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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반도체 장비·소재 없이 AI 칩 못 만든다…삼성·SK하이닉스 '日 의존'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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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반도체 장비·소재 없이 AI 칩 못 만든다…삼성·SK하이닉스 '日 의존' 어디까지?

TEL 코터·디벨로퍼 90% 점유·ABF 사실상 독점…"ASML과 맞물린 이중 초크포인트"가 글로벌 공급망 쥐다
라피더스, 2027년 2나노 양산 목표…수율·고객사 확보라는 넘어야 할 두 개의 산
삼성전자나 TSMC가 수십조 원을 쏟아 공장을 짓더라도, 일본의 장비와 소재가 공급되지 않으면 가동 자체가 불가능하다. 2026년 현재 반도체 패권 전쟁의 본질은 단순히 '더 미세하게 만드는 경쟁'이 아니라 '일본의 병목 공정을 누가 먼저 확보하느냐'의 문제로 압축되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삼성전자나 TSMC가 수십조 원을 쏟아 공장을 짓더라도, 일본의 장비와 소재가 공급되지 않으면 가동 자체가 불가능하다. 2026년 현재 반도체 패권 전쟁의 본질은 단순히 '더 미세하게 만드는 경쟁'이 아니라 '일본의 병목 공정을 누가 먼저 확보하느냐'의 문제로 압축되고 있다. 이미지=제미나이3
20264, TSMC와 삼성전자는 일본의 작은 도시로 몰려드나

삼성전자나 TSMC가 수십조 원을 쏟아 공장을 짓더라도, 일본의 장비와 소재가 공급되지 않으면 가동 자체가 불가능하다. 2026년 현재 반도체 패권 전쟁의 본질은 단순히 '더 미세하게 만드는 경쟁'이 아니라 '일본의 병목 공정을 누가 먼저 확보하느냐'의 문제로 압축되고 있다. 2(현지시각) 일본 경제매체 겐다이비즈니스와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이 구조를 반도체 공급망의 '초크포인트(Choke Point·병목 지점)'라는 개념으로 분석한다.

초크포인트란 특정 기업이나 국가가 공급 흐름을 장악함으로써 산업 전체의 생산을 좌우할 수 있는 구조적 지점을 뜻한다. 이론상 대체재가 없지는 않지만, 수율 저하·비용 폭등·납기 지연이 동반되어 상업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운 상태가 된다. 일본이 반도체 전공정과 후공정 양쪽에서 이 지점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공정의 핵심, TEL90% 장벽과 ASML과의 공생


최첨단 반도체 제조에서 웨이퍼에 감광액을 바르고 현상하는 '코터·디벨로퍼' 공정은 회로 패턴을 새기기 위한 필수 단계다. 코트라(KOTRA)가 인용한 시장 조사에 따르면, 도쿄일렉트론(TEL)의 이 분야 세계 시장 점유율은 약 90%에 달한다. 드라이 에칭 장치(22%), 성막 장치(31%), 웨이퍼 프로버(34%) 등 여러 공정에서도 TEL의 이름이 최상위권에 등장한다.

이 구도를 이해하려면 네덜란드 ASML을 함께 봐야 한다.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사실상 단독 공급하는 ASML은 회로 패턴을 웨이퍼에 '찍는' 역할을 담당한다. TEL의 코터·디벨로퍼는 그 직전과 직후 공정을 책임진다. TEL 역시 ASML과 최첨단 공정을 공동 개발하는 협력 관계에 있다. 결국 'ASML이 찍고, TEL이 감싼다'는 구조가 첨단 반도체 생산의 핵심 골격을 이루며, 이 두 회사가 없으면 2나노 이하 공정 자체가 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스크린홀딩스는 웨이퍼 세정 장비 분야 세계 1위이며, 고쿠사이 일렉트릭은 열처리 장비에서 상당한 시장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반도체제조장비협회(SEAJ)2026년도 일본제 반도체 제조 장비 판매액이 전년 대비 약 12% 증가한 55000억 엔(519700억 원)을 넘어 사상 처음으로 5조 엔(47조 원) 선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AI 관련 첨단 반도체 투자 확대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중심의 설비 투자 증가가 배경이다.

