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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중국 희토류 수출 통제로 한국 수입 76% 급락...세계 공급망 대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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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중국 희토류 수출 통제로 한국 수입 76% 급락...세계 공급망 대혼란

4월 허가제 도입 후 자석 수출 43% 감소, 가격은 두 달 만에 6배 급등
중국이 희토류 자석 수출 통제를 무기 삼아 미국과 한국 등 주요국을 겨냥한 경제 압박에 나서면서 세계 공급망이 대혼란에 빠졌다. 8일 영국 경제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즈(FT)와 일본의 경제신문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중국이 지난 4월 도입한 희토류 수출 허가제 때문에 세계 각국의 자동차·전자·방산업계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중국 현지 조사업체 톄허진짜이셴(鉄合金在線)에 따르면, 4월 희토류 자석 수출량은 약 3000t으로 3월 5800여t보다 절반 가까이 급감했다. 지난해 같은 달과 견주면 43%나 줄어든 수치다. 특히 한국으로 보내는 수출은 76% 폭락했고, 미국은 59% 감소했다. 최대 수출국이던 독일도 44%, 일본도 16% 각각 줄었다.

중국의 희토류 시장 지배력 강화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권의 희토류 독립이 난항을 겪고 있다.사진은 중국 국기 '오성홍기'와 주기율표 상의 갈륨(Gallium)과 저마늄(Germanium) 원소.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중국의 희토류 시장 지배력 강화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권의 희토류 독립이 난항을 겪고 있다.사진은 중국 국기 '오성홍기'와 주기율표 상의 갈륨(Gallium)과 저마늄(Germanium) 원소. 사진=로이터


가격 급등도 심각한 수준이다. 영국 시장조사회사 아거스 미디어(Agus MediA)에 따르면, 고성능 자석에 사용되는 디스프로슘과 테르븀은 4월보다 5월 가격이 3배까지 치솟았다. 6일 현재 디스프로슘은 1kg에 750달러(약 102만 원), 테르븀은 킬로그램당 2850달러(약 388만 원)로 4월보다 2배 이상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방산 부문에 사용되는 이트륨은 지난 2개월 동안 약 6배 급등해 1kg에 45달러(약 6만 1000원)를 기록했다.

◇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 전략과 전 세계 충격


중국 상무부는 지난 4월4일 디스프로슘, 테르븀 등 7종의 중희토류 원소와 고성능 자석을 수출 규제 품목에 올리며 허가받은 기업만 수출할 수 있는 허가제를 적용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겨냥한 상호 관세를 도입한 후 취한 맞대응 조치다.

중국의 통제가 위협이 되는 이유는 희토류 산업 전반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광산 생산의 60∼70%, 제련·분리 공정의 85∼90%, 완제품인 희토류 자석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며 공급망 상류부터 하류까지 모두 틀어쥐고 있다.

중국은 최근 국가 차원의 실시간 추적 체계까지 도입해 통제를 한층 강화했다. 이를 통해 희토류 자석의 생산량은 물론 수출, 거래량, 최종 고객 정보까지 온라인으로 관리하고 있다.

희토류 자석 공급망이 막히자 당장 자동차, 전자, 방산, 친환경 에너지 산업이 가동 중단 위기에 봉착했다. 포드 모터의 스티븐 로젠버그 생산총괄은 지난 5월 말 "부품 부족으로 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했다"고 밝혔다. 일본 스즈키는 소형차 '스위프트' 전 모델 생산을 5월부터 중단했다.

미국 자동차 혁신 협회(AAI)는 5월 9일 미국 정부에 보낸 서한에서 "앞으로 몇 주 안에 생산이 중단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토요타와 혼다도 "부품 업체와 재고 확보를 위해 협의를 계속하고 있다"며 비상 체제에 들어갔다.

◇ 유럽과의 관계 개선 시도, 그러나 한계 드러나


중국은 최근 유럽연합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최근 유럽 기업들을 대상으로 희토류 수출 허가 승인을 빠르게 처리하기로 합의했다고 지난 7일 FT가 보도했다.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 장관과 마로시 셰프초비치 유럽연합 무역과 경제안보 담당 집행위원 간의 파리 회담 결과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유럽연합 산업의 우려스러운 상황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유럽연합에 전략상 중요하다"며 이번 발표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베이징의 한 유럽 임원은 제조업체들이 허가 신청이 "엄청나게 쌓여 있는" 상황을 볼 때 앞으로 몇 달간은 희토류와 자석 수입에 여전히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베이징 로비 단체인 유럽상공회의소 회장 옌스 에스켈룬드는 중국이 급히 필요한 선적을 승인했는데도 많은 기업들의 심각한 공급망 중단을 막기에는 진전이 "넉넉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중국이 세계 희토류 정제 시장의 90%를 장악하며 자동차와 첨단산업의 '생명줄'을 쥔 가운데, 서방 국가들이 '탈중국'을 외치며 공급망 재편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사진은 희토류 원석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중국이 세계 희토류 정제 시장의 90%를 장악하며 자동차와 첨단산업의 '생명줄'을 쥔 가운데, 서방 국가들이 '탈중국'을 외치며 공급망 재편에 사활을 걸고 있지만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사진은 희토류 원석들. 사진=로이터

◇ '탈중국' 시도하지만 압도적 격차


상황이 이렇자 미국과 유럽 등 서방국들은 공급선 다변화를 꾀하고 있으나, 중국과의 압도적 격차 앞에 속수무책이다. 미국 텍사스에 건설 중인 MP 머티리얼스의 자석 공장은 한 해 생산 목표가 1000t 수준인데, 중국의 한 해 생산 능력은 30만t에 이른다.

미국 컨설팅 회사 알릭스파트너스는 "중국 이외의 시설에서 원료를 가공해 생산하더라도 중국의 수출 규제에 따른 모든 영향을 감당할 수는 없다"며 "각국이 대체공장을 건설하려면 높은 기술 장벽과 환경 규제, 정부의 재정 지원이 필요해 최소 3∼5년은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프로테리얼(구 히타치 메탈스)은 "희토류 물질 가격 상승이 생산에 바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고객들이 희토류 물질에 대한 수출 허가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의 한 금속 재료 제조업체는 "안정된 공급을 계속하기 위해 일시로 고객에게 일부 비용을 부담하도록 요청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희토류 공급망의 중국 집중 위험성을 다시 한번 부각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희토류 공급원 다변화와 대체재 개발, 재활용 기술 향상 등을 통해 중국 의존도를 줄이려는 노력을 가속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단기로는 높은 가격 수준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