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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신록 속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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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신록 속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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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 속을 걷다 / 백승훈 시인
여름이 성큼 다가온 듯 한낮의 햇살이 제법 뜨겁다. 연신 피어나는 꽃들에 눈길을 주는 사이 공터에도 풀들이 무성해져 초록 융단을 깔아놓은 것 같다. 그 풀밭에 별들이 내려앉은 듯 생명력 강한 노란 민들레가 무리 지어 피어 있다. 일찍 꽃을 피운 녀석들은 벌써 둥근 씨앗 뭉치를 단 꽃대를 높이 밀어 올리고 바람이 불어오길 기다리고 있다. 꽃이 진 벚나무에도 잎이 제법 너풀거릴 정도로 커졌고, 연록의 새잎을 내어 단 느티나무도 한껏 생기 찬 모습이다. 요즘은 눈길 닿는 곳마다 피어난 형형색색의 꽃들이 내지르는 향기도 대단하지만, 새 옷으로 갈아입은 나무들이 하루가 다르게 잎을 키우며 연두에서 초록으로 점점 짙어지는 신록의 숲을 보면 햇살의 위대함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언제 걸어도 좋은 게 숲길이지만 초록의 새잎으로 단장한 생기 넘치는 신록의 숲길을 걷는 것은 넘치는 호사가 아닐 수 없다. 한순간에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한 꽃과 달리 늘 같은 듯하면서도 다른 모습을 보이는 초록의 잎들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짙어지고 부피를 늘려가며 온 숲을 초록으로 뒤덮는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월의 숲은 그 빛깔만으로도 우리에게 초록빛 생기를 불어넣고 흐뭇하게 해준다. 신록 속을 걸으면 우리는 짝을 찾는 새들의 지저귐과 나비의 춤사위 그리고 다람쥐나 청설모 같은 작은 산짐승을 만나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다.

싱그러운 빛과 향기로 우리를 품어주는 신록의 숲을 두고 수필가 이양하는 ‘신록예찬’이란 수필에서 이렇게 고백하기도 했다. “나는 신록 속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신록의 숲속에 들어서면, 나는 어느덧 내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나 자신이 한 그루의 나무가 되거나 한 포기의 풀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이때 우리는 비로소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맛보게 되는 것이다. 오, 신록이여! 너는 하늘이 내린 은혜요, 땅이 베푼 축복이로다. 너의 그 푸른 생명력은 우리에게 내일의 희망을 갖게 하며, 너의 그 너그러운 품은 우리에게 평화와 안식을 가져다준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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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 속을 걷다 / 백승훈 시인

초록은 살찌고 꽃의 붉은빛은 야위어 가는 녹비홍수(綠肥紅瘦)의 계절, 신록 속을 걷다 보면 이따금 허공에 줄을 치고 매달려 있는 애벌레와 맞닥뜨리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어린아이 손바닥만큼 자란 떡갈나무 잎에 벌레 먹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떡갈나무에 벌레 먹은 구멍이 많은 것은 참나무를 기주식물(寄主植物)로 삼는 곤충들이 많기 때문이다. 기주식물이란 주로 초식성 곤충이나 그 애벌레의 먹이가 되는 식물을 일컫는 말이다. 지독한 편식쟁이인 많은 곤충이 참나무를 기주식물로 택한 이유는 참나무는 오래 살고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참나무 잎을 먹이로 삼는 곤충들의 애벌레도 많지만 참나무를 돕는 동물도 많다. 그중에서도 어치는 특별한 존재라 할 수 있다. 미국의 곤충학자 탈라미가 쓴 책 ‘참나무라는 우주’를 보면 어치와 참나무는 6천만 년 전부터 공진화하면서 도토리는 어치가 먹기에 딱 적당한 크기가 되었고, 도토리 겉껍질을 잘 까도록 어치의 부리 끝이 살짝 구부러졌고, 한꺼번에 5개나 삼킬 수 있게 식도가 넓어졌다고 했다. 그래서 어치는 가을마다 4500개 정도를 숨기고, 그중 4분의 1을 먹어서 나머지는 나무가 되게 돕는다. 어치가 평균 7~17년을 산다고 보면 3360그루의 참나무를 심는 셈이다.

신록의 숲은 그 자체로도 위안이고 기쁨을 주지만 그 숲에 들면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뿐만 아니라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신록 속을 걸으며 인간과 자연 사이의 깊은 연결고리와 상호 의존적인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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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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