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산빛은 어느새 연두를 지나 초록으로 짙어지며 겨울빛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이제 숲은 초록의 기운이 꽃의 붉은 기운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봄이 더 깊어지기 전에 마음속에 벼르던 진달래능선을 다녀올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북한산 자락에 깃들어 살면서도 진달래능선의 진달래를 만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진달래능선을 따라 산행을 한 적은 있다. 하지만 정작 진달래꽃 흐드러지게 핀 봄엔 기회가 없었다. 북한산은 삼각산·삼봉산 같은 여러 이름을 지니고 있는데 봄에 가장 어울리는 이름은 ‘빛나는 산’이라는 뜻의 화산(華山)이 아닐까 싶다. 지천으로 피어 있는 진달래가 봄 햇살을 받아 빛나는 모습을 보면 북한산은 화산(華山)이자 화산(花山)이기도 하다.
우이역에 내려 만남의 광장을 지나 탐방로를 따라 올라가려니 계곡의 물소리가 청량하다. 진달래능선 가는 길이 표시된 이정표를 보고 산길로 들어선다.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는데 진달래가 피어 있어 힘든 줄 모르고 올랐다. 능선길은 경사가 급하지 않아 진달래꽃을 눈에 담으며 걷기에 그만이다. 진달래는 우리 산 어디서나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친숙한 봄꽃이자 시대를 넘어 사랑을 받아온 꽃이기도 하다.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에는 아이들에게 간식거리가 되고, 어른들에게는 화전(花煎)이나 두견주의 재료가 되기도 했다. 먹을 수 있는 꽃이라 하여 먹지 못하는 철쭉에 견주어 참꽃으로도 불린 꽃이 진달래다.
척박한 바위틈이나 위태로운 산비탈은 물론 바람 거센 산마루에서도 꿋꿋하게 꽃을 피우는 진달래는 수많은 문학 작품이나 노래에서 우리 민족의 한과 정서를 대변하는 꽃이 된 지 오래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나뭇짐에 꽂혀 있던 분홍 진달래는 내 유년의 행복한 기억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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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능선을 따라 이어진 등산로 주변엔 불이라도 난 듯 온통 분홍 진달래 꽃밭이다. 막연히 분홍색이라고 생각했던 진달래의 스펙트럼은 꽤 다채롭다. 아침 햇살을 받아 맑은 연분홍을 띠기도 하고, 입술연지처럼 진한 분홍색도 있다. 진달래능선 산행은 오른편으로 북한산의 우뚝 솟은 세 봉우리, 백운대·인수봉·만경대를 맘껏 바라볼 수 있어 좋았다. 특히나 분홍 진달래 사이로 세안이라도 한 듯 깨끗한 삼각산의 세 봉우리를 바라보는 즐거움이 산행의 고단함을 씻어준다.
소나무와 진달래가 섞인 조붓한 흙길은 발길을 붙잡는 꽃 무지에 걸음이 자꾸만 느려진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우뚝 솟은 암봉들이 반겨주고, 왼편으로 고개를 돌려 산 아래를 보면 낮은 집들이 올망졸망 모인 도심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진달래능선에서 대동문까지의 거리는 1.5㎞ 남짓인데 꽃에 취해 걷다 멈추길 반복하다 보니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 산행의 속도가 느려지면 많은 꽃을 볼 수 있어 좋다. 북한산성 동쪽에 있는 성문인 대동문에 다다를 즈음 노랑제비꽃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대동문을 지나자 노랑제비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보라색 현호색과 연노랑의 산괴불주머니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하지만 봄날 북한산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진달래가 아닐까 싶다. 진달래는 동네 낮은 산에서부터 높은 산봉우리까지 산길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꽃이지만 북한산 ‘진달래능선’에서 만나는 꽃은 능선의 이름 때문일까 각별하게 다가온다. 끝이 다섯 갈래로 갈라진 꽃잎은 주름이 잡혀 있고, 위쪽에 찍힌 반점들은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암술과 수술은 여인의 속눈썹처럼 우아하다. 봄바람에 진달래 꽃밭이 흔들리면 마치 온 산이 춤을 추는 것 같다. 진달래능선에서 한나절 꽃에 취해 놀고 내려오니 내 안에도 꽃물이 든 듯 분홍으로 출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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