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교과서를 찢어야 할 때
1989년 개봉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와 주인공 존 키팅(John Keating) 선생이 던진 메시지는 거의 40년이 지난 오늘날의 교육과 조직 문화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엄격한 전통과 규율에 묶여 상징적으로 ‘죽어 있는’ 학생들에게 그는 파격적인 주문을 던진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늘을 살아라. 너희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라.” 이 외침은 단순한 쾌락주의가 아니다. 타인이 정해 놓은 궤도에서 벗어나 자기 삶의 주관자가 되라는 실존적 선언이다. 그리하여 극 중 ‘죽은 시인의 사회’는 단순한 시 낭송 모임을 넘어 자기 삶을 찾으려는 젊은 영혼들의 공동체로 승화된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시의 완성도를 수치로 측정하는 교과서의 서문을 찢어버리라고 명령하는 대목이다. 시를 x축과 y축의 그래프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효율성만을 숭상하는 현대 기능주의 사회의 자화상과 닮았다. 키팅은 이를 거부함으로써 고정된 정답과 타인의 평가에만 매몰된 ‘고정 사고방식(fixed mindset)’에 준엄한 경종을 울린다. 뒤이어 학생들을 한 명씩 교탁 위로 불러 세우며 그는 말한다. “어떤 사물을 전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기 위해 책상 위에 올라가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현대인은 여전히 익숙한 자신만의 좁은 책상 아래 갇혀 살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지적 노동을 대신하는 거대한 전환기에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기계적인 지식이 아니다. 학생들이 교과서를 찢고 책상 위로 올라갔듯이 우리 역시 사고의 틀을 깨고 인간다움의 본질인 ‘창의성’을 회복해야 한다. 최신 심리학과 뇌과학 연구들은 이러한 정신적 전환이 단순한 감성적 위안을 넘어 우리 뇌를 생물학적으로 더 젊고 건강하게 만드는 실질적인 축복임을 증명하고 있다.
마음챙김: 비판적 자아를 잠재우고 ‘지금 여기’를 관찰하라
창의성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때 시작된다. 뇌는 효율성을 위해 사물을 보는 즉시 ‘라벨링(labelling)’을 시도한다. 커피잔을 보면 그저 ‘마시는 도구’로 정의하고 더 이상의 인지 자원을 소모하지 않는 식이다. 하지만 마음챙김은 이 자동화된 판단을 유보한다. 사물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있는 그대로 관찰할 때, 우리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미묘한 세부 사항과 새로운 연결 고리를 발견하게 된다.
실생활에서 마음챙김을 숙련하는 방법으로 ‘사물 관찰 연습’을 권한다. 흔한 물건 하나를 2~4분간 세밀하게 관찰한 뒤 본래 용도가 아닌 엉뚱한 용도 10가지를 적어보는 것이다. 또한 숨을 들이마실 때 일곱을 세고 내쉴 때 열하나를 세는 ‘7-11 호흡법’은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해 뇌가 창의적 ‘몰입(Flow)’ 상태에 진입하기 최적의 환경을 조성해 준다. 마음챙김은 뇌라는 엔진에 창의적 에너지를 공급하는 가장 강력한 점화 플러그인 셈이다.
사고방식: 창의성은 재능이 아닌 ‘심리적 허가’의 영역이다
많은 이들이 “나는 원래 창의적이지 않아”라는, 자신이 스스로 정의한 사고방식의 감옥에 갇혀 스스로를 제한한다. 창의성을 타고난 천재성으로 치부하며 시도조차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탠퍼드대학의 캐럴 드웩(Carol Dweck) 교수가 제안한 ‘성장 사고방식(growth mindset)’은 모든 능력이 연습과 노력으로 배양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창의성 역시 근육처럼 단련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140여 명의 창의성 연구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창의적 성취의 제1 요소로 꼽힌 것은 높은 IQ가 아니었다. 바로 성장 사고방식이 만들어내는 ‘인내와 회복탄력성’이었다. 창의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결정적 차이는 기술의 유무보다 스스로에게 ‘모든 형태의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는 허가증’을 부여했느냐에 달려 있다.
고정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은 실패를 무능의 증거로 보기에 위험을 회피한다. 반면 성장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은 실패를 실험의 과정으로 본다. “아직(not yet) 성공하지 못했을 뿐”이라는 믿음이 뇌를 창조적인 모험으로 이끈다. 창의성은 정답을 맞히는 게임이 아니라 오답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내는 끈기에서 발현된다.
