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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대만 檢, 'TSMC 기술 탈취' 日 도쿄일렉트론 기소…사상 첫 법인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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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대만 檢, 'TSMC 기술 탈취' 日 도쿄일렉트론 기소…사상 첫 법인 처벌

"직원 관리 책임져라" 56억 벌금 구형…국가보안법 칼 빼든 대만
TSMC "신뢰 깨졌다" 우수 공급사 박탈…주동자 징역 14년 구형
대만 검찰이 TSMC의 2나노 핵심 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일본 도쿄일렉트론(TEL) 대만 법인을 기소했다. 대만 국가 핵심 기술 유출 사건에서 기업 법인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은 대만 신주 과학단지 내 TSMC 본사 모습.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대만 검찰이 TSMC의 2나노 핵심 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일본 도쿄일렉트론(TEL) 대만 법인을 기소했다. 대만 국가 핵심 기술 유출 사건에서 기업 법인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은 대만 신주 과학단지 내 TSMC 본사 모습. 사진=로이터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의 최첨단 2나노미터(nm) 공정 핵심 기술 유출 사건과 관련해, 대만 검찰이 일본 반도체 장비 기업 도쿄일렉트론(TEL)의 대만 법인을 전격 기소했다. 대만 국가 핵심 기술과 연관된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서 기업 법인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것은 사상 처음이다.

포커스 타이완, 디지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대만 고등검찰청 지적재산분야는 2일(현지 시각) 도쿄일렉트론 대만 법인(TEL Taiwan)을 기소하고 1억2000만 대만달러(약 56억 원)의 벌금을 구형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8월 TSMC 전직 엔지니어 출신인 도쿄일렉트론 직원 천리밍(Chen Li-ming)과 TSMC 현직 엔지니어 2명을 기소한 데 이은 후속 조치다. 검찰은 도쿄일렉트론이 직원의 범죄 행위를 막기 위한 실질적인 관리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보고 양벌규정을 적용했다.

납품 욕심에…전·현직 엔지니어 '검은 공모'


사건의 본질은 차세대 공정 장비 수주를 노린 무리한 '기술 탐욕'이다. 검찰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주동자 천리밍은 TSMC 12공장(Fab 12) 수율 개선 부서에서 근무하다 도쿄일렉트론 마케팅 부서로 이직한 인물이다.

천씨는 도쿄일렉트론이 TSMC의 2나노 식각(Etching) 공정 장비 공급사로 선정되도록 돕기 위해, 과거 동료였던 TSMC 현직 엔지니어 우핑춘(Wu Ping-chun), 거이핑(Ko Yi-ping)에게 접근했다. 그는 TSMC의 엄격한 기밀 유지 규정을 알고 있었음에도, 친분을 이용해 이들이 접근 가능한 핵심 영업비밀 파일과 비즈니스 정보를 빼내도록 종용했다.

유출된 정보는 도쿄일렉트론 내부에서 장비 성능을 평가하고 개선하는 데 불법적으로 활용됐다. TSMC의 2나노 기술은 대만의 '국가 핵심 기술'이자 세계 반도체 패권 경쟁의 최전선에 있는 기술이다. TSMC는 내부 보안 감사를 통해 이상 징후를 포착하고 고발 조치했으며, 이는 대만 사법 당국의 대대적인 수사로 이어졌다.

"예방 조치 없었다"…법인까지 양벌규정 적용


검찰이 도쿄일렉트론 법인을 직접 겨냥한 배경에는 '안이한 관리 감독'이 있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도쿄일렉트론은 직원 천씨를 감독할 법적 의무가 있음에도, 일반적인 내부 지침이나 경고 등 형식적인 조치에만 그쳤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도쿄일렉트론이 영업비밀 침해를 막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예방 시스템을 갖추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영업비밀법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 4가지 범죄 사실에 대해 총 1억 2000만 대만달러(약 56억 원)의 벌금을 구형했다. 이는 개별 직원의 일탈을 넘어 기업 시스템 자체에 책임을 묻겠다는 대만 당국의 강력한 의지로 해석된다.

TSMC '손절'…우수 공급사 명단서 제외


오랜 파트너였던 TSMC와 도쿄일렉트론의 관계도 급격히 냉각되고 있다. TSMC는 최근 발표한 '2025년 우수 성과상(Excellent Performance Award)' 명단에서 도쿄일렉트론을 제외했다. 도쿄일렉트론이 TSMC 공급망의 핵심 축을 담당해온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손절'이다. 업계는 이를 기밀 유출에 대한 명백한 문책성 조치로 보고 있다.

개인 가담자들에 대한 처벌 수위도 전례 없이 높다. 검찰은 주동자 천씨에게 징역 14년을, 공모한 TSMC 엔지니어들에게는 각각 징역 9년과 7년을 구형했다. 이들은 현재 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도쿄일렉트론 측은 지난 8월 "관련 직원을 해고했으며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고 해명했으나, 법인 기소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며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번 사태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기술 보안이 단순한 컴플라이언스 이슈를 넘어 기업의 존폐를 가를 수 있는 핵심 리스크임을 시사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