후공정의 절대 강자, 조미료 회사가 AI 칩 공급망을 지배하는 이유


반도체 미세화가 물리적 한계에 부딪히면서 여러 개의 칩을 수직으로 쌓는 '첨단 패키징(Advanced Packaging)'AI 반도체의 핵심 경쟁 축으로 부상했다. 이 무대에서 일본 소재 기업들의 지배력은 전공정 못지않게 두텁다.

고성능 CPU와 서버에 필수적인 절연 소재 'ABF(아지노모토 빌드업 필름)'는 아지노모토 파인테크노가 세계 유일의 공급 기업이다. 아지노모토 그룹 공식 자료에 따르면 ABF의 층간 절연 시장 점유율은 거의 100%에 달한다. 미원(MSG)으로 알려진 식품 기업이 어떻게 반도체 소재를 독점하게 됐는가. 1970년대부터 아미노산 화학을 연구해온 기술 역량이 에폭시 수지와 결합하면서 기존 액체형 잉크 절연재가 해결하지 못하던 문제—불균일한 도포, 유해 가스, 긴 건조 시간—를 필름 방식으로 해결한 덕분이다. ABF는 이제 인텔, AMD, 엔비디아 등 사실상 모든 고성능 칩에 채택된 업계 표준이다.
한국에서는 LG화학이 자체 빌드업 필름(BF) 개발에 나서 국내 FC-BGA 생산 기업과 품질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LG화학의 ABF 상용화가 성공하면 국내 기판 기업들의 가격 협상력이 높아질 수 있다"고 평가하지만, 당장의 대체는 쉽지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기술 발전을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 간 협업이 여전히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웨이퍼를 나노미터 단위로 절단하는 분야에서는 디스코가 세계 시장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칩 밀봉재는 레조낙이 공급한다. TSMC가 이바라키현 쓰쿠바에 연구개발 센터를 설립한 것도 이들 소재·부품 기업과의 밀착 협력 없이는 차세대 AI 칩 개발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보이지 않는 지배'의 역사적 배경, 패배가 낳은 강점


일본의 반도체 공급망 지배력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1980~90년대 D램 전쟁에서 한국과 대만에 완제품 시장을 내준 이후, 일본 기업들은 전략적으로 '보이지 않는 공급망'으로 축을 이동했다. 소재·정밀화학·장비 분야에 수십 년간 집중 투자하면서, 완성품 경쟁보다 훨씬 진입 장벽이 높은 부문에서 대체 불가능한 지위를 구축한 것이다. 메모리 경쟁에서 밀린 경험이 역설적으로 공급망 심층부를 장악하는 전략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2019년 일본 정부가 불화수소 등 3대 소재의 대()한국 수출을 규제했을 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즉각적인 위기에 봉착한 것은 이 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그 이후 솔브레인과 SK머티리얼즈가 불화수소 국산화에 성공하고,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반도체 핵심 품목의 일본 수입 비중은 201834.4%에서 약 24.9%로 낮아졌다. 그러나 ABF, 코터·디벨로퍼 등 핵심 품목에서의 구조적 의존은 단기간 내 해소되기 어렵다.

일본 정부의 '10조 엔 빅 베팅', 라피더스와 TSMC의 투 트랙


다카이치 정부는 2030년까지 AI·반도체 분야에 10조 엔(945400억 원) 이상을 지원한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전략의 두 축은 자국 기업 라피더스와 외자 유치의 상징인 TSMC 구마모토 공장이다.