호기심: 뇌를 춤추게 하는 멈추지 않는 질문이라는 엔진
물리학자 아인슈타인(A. Einstein)은 “나에게 특별한 재능은 없다. 단지 지독하게 호기심이 많을 뿐이다”라고 고백했다. 호기심은 창의성이라는 자동차를 움직이는 가장 순수한 힘이다. 이는 단순히 모르는 것을 알아내는 과정을 넘어 세상을 다각도에서 바라보고 새로운 가능성을 생성하는 동력이 된다. 호기심이 거세된 지식은 정체된 웅덩이와 같아 결국 부패하기 마련이다.
더 나아가 호기심은 중장년층과 은퇴 세대에게 노화를 막는 강력한 방어기제가 된다. 학교 교육이 끝났다고 배움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전공이나 직업적 배경과 무관한 분야를 탐구할 때 뇌에서는 새로운 신경망의 연결이 일어난다. 낯선 장소로의 여행, 평소 읽지 않던 장르의 독서,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과의 대화는 인지적 지평을 넓히는 확실한 방법이다.
질문하는 자는 늙지 않는다. “왜 그럴까?” “만약 ~라면 어떨까?”라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 한,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정보를 재조합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 질문이 멈춘 뇌는 생물학적 나이와 상관없이 노화의 길로 접어든다.
뇌의 장수 도구: 창의적 활동이 주는 생물학적 보상
창의적 삶은 정서적 만족을 넘어 뇌의 노화를 늦추는 실질적인 건강 도구가 된다. 2025년 코로넬 올리베로스(Carlos Coronel-Oliveros) 등이 발표한 연구는 창의적 참여가 뇌의 생물학적 나이를 줄인다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1400명 이상을 분석한 결과 무용·음악·미술·전략게임 등 창의적 활동에 깊이 참여하는 이들은 그러지 않는 이들보다 뇌 연령이 무려 5~7년이나 젊게 측정되었다.
창의적 작업은 주의력, 계획, 유연한 사고를 담당하는 뇌의 핵심 시스템인 ‘전두두정엽 네트워크’를 자극한다. 이 영역은 나이가 들면서 가장 먼저 쇠퇴하는 부위이기도 하다. 창의적 활동은 뇌의 신경가소성을 촉발해 약해지는 신경 경로를 강화하고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낸다.
이 연구가 주는 가장 큰 희망은 효과의 원천이 천부적 재능이 아니라 ‘몰입의 깊이’에 있다는 점이다. 훌륭한 화가가 아니어도 괜찮다. 서툴더라도 붓을 잡고 색을 조합하는 과정, 악보를 익히며 손가락을 움직이는 과정 그 자체가 뇌에는 가장 질 좋은 보양식이 된다. 창의성 훈련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뇌를 보호하는 최상급 신경 보호제이자 인지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최고의 방법이다.
당신만의 시를 완성하기 위해 다시 책상 위로 올라가라
“시가 아름다워서 읽고 쓰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에 읽고 쓰는 것이다.” 키팅 선생의 이 말은 창의성이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본능이자 생존 전략임을 역설한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마음과 뇌는 자신이 바라보고 지향하는 방향으로 정직하게 변화한다. 나이가 들어 뇌가 굳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점에 도전하고 질문 던지기를 멈출 때 뇌는 노화 시계를 가속한다.
인공지능이 빛의 속도로 모든 정답을 제시하는 시대일수록 인간만이 던질 수 있는 서툰 질문과 엉뚱한 상상을 사랑해야 한다. 정답보다는 질문에, 결과보다는 과정에, 타인의 시선보다는 내면의 호기심에 집중할 때 창의성은 피어난다.
오늘부터 하루 단 10분만이라도 자신만의 창의적 시간을 확보하자. 그것은 사치도, 유희도 아니다. 자신의 인지적 미래를 지키고 삶의 밀도를 높이는 가장 가치 있는 투자다. 뇌는 당신이 새롭게 써 내려갈 창조적인 시구(詩句)들 사이에서 비로소 다시 젊어진다. 익숙한 바닥에서 내려와 다시 책상 위로 올라가자. 거기서부터 당신의 진짜 삶과 젊은 뇌가 시작될 것이다.
이미지 확대보기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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