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휴전' 대신 '평화협정'으로 선회…우크라이나·유럽 압박 더해
푸틴, 도네츠크·루한스크 영토 요구…미국 제재 없어 모스크바 '환호'
푸틴, 도네츠크·루한스크 영토 요구…미국 제재 없어 모스크바 '환호'

푸틴 대통령은 전쟁을 끝낼 조건으로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철수를 제시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수개월간 주장해 온 '즉각 휴전'을 사실상 접고, '전면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푸틴 대통령의 접근 방식에 동의했다. 이로써 전쟁 주도권이 러시아로 기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회담은 3시간가량 이어졌지만, 구체적인 합의는 나오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전 "휴전이 없으면 심각한 결과가 뒤따를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공동 기자회견에서는 "매우 성과 있는 회담이었다"며 강경한 태도를 거뒀다. 그는 "끔찍한 전쟁을 끝내는 길은 단순한 휴전이 아니라 완전한 평화협정"이라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근본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와 나토 가입 차단을 요구했다. 그는 "전장에서 물러날 생각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 푸틴, 동부 영토 인정과 남부 전선 동결 맞바꾸자 제안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도네츠크와 루한스크를 러시아 통제 아래 두는 대신, 남부 전선(헤르손·자포리자 지역)은 동결하겠다"는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루한스크는 러시아군이 이미 대부분 장악했지만, 도네츠크의 주요 도시 크라마토르스크와 슬로뱐스크는 여전히 치열한 교전지다. 수만 명의 희생자가 나온 지역을 러시아가 사실상 '전리품'으로 삼겠다고 요구한 셈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영토 양보는 없다"는 기존 태도를 다시 확인했다. 유럽 동맹국들도 우크라이나 국경 변경은 어떤 형태로든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관심은 이제 트럼프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을 얼마나 압박할지로 쏠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이제 공은 젤렌스키에게 넘어갔다"고 말했다. 이 발언에 모스크바는 곧바로 환영 메시지를 내며 "앞으로 협상 책임은 키이우와 유럽에 있다"고 주장했다.
카네기 러시아유라시아센터의 타티아나 스타노바야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부담을 우크라이나와 유럽에 떠넘기려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며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실제 양보를 압박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 '외교 완승' 자축하는 러시아
러시아 내부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양보 없이 미국 대통령을 굴복시켰다'는 승리 이야기가 퍼지고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은 "조건 없는 협상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의회 인사들은 "특별군사작전의 목표는 군사적으로든 외교적으로든 반드시 이뤄진다"고 입을 모았다.
러시아 국영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을 동등한 상대로 대우했다"며, 공항 영접부터 붉은 융단 환영 행사까지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마리아 자하로바 외무부 대변인은 "서방은 3년 동안 러시아가 고립됐다고 했지만, 이제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에서 최고 예우를 받았다"고 비꼬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의 '평화협정' 노선을 얼마나 받아들일지는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워싱턴 회담에서 드러날 전망이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영토 양보를 압박한다면, 미국과 유럽의 균열을 피하기 어렵다. 스타노바야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의 계획을 전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지만, 이미 협상 구도를 러시아에 유리하게 이끌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알래스카 회담은 전쟁 자체를 끝내지 못했지만, 외교 지형을 크게 흔들었다. 미국의 제재 카드가 빠지면서 러시아는 더 큰 자신감을 얻었고,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압력에 직면했다. 모스크바가 "전장에서 양보는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는 만큼, 전쟁이 더 치열해질 가능성도 있다.
이번 회담의 결론은 뚜렷하다. 푸틴 대통령은 아무것도 내주지 않고 원하는 것을 상당히 얻었고, 트럼프 대통령은 휴전을 접고 평화협정이라는 새로운 구도를 받아들였다. 모스크바는 이를 '외교 승리'로 규정하며, 앞으로 전쟁과 협상 모두에서 우위를 확보했다는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