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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클래리티법 부결과 암호화폐 스테이블코인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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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클래리티법 부결과 암호화폐 스테이블코인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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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김대호 진단] 클래리티법 부결, 암호화폐 어디로 가나

상원 문턱에서 무너진 클래리티법


클래리티법이 상원 문턱에서 일단 좌절됐다. 미국 상원에서 진행된 '디지털 자산 시장 명확성 법안(Digital Asset Market Clarity Act, 이하 클래리티법)'의 본회의 상정 절차 표결(Cloture Vote)은 찬성 49표 대 반대 50표로 부결되었다. 필리버스터를 무력화하고 본회의 최종 심의를 개시하기 위해 필요한 의결 정족수 60표 확보에 실패하면서, 연내 단독 법안 통과는 사실상 위기에 처했다.

상원 의석 과반(53석)을 보유한 공화당의 주도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 전원이 반대표를 던졌다. 여기에 공화당 내에서 수전 콜린스, 조시 하울리, 제리 모란 의원이 반대표를 행사했고, 톰 틸리스 의원은 추후 재심의 동의안 제출을 위한 절차상 반대로 선회하며 총 4명의 여당 이탈표가 발생했다.

핵심 결렬 요인 중 첫 번째는 공직 윤리 및 이해충돌 조항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및 일가가 운영하는 디지털 자산 관련 사업 수익과 관련해, 민주당은 엄격한 자산 매각(Divestment) 및 이해충돌 방지 조항 명문화를 요구했다. 공화당은 주(State) 법무장관의 집행 권한 부여 등의 수정안을 제시했으나, 민주당 협상단이 이를 거부하면서 타협이 결렬됐다.

두 번째 핵심 결렬 요인은 전통 은행권의 제404조 반발이었다. 법안 제404조에서 지급용 스테이블코인의 이자 지급을 금지하면서도 '부수적 보상(Rewards)' 및 프로모션 인센티브를 예외로 허용한 대목을 두고, 미국 독립지역은행협회(ICBA)와 미국은행협회(ABA) 등 금융권이 지역은행 예금 이탈(Deposit Flight) 위험을 이유로 강력한 로비를 전개했다. 막판 재무장관의 개입 권한을 추가했으나 은행권의 우려를 완전히 해소하지 못했다. 표결 직후 비트코인 가격은 7만 5,000달러 선 밑으로 하락했고, 코인베이스 등 주요 관련 기업 주가 역시 급락했다.

미국 상원의 입법 절차에서 '클로처(Cloture)' 표결은 단순한 형식적 통과의례가 아니다.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종결짓고 법안의 본회의 심의 및 표결 단계로 진입하기 위한 유일한 열쇠다. 미국 헌법과 상원 의사규칙상 100석 중 60석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하면 법안은 의사일정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영구 계류된다. 공화당은 제119대 의회 상원에서 53석의 다수 의석을 점하고 있었으나, 민주당(47석)의 조직적 저지선을 뚫기 위해서는 최소 7명 이상의 민주당 의원을 끌어들여야 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민주당은 이탈자 없이 47명 전원이 반대표를 던졌고, 오히려 공화당 내부에서 4명의 이탈표가 쏟아져 나오며 49대 50이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민주당이 결속한 표면적 명분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공직자 이해충돌' 문제였다. 트럼프 대통령 일가는 취임 전후로 자체 가상자산 프로젝트와 탈중앙화 금융(DeFi) 프로토콜을 적극적으로 출범시켰다. 민주당 상원 지도부는 대통령 일가의 가상자산 사업체와 토큰 발행 내역이 법안의 규제 완화 대상에 그대로 포함될 경우, 백악관이 직접적으로 사익을 편취하는 구조가 합법화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협상단은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가 가상자산 사업체로부터 배당이나 수수료 수익을 취득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자산 매각 및 백지신탁 규정을 요구했다.

공화당 협상단은 이를 대통령을 겨냥한 정치적 표적 조항이라며 맞섰다. 공화당은 연방 차원의 일괄 매각 대신 주(State) 법무장관에게 사후 위법 행위 조사권을 부여하는 타협안을 제시했으나, 민주당은 실효성이 전무한 면죄부 조항이라며 일축했다. 이로써 초당적 타협의 가능성은 표결 직전 완전히 증발했다.

제404조의 뇌관: 전통 은행권 대 가상자산 업계의 수신 쟁탈전

정치적 쟁점 이면에 숨겨진 실질적인 입법 좌초의 주원인은 전통 은행권과 디지털 자산 업계 사이의 정면충돌이었다. 그 충돌의 중심에 바로 클래리티법 '제404조(Section 404, 체계번호 Sec. 10404)'가 자리하고 있었다.제404조는 '지급용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이자 및 수익 지급 금지(Prohibiting Interest and Yield on Payment Stablecoins)'라는 표제를 달고 있다. 법안의 기본 구조는 상업은행의 예금과 유사하게 기능하는 스테이블코인이 이자를 지급해 무보험 금융 상품으로 변질되는 것을 차단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는 앞서 발의된 지니어스 법안(GENIUS Act) 제105조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인(Issuer)의 이자 지급을 전면 금지했던 기조를 계승한 조치였다.

