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0 15:09
낙엽 세상이다. 찬비 내리더니 거리는 온통 낙엽의 물결이다. 11월이 되어도 푸른 빛을 버리지 못했던 가로변의 은행잎들이 어느새 노랑나비 떼가 되어 바람에 몸을 던지고 느티나무·벚나무·플라타너스 낙엽들이 어지러이 거리를 덮고 있다. 곱게 물든 단풍잎을 책갈피에 갈무리하던 가을의 낭만을 떠올릴 틈도 없이 낙엽을 쓰는 청소부들의 손길만 분주하다. 이렇게 바람 불고 낙엽이 어지럽게 날리는 날이면 까닭도 없이 정처 없는 나그네처럼 걷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곤 한다. 나는 단풍나무와 신나무가 곱게 물든 잎을 페르시안 카펫처럼 깔아놓은 초등학교 담장을 따라 걷다가 숲으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섰다. 문득 숲이 궁금해졌기 때문2024.11.13 10:54
지난주 금요일 숲 모임 벗들과 양주 불곡산으로 산행을 다녀왔다. 불곡산은 경기도 양주의 진산으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양주역에 내리면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라서 수도권에서는 어디서나 접근이 쉬운 산이다. 단풍으로 화려하던 산빛이 절정을 지나 점점 갈색으로 바뀌는 만추의 산행길은 온통 낙엽으로 덮여 있다. 화려하던 단풍의 시간을 지나 바닥으로 내려앉아 서로 몸을 부비며 말라 가는 낙엽을 보면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 든다. 등산로마다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가을 산행도 이제 끝이란 생각이 들었다. 올해의 단풍이 그리 곱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지만, 내게는 올해의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단풍으로 기억에 남아 있2024.11.06 14:30
어느덧 가을의 끝자락이다. 초록 일색이던 산빛이 울긋불긋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서 절정으로 치닫다가 샛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흩날리며 가을은 대미를 장식한다. 가을의 감동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방학동 은행나무를 찾아간다. 서울시 지정 보호수 중에 수령이 제일 오래된 방학동 은행나무는 어느 때 찾아가도 깊은 감동을 주지만 은행잎이 순금 빛으로 빛나는 만추(晩秋)의 자태는 가히 환상적이라 할 만큼 찬란하다. 천 년 가까운 세월을 살면서도 어찌 저리 곱디고운 찬란한 잎을 내어 달 수 있는지 탄성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그 절정의 순간은 매우 짧다. 찬란하게 금빛으로 빛나던 은행잎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가지를 떠나 비처럼2024.10.30 14:41
바야흐로 단풍철이다. 비록 가을 폭염으로 인해 ‘지각 단풍’의 오명을 썼지만, 산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듯 여지없이 붉게 타오르고 있다. 휴일 아침, 이른 시간부터 국립공원 도봉산에는 단풍놀이 나온 등산객들로 북적였다. 도봉산의 사찰에서 열리는 ‘산사음악회’나 구경할까 집을 나섰다가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들어찬 인파에 놀라 발길을 돌려 산으로 향했다. 기왕 산을 오르는 김에 도봉산 중에서도 단풍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만월암 계곡으로 길을 잡았다. 등산로를 가득 메우던 사람들도 경사가 가파르고 유난히 계단이 많아서인지 만월암 등산로는 상대적으로 한산해 보였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곱게 물든 이파리를 달고2024.10.23 13:41
주말 동안 내린 가을비로 기온이 뚝 떨어졌다. 23일이 바로 가을의 마지막 절기인 '상강(霜降)'이라고 하니 어느새 가을의 끝자락에 선 듯하다. 24절기 가운데서는 18번째 절기에 해당하는 상강은 말 그대로 서리가 내리는 시기를 의미한다. 실제로 상강 무렵엔 가을의 쾌청한 날씨가 이어지고, 일교차가 크게 벌어지며, 밤에는 기온이 매우 낮아지면서 수증기가 지표에서 엉겨 서리가 된다. 온도가 더 낮아지면 얼음이 얼기도 하는 게 상강 무렵이다. 울긋불긋 아름답게 물든 가을 산을 보러 등산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때도 이 무렵이다. 유난히 길었던 더위의 영향으로 단풍이 늦어져서 상강 무렵인데도 멀리서 바라보는 북한산은 여전히 초록2024.10.16 15:00
며칠 새 창 너머로 보이는 초등학교 운동장가의 대왕참나무가 노을빛으로 물들었다. 김영민 교수는 ‘가벼운 고백’이란 책에서 “상반기가 속절없이 가버렸다는 사실을 부정하려고 음력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조락(凋落)의 계절, 가을이 되면 나 역시 세월이 여울물 소리를 내며 빠르게 흐르는 것을 느낀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드는 것도 스치듯 빠르게 지나가는 가을을 오래 간직하는 방법이 된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설악산행이었다. 지난여름에도 다녀왔는데 또 가느냐는 핀잔에도 불구하고 나는 배낭을 챙겨 설악으로 향했다. 한계령에서 시작해 대청봉까지 올랐다가 중청, 소청을 거쳐 희운각 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2024.10.09 13:08
