전량 재활용을 달성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약 594.8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었다. 이는 나무 9만 그루가 1년 동안 흡수하는 탄소량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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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형 알스퀘어 대외협력실장

폐기물 처리 비용은 실제로 줄었고, 발생부터 중간처리까지 전 과정이 데이터로 기록됐으며, 이를 기반으로 ESG 리포트까지 제공됐다. 환경보호와 경제발전이 결코 상충하는 개념이 아님을 실무 차원에서 확인한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 실험이 더욱 의미 있었던 이유는 우리 회사만의 변화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 때문이다. 업계 상위권에 있는 기업이 선제적으로 변화를 선택하면, 이는 곧 산업 전체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을 신호탄이 된다. 이 같은 자원화 모델은 2026년 수도권 생활폐기물 직매립 전면 금지에 앞서 폐기물 처리 업계의 실질적인 대응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건설·인테리어 산업은 도시의 외형을 만들고 삶의 공간을 조성하는 핵심 산업이다. 만약 이 거대한 산업이 폐기물 매립과 소각이라는 낡은 관행에서 벗어나 자원순환이라는 패러다임으로 전환된다면, 그 파급력은 특정 기업이나 산업에만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도시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의 친환경적 발전을 견인하는 거대한 동력이 될 수 있다.

이번 6개월의 실험이 증명한 것은 단 하나였다. 지속 가능한 발전은 이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실행 가능하며 경제적 이득까지 가져다주는 '현실'이라는 점이다. 594.8톤의 탄소 저감, 나무 9만 그루의 효과. 이 수치는 단순한 성공 사례를 넘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명확한 방향을 제시한다.

그날의 커피 한 잔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에 대한 의심은 확신으로 자리 잡았다. 불가능해 보였던 아이디어가 실현 가능한 비전이 되었다. 완벽한 시스템을 기다리기보다 작은 실천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산업계와 정부 그리고 시민사회가 함께 힘을 모은다면 우리는 폐기물의 시대를 넘어 자원순환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다.


이상훈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angho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