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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캐즘에 막힌 K배터리, 車 밖 시장서 활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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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캐즘에 막힌 K배터리, 車 밖 시장서 활로 찾는다

EV 의존도 낮추고 수요처 다변화 속도
전시 넘어 공급계약·라인 전환·납품 레퍼런스가 관건
이탈리아 로마 인근 피우미치노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제공항 전경. 이 공항에는 전기차 배터리를 활용한 에너지저장장치(ESS)가 구축됐다. 사진=로이터연합이미지 확대보기
이탈리아 로마 인근 피우미치노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제공항 전경. 이 공항에는 전기차 배터리를 활용한 에너지저장장치(ESS)가 구축됐다. 사진=로이터연합


전기차 캐즘이 길어지면서 K배터리의 수요처 다변화가 실제 사업전략으로 옮겨가고 있다. 에너지저장장치(ESS)에서는 전기차 배터리 생산라인 전환 사례가 나오고, 로봇·드론·방산·건설기계 등 자동차 밖 시장도 새 성장 후보군으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28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전기차 외 응용처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기차는 여전히 이차전지 시장의 핵심 수요처지만 판매 증가세가 둔화되면서 공장 가동률과 수익성 방어 부담이 커졌다. 특정 시장에 쏠린 매출 구조를 낮추고 ESS, 로봇, 드론, 방산, 건설기계 등으로 고객군을 넓히려는 움직임이다.

車 의존 낮추는 K배터리…ESS는 라인 전환까지


관건은 비전기차 시장 진출이 선언에 그치느냐, 실제 매출로 이어지느냐다. 현재까지 가장 뚜렷한 움직임은 ESS에서 나온다. SK온은 미국 플랫아이언 에너지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최대 7.2GWh 규모의 LFP ESS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었다. 이를 위해 미국 조지아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라인 일부를 ESS용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전기차 수요 둔화 국면에서 기존 생산능력을 다른 수요처로 돌리는 사례가 나온 셈이다. 기술 전시나 개발 단계에 머무르는 다른 비전기차 영역과 달리 공급계약과 라인 전환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전기차 수요 둔화로 가동률과 수익성 방어가 중요해진 만큼, ESS와 비전기차 시장에서 실제 매출을 만드는 속도도 관건으로 떠올랐다.

산업연구원도 ESS를 전기차 수요 둔화에 대응할 주요 시장으로 보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지난해 공개한 ‘한국 배터리 산업의 위기 진단과 극복 전략’ 보고서에서 미국 전기차 수요 위축 가능성을 짚으며, ESS와 드론, 휴머노이드 로봇 등 차세대 유망 분야에서 신수요를 창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보고서는 글로벌 ESS 시장이 2023년 44GWh 수준에서 2030년 508GWh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로봇·드론은 기술 선점, 방산·건설기계는 레퍼런스 싸움


로봇과 드론은 비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먼저 주목받는 분야다. 휴머노이드와 물류로봇, 서비스로봇은 장시간 작동과 반복 이동이 핵심이다. 배터리가 무거우면 기동성이 떨어지고, 출력이 약하면 작업 성능이 제한된다. 전기차보다 탑재 공간이 작아 고출력·경량화·셀 설계 기술이 중요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로봇과 드론, 도심항공교통(UAM) 등 물리적 인공지능 영역에 맞춘 배터리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올해 인터배터리 2026에서도 전기차뿐 아니라 로봇, 드론, 에너지 인프라 등으로 확장된 배터리 포트폴리오를 전면에 내세웠다. 자동차용 배터리 기술을 산업용·이동형 기기 시장으로 넓히는 흐름이다.
삼성SDI는 전고체 배터리를 앞세워 로봇과 항공 분야를 겨냥하고 있다. 회사는 인터배터리 2026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등 피지컬AI 구동에 활용할 수 있는 파우치형 전고체 배터리 샘플을 공개했다. 전고체 배터리는 안전성과 에너지밀도 측면에서 차세대 기술로 꼽힌다. 삼성SDI가 양산 목표 시점을 2027년 하반기로 잡고 있어, 로봇·항공 분야의 실제 공급 사례는 그 이후에나 본격화될 전망이다.

방산과 건설기계는 아직 본격적인 매출 시장보다 중장기 후보군에 가깝다. 드론과 무인체계, 전동 건설장비에서 배터리 수요가 커질 가능성은 있지만, 방산은 인증과 납품 이력, 건설기계는 내구성과 가격 경쟁력이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배터리 업체 입장에서는 시장 규모보다 초기 고객사를 확보해 레퍼런스를 쌓는 것이 우선 과제다.

방산 분야에서는 현대전에서 드론, 정찰로봇, 무인수상정, 무인잠수정 등 무인체계 활용이 늘면서 고성능 배터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군용 드론도 한국 배터리 산업의 새 시장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봤다. 군용 드론 상용화가 진전될수록 배터리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경량화와 고밀도화 등 고성능 배터리 수요가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군용 드론 시장은 2023년 141억달러에서 연평균 13% 성장해 2032년 472억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됐다.

황경인 산업연구원 대외협력실장도 지난 3월 인터배터리 2026 부대행사 더배터리컨퍼런스에서 배터리 산업의 전기차 의존 구조를 지적했다. 황 실장은 “현재 배터리 업황은 전체 수요의 약 70~80%를 차지하는 친환경차, 그중에서도 순수전기차(BEV) 판매에 크게 좌우되는 구조”라며 “전기차 외 시장에서 새로운 수요를 만드는 것이 산업 회복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건설기계 전동화도 같은 흐름이다. 굴착기, 로더, 지게차 등 건설장비는 아직 디젤 기반이 많지만 탄소배출 규제와 작업장 소음·배기가스 저감 요구가 커지면서 전동화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 건설기계는 승용 전기차보다 사용 환경이 거칠고 작업 부하가 커 배터리 내구성과 출력, 안전성이 중요하다.

전기차 대체는 아직…“실제 공급 사례가 관건”


자동차 밖 시장이 곧바로 전기차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로봇과 드론, 방산, 건설기계용 배터리는 성장성이 크지만 현재 시장 규모가 전기차보다 작고 고객사별 요구 조건도 제각각이다. 인증과 검증 기간이 길고 초기 레퍼런스 확보가 쉽지 않다는 점도 부담이다.

관건은 기술 전시를 실제 공급계약과 라인 전환, 납품 레퍼런스로 얼마나 빨리 연결하느냐다. 전기차 수요 둔화는 이미 실적에 반영되고 있지만 비전기차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다. 배터리 업체들이 자동차 밖 시장에서 의미 있는 매출을 만들려면 고객사 확보와 양산 적용 사례가 뒷받침돼야 한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전기차가 배터리 시장의 핵심 수요처라는 점은 변하지 않겠지만 캐즘을 겪으면서 업체들이 수요처 다변화 필요성을 더 크게 느끼고 있다”며 “자동차 밖 시장은 아직 규모가 작지만 고성능 배터리 기술력을 보여주고 고객군을 넓힐 수 있는 분야”라고 말했다.


이다현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dh2@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