클래리티법 제404조 (b)항은 가상자산 거래소와 중개 플랫폼의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 '부수적 보상(Incidental Rewards)'이라는 예외 조항을 신설했다. 즉, 단순 보유에 따른 확정 금리 형태의 이자는 불법이지만, 사용자의 결제 거래량이나 플랫폼 네트워크 참여도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캐시백, 할인, 로열티 포인트, 프로모션 리워드는 합법화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이 예외 규정이 공개되자 미국 독립지역은행협회(ICBA)와 미국은행협회(ABA), 대형 은행을 대변하는 은행정책연구소(BPI)가 일제히 들고일어났다. 은행권은 성명을 통해 "제404조 (b)항은 금융 규제의 근간을 흔드는 거대한 입법적 백도어(Backdoor)"라고 규탄했다.

지역 커뮤니티 은행들의 우려는 명확했다. 연방준비제도의 기준금리 고공행진 속에서 상업은행의 저원가성 예금은 지속적으로 압박을 받아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형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사실상 연 4~5%대의 수익률을 모방한 '거래 기반 리워드' 상품을 공식 출시할 경우, 지역 상업은행의 핵심 수신 기반인 요구불예금이 대규모로 이탈(Deposit Flight)할 위험이 현실화된다.

미국 전역의 지역은행은 해당 지역의 중소기업 운전자금, 농가 대출, 상업용 부동산 모기지를 지탱하는 핏줄 역할을 수행한다. 예금이 디지털 월렛으로 대거 유출되면 신용 창출 능력이 붕괴되고, 이는 곧 지역 실물경제의 마비로 직결된다. ICBA는 지역구 의원들을 상대로 "스테이블코인 이자 우회 지급을 방치하는 것은 지역 중소기업 대출 축소를 방조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이 논리는 지역 경제에 민감한 공화당의 중도·보수 성향 상원의원들의 이탈표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다. 공화당 지도부는 막판에 재무장관에게 리워드 허용 범위를 제한할 권한을 부여하는 수정 조항을 끼워 넣었으나, 은행권의 불신을 거두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입법 진공 상태가 초래한 삼중고(三重苦)


클래리티법의 상원 본회의 상정 부결은 미국 및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에 즉각적이고 구조적인 타격을 가했다. 법안 무산이 촉발한 핵심 리스크는 세 가지 차원으로 요약된다.

첫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간의 규제 권한 충돌이 장기화 국면에 재진입했다.클래리티법의 최대 존재 이유는 디지털 자산의 '탈중앙화 기준'을 법률상 수치로 확정하여 상품(Commodity)과 증권(Security)의 경계를 확정하는 것이었다. 일정 요건을 충족한 자산을 CFTC 관할의 디지털 상품으로 분류함으로써 SEC의 자의적인 증권법 잣대를 배제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법안이 표류함에 따라 시장은 다시 1946년의 '하위 테스트(Howey Test)'에 기반한 SEC의 개별 집행 규제(Regulation by Enforcement)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규제 명확성(Clarity)을 얻기는커녕, 사법부의 개별 판례에 운명을 맡겨야 하는 극단적 법적 불안정성이 재현된 것이다.

둘째, 기관 자금의 유입 경로가 차단될 위기에 직면했다.비트코인과 이더리움 현물 ETF 승인 이후, 글로벌 자산운용사와 국부펀드, 연기금 등 장기 자본이 요구했던 선결 과제는 법률에 기반한 시장 인프라였다. 고객 자산의 수탁(Custody) 기준, 브로커-딜러의 자기자본 요건, 결제 완결성을 보장하는 연방법이 부재한 상태에서 위험 관리를 최우선으로 삼는 기관 자금이 시장 비중을 공격적으로 늘리기는 불가능하다. 이번 부결로 인해 디지털 자산 시장의 구조적 제도화는 수개 분기 이상 지연될 수밖에 없다.

셋째, 글로벌 가상자산 규제 패권 경쟁에서 미국의 고립이 심화되고 있다.유럽연합(EU)은 이미 포괄적 단일 규제안인 미카(MiCA, Markets in Crypto-Assets)를 전면 시행하며 글로벌 웹3 자본과 혁신 기업의 규제 안식처를 자처하고 있다. 싱가포르, 홍콩, 아랍에미리트(UAE), 일본 등 주요 금융 거점들 역시 정교한 디지털 자산 라이선스 체계를 구축하고 제도 정비를 완결했다. 반면 세계 최대 금융시장인 미국은 의회의 당파적 대립과 금융권의 영역 다툼으로 인해 포괄적 기본법 하나 제정하지 못하는 입법 불능 상태를 드러냈다. 이는 미국 내 혁신 핀테크 자본과 인재가 역외 시장으로 유출되는 '오프쇼어링(Offshoring)'을 가속화하는 요인이 된다.

