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19세기 정치경제학자 헨리 조지가 자신의 저서 ‘진보와 빈곤’에서 주창한 말이었다. 1870년대 미국 뉴욕을 방문했던 그는 신세계에서 빈부격차가 더 심한 모습을 목도했다.
헨리 조지는 농촌이나 소도시에선 부의 불평등 현상을 크게 경험하지 못한 반면, 대도시에선 최상위층과 최하위층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모습을 보고 이같은 상반된 현상의 원인으로 ‘땅값의 차이’를 도출해 냈다. 즉, 빈부 양극화 사회에서 환경(부)의 격차가 대부분 ‘땅값’으로 평가돼 나타난다고 주창했다.
이같은 사회문제의 인식을 바탕으로 헨리 조지는 ‘토지단일세’라는 해법을 제시했다. 즉, 토지를 공공재로 되돌리되 토지 본원의, 또는 부수의 가치에 세금을 매겨 공공(사회)에 돌려주자는 얘기였다.
토지와 자본 둘 다 공유화를 주장한 마르크스와 달리 헨리 조지의 논지는 토지 공유화에 초점을 맞췄다. 땅 주인의 노력이 아닌 인구 증가, 기술 발전 등으로 오른 땅값의 가치는 사회적 가치이기에 공동체(사회) 이익으로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뜬금없이 21세기에 150년 전 경제사상가의 ‘라떼는’ 주장을 왜 꺼냈느냐고 반문이 나올만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치솟는 집값을 잡거나 전월세를 안정시키기 위해 내놓은 부동산 정책만 24차례나 이르지만 여전히 시장은 충격을 흡수하는 미동만 보일 뿐이다.
왜 그럴까.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의 부동산 관료들이 엉터리여서 답이 안 나오는 ‘노답(NO答)’ 카드를 쏟아낸 탓일까.
이유야 어떻든 역대 정부들이 저마다 집값 잡기를 위한 온갖 수단들을 동원했지만 대체로 시장의 역풍을 맞고 중도하차했거나, 아예 꽃망울도 맺지 못하고 시들어버리기 일쑤였다.
150년 전 헨리 조지를 끄집어낸 이유는 현재 부동산 문제를 놓고 진행되는 갑론을박이 너무 단편적, 표피적으로 흐를뿐 뭔가 고민의 뿌리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대부분의 부동산 전문가들은 ‘시장 불패론’, ‘집값 부동론’을 전복시키기 싫은 모양이다. 정부가 아무리 정책수단을 동원해도 부동산 획득을 통해 자산을 증식하려는 한국인의 욕망을 절대 꺾을 수 없을 것이라는 현실론에 자기 논리와 시장 이익을 싣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들에게 집값의 안정이 가져올 시장과 개인의 욕망의 파멸보다는 차라리 공급과 수요 간 접점이 없는 개발이익의 무한반복 구조가 경제이익에 부합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부동산의 가격과 양에 따라 사회적 계급과 부의 척도가 매겨지는 불평등의 양극화를 조금이라도 해소하려는 공공임대주택의 활성화 움직임에 비교열위론을 내세워 실수요자들을 민간주택의 ‘로또 분양’ 대열로 돌려세우는 등 재 뿌리기에 적극 나선다.
로또 분양 같은 차익 실현은 거부할 수 없는 욕망이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흙수저로 태어난 대다수의 월급쟁이와 영세 자영업자들에겐 빚(대출)을 끌어다 생떼 같은 이자를 장기간 감수하더라도 장래의 재산가치를 불릴 수 있는 공인된 재테크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장래의 가치란 내 손에 쥐어져야 효용이 현실화되고 극대화된다. 불행히도 앞으로 20~30년 뒤 한국사회는 저출산에 따른 인구감소가 불가피해 보인다. 생산과 소비의 주체가 줄어드는 사회에서 주택을 포함한 재화의 가치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 장래 가치를 위해 투입한 현재 고비용을 갚기 위해 부모세대에서 자식세대로 이어지는 ‘빚의 세습’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만약, 헨리 조지가 21세기 대한민국을 방문해 토지와 주택을 둘러싼 불평등 현상을 목격한다면 어떤 분석과 답을 내놓을까 자못 궁금하다.
이진우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ainygem2@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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