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지난 일요일은 불기 2570년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나는 불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지만 불교는 꽃과 유난히 관계가 깊은 듯하다.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시던 날엔 꽃비가 내렸고, 아기 부처님이 처음 내딛던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났고, 영산회상에서 부처님은 가섭 존자와 한 송이 꽃으로 법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부처의 크고 넓은 깨달음의 세계를 꽃처럼 찬란하게 드러낸 경전’이란 뜻의 화엄경(華嚴經), ‘오묘한 진리를 연꽃에 비유해 설한 경전’인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등 경전 이름부터 염화미소(拈華微笑), 이 세상 모든 것이 한 송이 꽃이고, 그 안에서 함께 피어난 존재란 뜻의 세계일화(世界一花) 등 불교 성어까지 꽃을 빼놓고는 불교를 말할 수 없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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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절에서 큰 행사를 할 때 올리는 육법 공양 중에도 꽃은 빠지지 않는다. 육법 공양은 등, 향, 차, 꽃, 과일, 쌀과 같은 여섯 가지를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이다. 꽃은 인간이 가장 기쁜 순간과 가장 슬픈 순간에 찾는 가장 아름답고 깊은 언어다. 인간이 신에게 바칠 수 있는 것 중에 꽃보다 아름다운 게 있을까. 인간이 인간에게 건넬 수 있는 것 중에 꽃처럼 순결하고 아름다운 게 또 있을까. 꽃은 자신을 위해 피어나지만, 그 향기와 아름다움을 모두에게 나누어 준다. 이 세상의 아름다움이 응축된 소중한 존재인 꽃 속에 우리가 주고받아야 할 소중한 이야기들이 모두 담겨 있는 것이다. 꽃처럼 향기롭고 아름답기를 소망하며 올리는 공양이 꽃 공양이 아닐까 싶다.
불교에서 꽃을 ‘만행화(萬行花)’라 한다. 한 송이 꽃이 피기까지 오랜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듯, 하루하루의 노력과 선행, 수행이 모이고 쌓여 깨달음의 꽃이 된다는 의미다. 불교를 대표하는 꽃을 꼽으라면 으레 연꽃을 떠올리겠지만 세상에 피어나는 모든 꽃은 저마다 아름답고 눈부시다. 꽃들은 서로 비교하거나 경쟁하는 법이 없다. 연꽃은 연꽃대로, 씀바귀꽃은 씀바귀꽃대로 자신만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지니고 저마다 하늘을 향해 꽃 공양을 올릴 따름이다. 욕심 없는 꽃이어서 우리에게 더 아름답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도봉산 신선대에 올라 수수꽃다리를 보았다. 연보라색 작은 꽃들이 계곡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 속으로 맑은 향기를 흩어놓고 있었다. 단단한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힘겹게 살아가면서도 때맞춰 꽃을 피우고 산객의 지친 심신을 위로하는 수수꽃다리 꽃을 보며 허투루 살아온 날들이 부끄러워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최영미 시인은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라고 했지만 정작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꽃이 지는 단계를 지나야 비로소 열매가 맺힌다는 사실이다. 꽃은 탁한 우리의 영혼을 맑게 해주고, 열매는 우리의 육신을 살찌운다. 이처럼 숲은 우리를 살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는 종종 그 사실을 잊는다는 것이다.
이미지 확대보기백승훈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