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일본과 무역 협상을 타결한 것과 관련해 “일본이 5500억 달러(약 794조 원)를 내게 맡긴 것”이라며 해당 자금을 자신이 직접 투자 방향을 결정하는 형태로 운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단순한 무역협상 성과를 넘어 사실상 외국 자본을 활용한 미국 산업정책 개입을 공식화한 발언으로 풀이된다고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과 AP통신이 2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건 대출이 아니라 서명 보너스 같은 것”이라면서 “일본은 관세를 조금 줄이기 위해 이 돈을 내놓은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또 “투자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90%는 미국이 가져간다”고 주장했다. 그가 언급한 ‘5500억 달러’는 일본 국내총생산의 10%가 넘는 규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돈을 에너지, 반도체, 핵심 광물, 조선업, 의약품 등 주요 산업에 배분할 생각이라며 “모든 자금은 내 지시에 따라 쓰인다”고 강조했다. 백악관은 이를 ‘일본과 미국의 공동투자기구’라고 표현하면서도 실질적으로 미국 주도의 투자 기금임을 분명히 했다.
◇ “트럼프가 쓰는 자금”…사실상 산업정책 도구화 선언
포춘은 백악관 설명을 인용해 “이 투자기구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미국 내 민간 프로젝트에 투자되며 수익의 대부분은 미국 정부가 가져간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정부는 이 기금으로 미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 에너지 인프라 확충, 조선소 증설 등을 추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방식은 전통적인 외국인직접투자(FDI)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포춘은 “트럼프가 국가 간 협상을 통해 외국 자금을 자신의 재량으로 활용하는 전례 없는 모델을 만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CNBC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무엇을 원하든 일본이 그것을 위한 자금을 대게 될 것”이라며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 관세 해제 조건으로 ‘선금’ 요구…법적 논란도
미·일 간 무역 협상 타결에 따라 일본 제품에 부과 예정이던 25% 관세는 15%로 낮아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같은 완화가 “일본의 자금 제공 덕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도 블룸버그통신과 인터뷰에서 “이 같은 창의적 금융 구조 덕에 15%로 합의할 수 있었다”며 “다른 국가들도 이 모델을 따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방식이 대통령의 무역권한을 넘어선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포춘에 따르면 트럼프의 관세 부과 권한을 규정한 국제긴급경제권법(IEEPA) 위반 여부에 대한 법원 심리가 다음주 예정돼 있으며 이와 맞물려 자금 운용 방식도 논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외교협회(CFR)의 브래드 셋서 선임연구원은 “이건 허상에 가까우며 실제보다 과장된 발표일 가능성이 크다”며 “미국이 외국 자금을 전면적으로 산업전략에 끌어들이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