라피더스는 누적 29000억 엔(274100억 원)의 정부 보조금을 받았고 2026~2027년 추가 1조 엔(94500억 원) 지원이 예정돼 있다. 202572나노 GAA 트랜지스터 시제품 동작을 확인했으며, 현재 2026년 초 공정설계키트(PDK) 출시를 거쳐 2027년 하반기 월 25000장 규모 양산을 목표로 한다. 혼다·캐논·교세라 등 30개 이상의 민간 기업이 출자에 참여했고, 미국 IBM의 지분 투자도 검토 중이다.

그러나 냉정한 평가도 존재한다. 라피더스 고이케 아츠요시 사장은 기술 속도에 자신감을 보이지만, 히가시 데쓰로 회장은 "첨단 기술과 이를 활용한 혁신 제품이 서로 자극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숙제"라고 짚었다. 수율 안정화와 글로벌 고객사 확보가 기술 개발보다 더 어려운 과제라는 것이다. 2025년 기준 라피더스 임직원 평균 연령이 50대를 넘는다는 점도 인력 생태계의 취약성으로 지목된다. 라피더스가 2031년까지 필요한 자금은 총 7조 엔(661700억 원)으로 추산되지만, 현재 확보된 금액은 그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TSMC 구마모토 공장은 당초 계획보다 공정 사양을 상향해 3나노 제품 양산으로 방향을 바꿨으며, 투자 규모는 170억 달러(256200억 원)까지 확대됐다. 일본 정부는 라피더스의 고성능 특화 칩과 TSMC의 범용 AI·자동차용 칩이 역할을 분담하는 구도를 설계하고 있다.

한국, 의존 심화냐 VS 자립이냐


일본의 반도체 공급망 지배력 강화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 양면적 현실이다. 협력하지 않으면 최첨단 공정을 유지할 수 없지만, 의존이 심화될수록 지정학적 리스크 노출도 커진다. 2019년 수출 규제 경험 이후 한국은 소재 다변화와 국산화 전략을 병행하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ABF·코터·디벨로퍼 등 핵심 병목에서의 구조적 의존은 5~10년 단위의 장기 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 정부 역시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과 패키징 기술 개발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지만, 일본이 이미 수십 년에 걸쳐 구축한 소재·장비 생태계를 단기간에 모방하기는 어렵다. 미국도 반도체지원법(CHIPS Act)을 통해 자국 내 생산을 늘리고 있지만, 일본산 소재 의존은 미국 공장도 예외가 아니다.

반도체 공급망 재편의 향방을 판단하려면 다음 세 가지 지표를 함께 봐야 한다.

첫째, 라피더스 2027년 수율 목표치 달성 여부다. 2나노 양산 수율이 상업적 기준(통상 50~70%)에 도달하는지가 일본 파운드리 자립의 분기점이다. 경쟁사인 삼성전자의 2나노 수율이 이미 60%대에 진입했다는 보도가 나오는 상황에서 라피더스가 수율과 납기 경쟁력을 동시에 증명해야 한다.

둘째, ABF 대체재 상용화 속도다. LG화학의 국산 빌드업 필름이 고객사 테스트를 통과하고 양산 단계에 진입하는 시점이 한국의 대일 의존도를 실질적으로 낮추는 기준선이 된다.

셋째, 일본 내 반도체 수요 생태계 형성 여부다. 공장과 장비만으로 패권을 유지할 수 없다. 엔비디아·애플처럼 선단 공정 칩을 대량 수주할 수 있는 일본 국내 빅테크가 등장하느냐, 또는 글로벌 고객사를 얼마나 끌어들이느냐가 10조 엔(945000억 원) 투자의 성패를 가를 최종 변수다.

일본 반도체 장비·소재 산업의 지배력은 단기간에 허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영구적이지도 않다. 한국과 미국이 국산화와 동맹 공급망 구축에 속도를 높이는 지금, 일본이 '초크포인트'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제조 기지로서의 입지까지 강화할 수 있는지가 이번 10조 엔 승부수의 진짜 질문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