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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일본은행 금리인상 "앤케리 청산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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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일본은행 금리인상 "앤케리 청산의 저주"

일본은행 금리인상 신호탄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이미지 확대보기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금리 인상 도미노, 세계 경제 패러다임이 바뀐다

세계 경제가 또 한번의 미증유의 대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를 지배해 온 패러다임은 ‘저물가, 저금리, 그리고 무한한 유동성 공급’이었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금리를 제로(0) 수준으로 낮추었고, 심지어 유럽과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라는 초유의 실험을 감행했다. 자본의 비용이 사실상 제로에 수렴하던 시대, 기업과 가계는 막대한 부채를 기반으로 성장과 소비를 구가해 왔다.

그 길고 길었던 ‘공짜 돈(Free Money)’의 시대가 이제 종언을 고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기준금리를 2.25%로 인상하며 33개월 만에 긴축으로 선회한 것을 시작으로,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연쇄적으로 금리를 올리는 이른바 ‘금리 인상 도미노’ 현상이 본격화되었다. 더욱이 수십 년간 초저금리와 디플레이션의 대명사로 불리던 일본은행(BOJ)마저 정책금리를 1.0%로 인상하며 31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역시 연내 추가 긴축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하며 전 세계 자금줄을 죄고 있다. 이처럼 글로벌 G7 국가들을 중심으로 번지는 동시다발적인 금리 인상은 단순히 일시적인 경기 조절 차원의 조치가 아니다. 이는 지난 수십 년간 세계 경제를 지탱해 온 저비용·글로벌화 패러다임이 해체되고, 고비용·각자도생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이번 금리 인상 도미노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 즉 이란 전쟁과 그로 인한 호르무즈 해협의 폐쇄다. 과거의 인플레이션이 대개 수요 과열에 의해 발생했다면,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공급 측면의 충격, 즉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의 폭등에서 기인하는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Cost-push Inflation)’의 성격이 짙다. 미국의 5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전년 동월 대비 6.5% 급등하며 3년 반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은 이러한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생산자물가의 상승은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로 전이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전 세계적인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우려를 자극하고 있다.
과거 글로벌 분업 체계가 원활히 작동하던 시절에는 한 지역의 공급 충격이 다른 지역의 저렴한 노동력과 생산 비용에 의해 상쇄될 수 있었다. 그러나 미·중 갈등에 이어 중동 전쟁까지 발발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은 완전히 파편화되었다. 효율성만을 추구하던 ‘적기 생산(Just-in-Time)’ 방식은 가고, 비용이 더 들더라도 안전성을 확보하는 ‘만약의 사태 대비(Just-in-Case)’ 방식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조적인 비용 상승은 중앙은행들로 하여금 경기 침체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는 외통수로 몰아넣었다. 글로벌 금리 인상 도미노는 세계 경제의 자금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으며 거대한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가장 주목해야 할 변화는 일본의 통화정책 전환이다.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를 끝내고 연 1.0% 수준으로 금리를 끌어올리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을 떠돌던 ‘엔 캐리 트레이드(저금리의 엔화를 빌려 해외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금융 기법)’ 자금이 대거 일본 국내로 환류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는 글로벌 신흥국 시장뿐만 아니라 미국 자산 시장에 유입되었던 유동성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여, 전 세계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극대화하는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돈의 가치(금리)가 상승하면서 지난 저금리 시대에 과도하게 부풀려졌던 자산 시장의 거품이 걷히고 있다. 부동산, 주식, 가상자산 등 유동성에 기반해 상승했던 자산들의 가치 재평가(Re-pricing)가 강도 높게 진행 중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가계와 기업, 그리고 정부가 짊어진 부채의 무게가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자본 비용의 증가는 한계 기업의 도산을 촉진하고, 고금리 고통에 직면한 가계의 소비 여력을 위축시켜 글로벌 총수요를 둔화시키는 악순환을 유발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가파른 금리 인상은 신흥국으로부터의 자본 유출을 가속화한다. 달러와 유로 등 강달러·강외화 기조 속에서 기초체력이 약한 신흥국들은 자국 통화 가치의 폭락과 수입 물가 상승이라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외환보유고가 취약한 일부 국가들은 국가 부도 위기에 직면할 수 있으며, 이는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시스템적 리스크로 확산될 소지가 다분하다. 앞으로 다가올 세계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핵심 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높은 자본 비용(High Cost of Capital)’의 고착화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단기간 내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금리가 과거의 제로 수준으로 돌아가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 기업들은 이제 고금리 환경 체제하에서 수익성을 증명해야 하며, 좀비 기업들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적자생존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둘째, ‘경제 안보와 블록화’의 심화다. 효율성 중심의 자유무역 시대는 가고, 자원과 공급망을 내재화하려는 보호무역주의와 블록화 경향이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이는 생산 비용의 만성적인 상승을 유발하여 고물가 기조를 장기적으로 뒷받침하는 구조적 요인이 된다.
셋째,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충돌’이다. 금리 인상으로 민간 경제가 위축되자 각국 정부는 보조금 지급과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 지출을 늘리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정부의 과도한 재정 지출은 중앙은행의 긴축 효과를 상쇄하고 물가를 자극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향후 통화 당국과 재정 당국 간의 정책 조율 능력은 국가 경제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변수가 될 것이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연쇄적인 금리 인상과 세계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는 대외 의존도가 높은 대한민국 경제에 거대한 도전 과제를 던지고 있다. 우리 경제는 이미 높은 가계부채 비율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험 등 고금리에 취약한 구조적 약점을 안고 있다. 글로벌 긴축 도미노 속에서 한국은행 역시 독자적인 완화 정책을 펼치기 어렵다. 한·미 금리 차 역전에 따른 자본 유출 우려와 환율 불안을 방어해야 하는 동시에, 국내 내수 침체와 부채 위기를 연착륙시켜야 하는 고차방정식을 풀어야만 한다.

이제는 과거 저금리 시대의 향수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할 때다. 기업들은 과도한 부채 의존형 경영에서 탈피하여 재무 건전성을 강화하고 기술 혁신을 통한 본질적인 생산성 제고에 집중해야 한다. 정부는 취약 계층의 부채 리스크를 관리하는 핀셋 대응책을 마련하는 한편, 파편화되는 글로벌 공급망에 대응하여 자원 외교와 수출 다변화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 변화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다. 고비용 구조를 견뎌낼 수 있는 체질 개선에 성공하는 국가와 기업만이, 다가오는 ‘고금리 뉴노멀(New Normal)’ 시대의 새로운 승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변혁의 파고는 이미 시작되었으며, 지금의 대응이 향후 수십 년간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