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19 10:45
벌초를 했다. 깔끔해진 봉분들을 바라보면 유년 시절, 시골 장날 이발관에서 면도를 하고 나오시는 아버지의 모습처럼 단정하여 참 보기가 좋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가을은 ‘묘지가 아름다운 계절’이란 생각이 든다. 벌초를 하느라 선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자주 마주치는 꽃 중에 물봉선이 있다. 어린 누이의 손톱을 붉게 물들이던 여름 화단의 봉선화와 한 집안이다. 다른 게 있다면 꽃밭에서 만나는 봉선화는 멀리 인도가 고향이다. 야생화를 좋아하는 사람 중엔 봉선화가 우리 꽃이 아니라는 이유로 멀리하기도 하지만 봉선화는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의 시와 그림에도 등장할 만큼 우리와 오랜 세월 함께 해 온 친숙한 꽃이다. 손톱에2018.09.12 13:08
누군가가 그리우면 가을이다. 어느 시인은 물소리 깊어지면 가을이라고 했지만 까닭 없이 누군가가 그리워지면 나는 내 안에도 가을이 당도했음을 직감한다. 녹음을 짙게 드리우던 초목들이 물 긷는 일을 멈춘다는 처서를 지나 풀잎에 찬 이슬 내린다는 백로도 지났으니 절기상으로도 이젠 완연한 가을이다. 불볕더위가 멈칫한 사이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가을꽃 축제 소식에 훌쩍 꽃을 찾아 떠나고 싶어진다. 각 지역마다 가을꽃 축제가 다양하게 펼쳐지지만 그 중에 백미는 누가 뭐래도 영광 불갑사 일원에서 열리는 상사화 축제가 아닐까싶다. 붉게 타는 노을빛을 닮은 꽃들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면 가을 숲은 온통2018.09.05 12:07
마침내 9월이다. 폭염과 폭우로 점철된 지난 여름은 유난히 힘겹고 지루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가을로 들어선다는 입추가 지났건만 폭염의 기세는 좀처럼 수그러들 줄 몰라 햇볕 아래 서는 게 아직도 두렵기만 하다. 사상 초유의 가마솥 더위를 견디며 나는 종종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읽었던 ‘여름징역’ 이야기를 떠올리곤 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여름징역은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자기와 가장 가까이에 있2018.08.29 14:40
사상 초유의 폭염 속에 온 나라가 가마솥처럼 설설 끓었다. 그늘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등줄기로 땀이 흐른다. 소나기라도 한 번 시원하게 퍼부었으면 좋으련만 하늘은 얄미우리만치 티끌 하나 없이 쨍하기만 했다. 태양을 능멸하며 요염한 자태를 뽐내던 능소화도 시나브로 떨어지는데 청명한 하늘 아래 유난히 화사하게 꽃송이를 피워달고 눈길을 사로잡는 나무가 다름 아닌 배롱나무다. “배롱나무를 알기 전까지는/ 많은 나무들 중에 배롱나무가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가장 뜨거울 때 가장 화사한 꽃을 피워놓고는/ 가녀린 자태로 소리 없이 물러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남모르게 배롱나무를 좋아하게 되었는데/그 뒤론 길 떠나면2018.07.31 14:29
장맛비가 그치고 나니 연일 폭염의 나날이다.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이어지면서 이 뜨거운 여름을 어떻게 넘겨야 할지 은근히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나무 그늘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등줄기로 땀이 흐르는 요즈음, 그냥 바라만 봐도 우리의 눈을 시원하게 해 주는 꽃이 있으니 바로 수국이다. 수국(水菊)은 문자 그대로 “물을 좋아하는 식물, 국화를 닮은 꽃”이다. 수국의 이명으로는 분단화(分團花) 또는 수구화(繡毬花)로 불리기도 한다. 수국은 조금만 건조해져도 바로 시들어 버린다. 하지만 물속에 담가 두면 한 시간도 못 되어 다시 살아난다. 영원히 시들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시위를 하듯 잠시 변덕2018.07.11 11:06
무궁화가 피기 시작했다. 아침산책길에서 무궁화와 마주쳤을 때 황지우 시인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란 시가 생각났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로 시작되어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하는데 대한사람 대한으로/길이 보전하세로/각각 자기 자리로 앉는다/주저앉는다.”로 끝을 맺는 황지우의 시는 지난 시절의 추억과 함께 쓴웃음을 짓게 만든다. 이제는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경건한 자세로 애국가를 경청해야만 했다. 80년대의 숨 막히는 현실 속에서 느끼는 절망감과 좌절감을 표현한 이 시는 당연히 그래야2018.07.04 11:30
요즘 화단마다 원추리 꽃이 한창이다. 붓다 긋다를 거듭하는 장맛비 사이로 물방울을 머금고 피어 있는 노란 원추리 꽃을 보면 마치 내 안에도 꽃등을 켠 듯 마음이 환해진다. 쨍한 햇살 아래 피어 있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비 오는 날 함초롬히 빗방울을 머금고 있는 모습은 일상의 근심을 다 잊게 할 만큼 아름답다. 요즘은 조경용 지피식물로 각광을 받으면서 도시의 공원이나 도로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꽃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집안 뒤뜰 깊숙이 심어두고 즐기던 아녀자의 꽃이었다. 옛사람들은 근심을 잊게 해주는 꽃이라 해서 원추리를 망우초(忘憂草)라 불렀다. 꽃이 얼마나 아름다우면 근심을 잊게 할까 싶기도 하지만 임신한 여2018.06.27 11:02
