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사평균(Trimmed Mean) 물가지표의 통계적 메커니즘과 근원(Core) 물가의 한계
이미지 확대보기워시 체제가 가져올 가장 파괴적인 변화는 소통의 형식적 축소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연준이 통화정책의 절대적 기준으로 삼아온 인플레이션 측정 도구, 즉 물가지표의 프레임워크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워시는 청문회 과정에서부터 현재의 근원 개인소비지출(Core PCE) 물가지수가 후행적이며 현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도구임을 역설해 왔다. 그가 전면에 내세운 대안은 댈러스 연방은행이 산출하는 '절사평균(Trimmed Mean) PCE 물가지수'이다.
지금 미국 경제는 중동 지역, 특히 이란을 둘러싼 지정학적 분쟁의 재발로 인해 국제 유가가 폭등하고 공급망이 다시금 교란되면서 헤드라인 물가와 근원 물가가 모두 3%대 중중반 고착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전통적인 통계학적 기준과 파월 체제의 문법대로라면 현재의 연준은 기준금리를 3.50%~3.75% 수준에서 동결하거나, 오히려 추가 인상을 검토해야 하는 매파적 한계에 봉착해 있다. 이러한 국면에서 워시 의장이 '절사평균'이라는 생소한 카드를 꺼내 든 배경에는 고도의 정치 경제학적 계산과 전략적 노림수가 숨겨져 있다.
케빈 워시의 노림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절사평균 물가지표가 기존의 지표들과 어떻게 다르게 작동하는지 그 기술적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미국 노동부와 상무부가 각각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CPI)와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는 수백 가지 항목의 가격 변동을 가중 평균하여 산출된다. 인플레이션의 기저 흐름을 보기 위해 연준이 오랜 기간 애용해 온 '근원(Core) 물가'는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라는 두 가지 카테고리를 통계에서 기계적으로 제외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방식은 치명적인 약점을 지닌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다른 품목, 예를 들어 중고차 가격이 팬데믹기처럼 일시적으로 폭등하거나, 지정학적 타격으로 특정 IT 부품 가격이 일시적으로 급등할 경우 기저 물가 전체가 오염되는 현상을 막지 못한다. 즉, 카테고리 기반의 제거 방식은 '일시적 노이즈'를 완벽히 필터링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통계적 기법의 명분은 확실하다. 중동 분쟁으로 인해 특정 달에 유가가 30% 폭등했다면, 이는 미국 내 수요가 과열되어 발생한 구조적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대외 충격에 의한 일시적 노이즈이므로 통화당국이 이에 과잉 반응하여 금리를 올리는 실책을 범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이다. 변동성이 극심한 꼬리(Tail)를 잘라내고 중심부의 안정적인 흐름만 보겠다는 이른바 '기저 인플레이션(Underlying Inflation) 추적론'이다. 이 유연하고 과학적으로 보이는 통계 기법은 역설적으로 통계 산출 권한을 가진 자가 자의적으로 정책 방향을 유도할 수 있는 합법적 도구로 변질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케빈 워시의 정교한 정책적 빌드업이 시작된다.
케빈 워시가 절사평균 지표를 연준의 새로운 표준으로 삼으려는 가장 직접적이고 일차적인 노림수는 정부와 시장이 원하는 금리 인하를 단행하기 위한 '통계적 명분과 방어막'을 확보하는 것이다. 현재 2026년 상반기 미국 거시경제 지표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헤드라인 CPI는 3.8%를 상회하고 있으며 연준이 가장 신뢰한다는 근원 PCE 역시 3.3%~3.5% 수준에서 강력한 하방 경직성을 보이고 있다. 2.0%라는 연준의 통상적 물가 목표치와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이 상황에서 무리하게 기준금리를 인하했다가는 연준이 물가 안정 의무를 저버렸다는 비판과 함께, 1970년대 아서 번즈 전 의장이 저지른 '조기 금리 인하에 따른 초인플레이션 재발'이라는 역사적 오명을 뒤집어쓸 위험이 크다.
지표를 절사평균 PCE로 전환하는 순간, 마법 같은 통계적 착시가 일어난다. 현재 중동 리스크와 공급망 교란으로 폭등한 원자재 및 일부 서비스 항목들은 변동성 상위 31%에 걸려 통계에서 통째로 잘려 나간다. 그 결과, 현재 공식 근원 PCE는 3%대 중반을 가리키고 있지만, 절사평균 PCE를 돌리면 인플레이션 수치는 이미 연준의 목표치에 극도로 근접한 2.3%~2.4% 수준으로 뚝 떨어진다.