아직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다?


단독 법안으로서의 클래리티법은 상원 문턱에서 좌초되었으나, 향후 입법 추진 경로는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 향후 전개될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시나리오 1은 11월 중간선거 이전 '단기 완전 교착' 이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연방정부의 셧다운을 막기 위한 임시예산안(CR) 처리가 의회의 최우선 과제로 부상했다. 선거가 목전인 상황에서 표 결집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가상자산 쟁점 법안을 상원에 재상정할 정치적 동력은 전무하다. 공직자 윤리 조항과 제404조의 은행권 이견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표결을 시도하는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에 가깝다. 선거 전 입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시나리오 2는 11~12월 '레임덕 회기'의 패키지 법안 병합 통과 가능성이다. 가장 현실적이며 가상자산 업계가 기대를 거는 우회로는 선거 직후 소집되는 11~12월 레임덕(Lame-duck) 의회다. 의회 회기 종료 직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하는 초당적 연례 법안인 '국방수권법(NDAA)'이나 '연방 종합세출법안(Omnibus Spending Bill)'에 클래리티법의 핵심 조항을 부속 조항(Rider)으로 병합하여 통과시키는 방식이다. 이 경로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가상자산 업계의 뼈아픈 양보가 필수적이다. 민주당의 요구를 수용해 대통령 일가를 포함한 고위 공직자 이해충돌 차단 장치를 대폭 강화해야 하며, 지역은행들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제404조 (b)항의 스테이블코인 '부수적 보상' 예외 범위를 완전히 삭제하거나 축소해야 한다. 즉, 법안의 원안 통과는 불가능하며, 대폭 후퇴한 형태의 타협안만이 패키지 법안에 편입될 수 있다.

시나리오 3은 제119대 의회 회기 만료에 따른 자동 폐기와 2027년 원점 재발의 가능성이다. 연말 레임덕 회기에서도 양당 및 이해집단 간의 타협이 무산될 경우, 제119대 의회가 공식 종료되면서 클래리티법은 자동 폐기된다. 이 경우 2027년 1월 출범하는 제120대 의회에서 법안을 처음부터 다시 발의하여 소관 상임위 청문회부터 재시작해야 한다.이 시나리오는 최소 1~2년 이상의 정책적 암흑기를 의미한다. 특히 11월 중간선거 결과 상원이나 하원의 다수당이 민주당으로 교체될 경우, 규제 완화에 초점을 맞춘 클래리티법은 폐기되고 투자자 보호 및 은행식 건전성 규제를 강제하는 고강도 규제 법안이 새롭게 발의될 가능성이 높다.

암호화폐 시장은 어디로 향하는가


클래리티법의 상원 상정 부결은 가상자산 시장에 냉정한 교훈을 던졌다. 워싱턴 정치권에 막대한 선거 자금을 후원하고 행정부의 우호적 제스처에 기댄다고 해서 수백 년간 구축된 전통 금융의 질서가 하루아침에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전통 은행권의 반발은 단순한 밥그릇 싸움이 아니다. 화폐 발행과 신용 창조, 그리고 결제 시스템을 독점해 온 국가 및 제도권 금융 시스템의 생존 본능이다. 무보험 민간 디지털 화폐가 예금의 기능을 침탈하려 들 때, 기존 금융권은 모든 정치적·제도적 수단을 총동원해 저항한다는 사실이 이번 제404조 분쟁을 통해 확인되었다.

암호화폐 생태계는 단기적인 정치 테마나 입법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치권의 법안 통과 여부에 따라 시세가 요동치는 구조로는 성숙한 금융 자산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규제의 보호막이 늦어진다면, 시장 스스로 존재 이유와 실질적 효용(Utility)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 전통 은행망이 해결하지 못하는 국가 간 결제의 비효율성을 얼마나 실질적으로 낮추고 있는가. 스마트 콘트랙트 기반의 금융 인프라가 기존 중개 기관보다 얼마나 더 투명하고 안전하게 작동하는가. 투기적 차익 거래와 변형 이자 상품이 아닌, 실물경제의 생산성을 높이는 블록체인의 본질적 혁신이 입증되지 않는 한, 법안 부결이라는 벽은 앞으로도 반복해서 시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클래리티(Clarity, 명확성)'는 의회 의사당의 타협된 법전 위에서가 아니라, 실물 산업 현장에서 가치를 증명해내는 자생적 혁신의 경쟁력에서 완성된다. 입법 무산이라는 냉혹한 시험대 위에서 암호화폐 시장은 거품을 걷어내고 본질적 가치로 돌아가야 한다. 혁신의 속도가 기득권의 저항을 압도할 때 비로소 제도권 진입의 문은 열릴 것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