하늘이 열린다는 개천절날 새벽, 일출을 보기 위해 백운대를 올랐다. 개천절처럼 명토 박힌 날은 집안에 가만히 들어앉아 있기보다는 왠지 산에라도 올라 일출을 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백운대는 북한산국립공원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북한산에서 가장 인기가 많다. 만경대, 인수봉과 함께 삼각산이란 이름을 낳게 한 세 봉우리 중 유일하게 도보 산행이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백운대는 북한산 특유의 장쾌하고 시원한 바위산의 조망이 펼쳐져 일출 장소로도 인기가 높은 곳이다. 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검푸른 새벽, 자전거를 타고 우이동 버스 종점까지 이동한 뒤 신발끈을 조여 매고 도선사 주차장을 향해 비탈진 산2024.09.23 13:26
완연한 가을이다. 좀처럼 물러갈 기미를 보이지 않던 무더위도 비에 쓸려간 듯 바람은 싱그럽고, 드높아진 하늘에서 쏟아지는 투명한 햇살은 세상의 초목들을 따사롭게 감싸며 은빛으로 빛나고 있다. 내 주위에서 소리 없이 일어나는 계절의 변화를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밖으로 나가 자연 속을 걷는 것이다. 창을 통해 바라보는 조각난 하늘보다 밖으로 나가 고개 젖혀 하늘을 바라보며 떠가는 구름과 구름을 밀고 가는 바람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껴보는 것이다. 어제와 사뭇 달라진 먼 산빛과 나뭇잎에 이는 바람결의 변화를 읽다 보면 내 안에도 가을빛이 들어찬 듯한 기분이 들곤 한다. 천변엔 억새와 수크령, 강아지풀과 같은 볏과의2024.09.11 16:11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지만 요즘 바깥 풍경은 차를 타고 가며 보면 가을, 차에서 내리면 여름이다. 에어컨 잘 나오는 차 안에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은 가을이 분명한데 차에서 내리면 땡볕이 후끈한 열기를 쏟아놓기 때문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쾌청한 하늘이 너무 좋아 드라이브를 나섰다가 태릉에 다녀왔다. 처음부터 태릉에 갈 생각은 아니었는데 촉수 잘린 개미처럼 정처 없이 거리를 맴돌다가 우연히 찾아든 곳이 태릉이었다. 30여 년 전, 태릉 가까이에서 살았던 터라 지명은 익숙하지만 스쳐 지나쳤을 뿐 정색하고 들어가 본 것은 처음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장권을 끊고2024.09.04 15:09
선자령에 다녀왔다. 선자령은 강원도를 영동과 영서로 나누는 ‘바람의 언덕’이다. 해발 1157m의 선자령은 높은 곳이지만 옛 대관령휴게소(840m)에서 출발하면 경사가 완만해서 산책하듯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다. 정상에 서면 발왕산, 계방산, 오대산, 황병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능선을 따라 서 있는 거대한 풍차가 돌고 있는 모습은 장엄하면서도 이국적이다. 여행의 목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한낮의 불볕더위와 열대야에 지친 몸을 추슬러 선자령으로 떠난 것은 그 풍경 속에 슬쩍 나를 끼워넣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초속 6~7m 이상의 바람이 1년 내내 부는 그곳에서 더위를 날려버리고 다른 사람보다 한발 앞서 가을2024.08.28 14:58
장마가 물러가도 폭염의 기세는 좀처럼 수그러들 줄 모르고 후텁지근한 무더위의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여름이 가기 전에 사랑을 이루고픈 매미들의 애절한 떼창에 선잠에서 깨어 창문을 여니 후끈한 열기가 나를 덮쳐온다. 이 소리는 분명 애매미 소리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소리의 진원지는 옆집 가죽나무다. 애매미는 은빛 햇빛을 받아 번들거리는 가죽나무 잎 사이, 어느 가지엔가 매달려 울고 있을 것이다. 애매미는 여름 막바지에 우는 매미로 알려져 있는데 이 뜨거운 여름이 잦아드는 저 매미 소리 따라 얼른 물러갔으면 싶다. ‘봄은 향기로 오고 가을은 소리로 온다’고 했던가. 조용히 눈을 감고 바람 소리에 귀2024.08.19 17:54
고향에서 벌초 날짜가 적힌 문자가 왔다. 더위를 견디느라 날짜 가는 줄도 몰랐는데 벌써 벌초할 때가 되었나 싶어 달력을 보니 오는 22일이 24절기 중 열네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인 처서(處暑)다. 처서는 더위의 정점인 입추(8월 7일)와 ‘흰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9월 7일) 사이에 들어있다. 여름내 뜨거웠던 더위가 물러가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처서.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도 누그러져 나무들은 물 길어 올리기를 멈추고 한해살이풀들도 더는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두렁의 풀을 깎거나 산소를 찾아 벌초하는 것이다. 예전의 아녀자들과 선비들이 여름 동안 장마에 젖은 옷이나 책을 음지(陰地)에서 말리는2024.08.19 11:41
김유정역이 사람의 이름을 딴 역이라면 소요산역은 산의 이름을 그대로 빌려 역명을 지었다. 1호선 전철을 타고 동두천의 소요산역에 내리면 곧바로 경기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소요산을 오를 수 있다. 소요산의 산세는 그리 웅장하지는 않으나 석영 반암의 대 암맥이 산 능선을 따라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경기의 소금강으로 불릴 만큼 경승지(景勝地)로 유명한 산이다. 동두천의 산줄기는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한북정맥이 이어져 있다. 동쪽으로는 국사봉을 주봉으로 왕방산·해룡산이 둘러쳐져 있고, 남쪽으로는 천보산의 회암령에서 서북으로 칠봉산이 남쪽의 경계를 이루는데 소요산은 국사봉 서쪽 산록에 우뚝 솟아 아름다운 자태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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