쨍한 한낮의 햇살을 피해 그늘진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면 갑자기 눈앞이 환해질 때가 있다. 그것은 바로 담장을 타고 올라 만발한 주황색 능소화와 마주치는 순간이다. 이글거리는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고고하면서도 강렬한 꽃빛으로 태양과 맞서며 환하게 웃고 있는 능소화를 보면 뜨겁고 강렬한 삶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요즘 능소화가 한창이다. 옛날에는 능소화가 피는 걸 보고 장마가 시작되는 걸 알아차렸다고 한다. 일기예보 대신 꽃을 보고 시절을 읽었던 옛사람의 지혜가 놀랍고 멋스럽게 느껴진다. 능소화(凌霄花)의 ‘능소(凌霄)’는 하늘을 타고 오른다거나 하늘을 능멸한다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어느2018.06.20 15:51
마침내 접시꽃이 피었다. 아침산책을 나갔다가 무리지어 핀 접시꽃을 보았을 때 본능적으로 여름이 당도했음을 직감했다. 담장을 타고 오르던 넝쿨장미의 선홍빛 불꽃이 스러지고 초록 일색으로 짙어져 갈 무렵 피어나는 접시꽃은 여름을 알리는 전령사와 같은 꽃이기 때문이다. 흰색, 자주색, 분홍색, 붉은색 등 다양한 색으로 피어나는 접시꽃을 보면 마치 화려한 색깔의 접시를 펼쳐 놓은 잔칫상 같다. 한줄기 소나기가 지나간 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물방울을 머금고 있는 접시꽃과 마주치면 마음에도 꽃물이 드는 듯하다. 예로부터 사립문 옆에 많이 심어 손님맞이 꽃으로 불리는 접시꽃은 조선시대에는 어사화로 사용할 만큼 많은 사랑을2018.06.12 15:00
사상 초유의 북미회담을 앞두고 세계의 이목이 개최지인 싱가포르로 쏠리고 있다. 개최국인 싱가포르는 이를 기념하는 기념주화까지 발행했다는 소식이다. 싱가포르 조폐국이 5일 발표한 기념주화는 앞면엔 두 정상의 맞잡은 손을, 뒷면엔 ‘세계평화(World Peace)’라는 영문 문구와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가 나는 모습과 미국 국화 장미, 북한 국화인 목란을 새겨 넣었다. 꽃은 어디에 피어도 아름답고 향기를 잃지 않지만 때로는 이렇게 역사의 한 순간을 기념하고 상징하는 메타포가 되기도 한다. 목란(木蘭)은 ‘나무에 피는 난초’ 같다고 하여 북한 쪽에서 부르는 이름이고 우리말 정식 이름은 함박꽃나무다. 목련과에 속하는 활엽소교목인2018.05.23 14:02
불기 2562년을 맞아 부처님 오신 날 봉축 표어로 ‘지혜와 자비로 세상을 아름답게’가 선정됐다. 지혜와 자비는 부처의 가르침 핵심으로 지혜 없는 자비는 위선과 자기만족에 그칠 수 있고 자비 없는 지혜는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으므로 지혜와 자비를 갖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아름다운 새 세상을 만들어 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설명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즈음하여 탐스럽게 피어나는 꽃이 불두화(佛頭花)다. 이름 그대로 부처의 머리를 닮은 꽃이다. 꽃송이가 마치 곱슬곱슬한 부처의 머리카락인 나발(螺髮)을 닮아 붙여진 이름인데 절에선 흰 승무 고깔을 닮았다고 ‘승무화(僧舞花)’라 부르기도 한다. 영어로는 눈을 뭉쳐놓은 공2018.05.16 10:06
도서관 행사에 초대 받아 초등학생들과 공주풀꽃문학관으로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공주풀꽃문학관은 ‘풀꽃’이란 시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을 기리는 문학관이다. 문학관 앞뜰엔 시인이 손수 가꾼 꽃들이 비를 맞으며 함초롬히 피어 있었다. 순진무구한 아이들에게 시를 소개하고 꽃 이름을 알러주는 일이 여간 즐거운 게 아니었다. 문학관을 나와 무령왕릉에 갔을 때 한 아이가 찔레꽃을 가리키며 이름을 물었다. 산골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찔레꽃을 모른다는 게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도시에서만 자란 아이라면 모를 수도 있겠다 싶어 꽃 이름을 알려주고 꽃에 대한 이야기도 생각나는 대로 들려주었다. 찔레는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성2018.05.09 11:54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면서 생긴 즐거움 중의 하나는 날마다 새로 피어나는 꽃들과 인사하는 일이다. 어제 본 꽃은 다시 만나 기쁘고 오늘 본 꽃은 첫 만남이라 더욱 설레고 반갑다. 처음엔 건강을 위해 천변의 도로를 달리는 일만으로도 뿌듯했는데 꽃들과 인사를 하다 보니 숲속의 꽃들이 궁금해져 산길을 오르는 일이 잦아졌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오월의 숲은 이미 신록이 짙어질 대로 짙어져 초록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그렇다고 오월의 숲이 초록 일색이라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잎보다 먼저 피었던 꽃들이 지고 나면 숲은 또 초록 이파리 사이로 새로운 꽃을 내어 달고 ‘삶은 죽을 때까지 아름답다’고 소리 없는 찬가를 부르기 때문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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