워시 의장의 노림수는 명확하다. 기자회견대에서 "전통적인 근원 PCE는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라는 공급측 노이즈에 오염되어 있다. 우리가 현실을 반영한 절사평균을 본 결과 미국 기저의 인플레이션은 이미 2%대 초반으로 하향 안정화되었으며, 따라서 현재의 고금리를 유지하는 것은 미국 잠재성장률을 훼손하는 과잉 긴축이다"라는 논리를 전개하려는 것이다. 즉, 숫자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것이 아니라 지표의 정의를 바꿈으로써, '물가를 잡으면서도 금리를 내리는' 정치적 승리를 거두기 위한 통계적 무기를 손에 쥐려는 속내이다.두 번째 노림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통화 완화 요구를 전면 수용하면서도, 연준의 대외적 신뢰성과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라는 외피를 훼손하지 않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타협이다.
여기서 절사평균 지표는 워시에게 완벽한 출구전략을 제공한다. 만약 워시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금리를 50bp씩 낮춘다면 시장은 연준의 독립성이 완전히 사망했다고 선언하며 달러를 던지고 채권 금리를 폭등시킬 것이다. 그러나 워시가 대통령의 압박 때문이 아니라 "연준 소속 학자들이 정교하게 개발한 댈러스 연은의 절사평균 통계 모델이 인플레이션 종결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에 금리를 인하한다"고 발표한다면, 이는 정치적 굴복이 아닌 '데이터에 기반한 과학적 정책 전환(Data-dependent Pivot)'으로 둔갑한다. 워시는 절사평균 도입을 통해 트럼프 행정부가 원하는 저금리·친성장 환경을 조성해 주는 동시에, 자신은 학문적이고 객관적인 지표를 따랐을 뿐이라는 명분을 챙기려는 것이다. 이는 정부의 요구와 중앙은행의 체면을 모두 살리는 고도의 정적 자산 관리 기법이자, 연준의 독립성을 통계학의 이름으로 우회해 버리는 영리한 노림수이다.
세 번째 노림수는 금융시장에 대한 통제권을 연준 의장 1인에게 다시 집중시키는 '전지전능한 연준'의 부활이다. 벤 버냉키 이후 제롬 파월에 이르기까지 지난 20년간 연준의 소통 기조는 '투명성(Transparency)'이었다. 점도표를 통해 향후 몇 년간의 금리 경로를 미리 보여주고, 성명서의 자구 하나하나를 수개월 전부터 예고하며 시장이 연준의 행보를 완벽히 예측하여 연착륙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포워드 가이던스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여주었지만, 반대로 연준 스스로를 쭝쭝 옭아매는 쇠사슬이 되기도 했다. 경제 데이터가 급변해도 이미 시장과 약속한 가이던스 때문에 연준이 기민하게 움직이지 못하고 실책을 범하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케빈 워시는 이러한 '친절한 연준'의 시대를 끝내고자 한다. 그가 점도표 폐지를 검토하고 절사평균 지표를 도입하려는 것은 시장이 연준의 다음 수를 감히 예측하지 못하게 만들겠다는 선전포고와 같다. 전통적인 근원 PCE는 시장의 이코노미스트들이 하위 품목의 가중치를 계산하여 다음 달 수치를 상당히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절사평균 PCE는 다르다. 매월 어떤 품목이 상위 31%와 하위 24%의 '절사 구역'에 들어가서 잘려 나갈지 평론가나 시장 참여자들이 사전에 완벽히 계산해 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통계의 불확실성이 극대화되는 것이다.
이처럼 지표의 예측 가능성이 사라지면 시장은 오직 FOMC 당일 워시 의장의 입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워시는 과거 1990년대 대공황 이후 최고의 호황을 이끌었던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의 모델을 추구한다. 그린스펀은 모호한 화법으로 시장을 안개 속에 가두어 둔 채, 들어오는 데이터를 자신만의 감각으로 해석하여 예고 없이 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며 시장의 절대자로 군림했다. 워시 역시 절사평균이라는 복잡하고 베일에 싸인 지표를 방패 삼아, 시장의 섣부른 랠리를 통제하고 통화정책의 전권을 의장실 책상 위로 회수하겠다는 거대한 권력적 노림수를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케빈 워시 의장의 이러한 정교한 노림수들은 미국 경제와 글로벌 금융시장에 치명적인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학계와 노무라 등 주요 투자은행(IB)들이 지적하는 절사평균 지표의 결함과 잠재적 리스크는 결코 가볍지 않다.
가장 큰 리스크는 연준이 정책적 목적(금리 인하)을 위해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숫자만을 보여주는 지표를 골라 썼다는 '지표의 주관적 선택' 논란이다. 인플레이션이 제어되지 않았음에도 저금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통계적 정의를 바꾸는 행위는 장기적으로 달러화의 신뢰성을 지탱하는 연준의 도덕적 권위를 실추시킨다. 시장이 연준의 통계를 신뢰하지 않고 자체적인 물가 지표(예컨대 민간 CPI 가중치 모델)를 기준으로 채권 가격을 책정하기 시작하면 연준의 통화정책 영향력은 급격히 무력화될 수 있다.
절사평균 지표는 물가의 급격한 반전 국면에서 치명적인 맹점을 드러낸다. 유가나 원자재 가격의 폭등을 단순히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일시적 노이즈'로 규정하여 통계에서 잘라내 버리지만, 현실 세계에서 유가 상승은 수개월의 시차를 두고 운송비, 제조원가, 그리고 최종 외식 및 숙박 서비스 가격으로 전방위로 전이(Spillover)된다. 즉, 꼬리 부분이 몸통 전체를 오염시키는 구조적 인플레이션이 시작될 때, 절사평균은 이를 초기 노이즈로 오판하여 가장 늦게 포착하는 둔감한 성향이 있다. 실제로 팬데믹 직후인 2021년 초, 전통 헤드라인 물가가 치솟을 때 댈러스 연은의 절사평균 지표는 일시적 현상이라며 낮은 수치를 유지했고, 이는 연준의 역사적인 금리 인하 실책(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는 오판)을 키운 주범이었다. 워시 체제가 이 실책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점도표가 사라지고 지표의 예측 가능성이 차단된 상태에서 연준이 절사평균 지표만을 근거로 기습적인 정책 전환을 감행할 경우, 금융시장은 극심한 정보 굶주림 상태에 빠지게 된다. 과거 2013년 벤 버냉키 의장의 말 한마디에 글로벌 채권시장이 폭락했던 '긴축 발작(Taper Tantrum)'처럼, 워시 의장의 독단적 발언과 베일에 싸인 통계 해석은 시장의 변동성을 완화하기는커녕 예기치 못한 순간에 초대형 자산 시장의 발작을 유발할 수 있다. 케빈 워시 신임 연준 의장이 주재하는 첫 FOMC와 그가 도입하려는 절사평균 물가지표는 단순한 통계학적 도구의 변경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적 요구와 중앙은행의 명분, 그리고 의장의 권력 회수라는 세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설계된 고도의 정치 경제학적 프레임워크의 전환이다.
워시는 대외 충격에 따른 물가 착시를 제거하고 '기저 인플레이션'을 과학적으로 추적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백악관이 그토록 갈망하는 금리 인하의 길을 열어주고자 한다. 또한 이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독립성을 방어하는 동시에 시장에 대한 정보 통제권을 장악하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숫자가 마음에 들지 않자 숫자를 재는 자자의 눈금을 바꾸어 버리는 이 영리한 통계적 대전환은, 단기적으로는 자산 시장의 환호와 친성장 국면을 만들어낼지 모른다.
역사적으로 인플레이션은 통제기구가 눈을 감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유령이 아니었다. 일시적 노이즈라는 핑계로 잘라낸 유가의 폭등과 공급망의 균열이 미국의 서비스 물가 전반을 잠식하고 있음이 뒤늦게 증명되는 순간, 워시의 절사평균 방패는 무너질 것이며 연준은 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케빈 워시의 절사평균 노림수는 과연 미국 경제를 살릴 구원의 혁신인가, 아니면 인플레이션의 재발을 묵인한 위험한 정치적 도박인가. 그 서막이 이번 6월 FOMC 기자회견장에서 오르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