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FP 지고 나트륨 뜨나… 미·중 배터리 정치학 속 K-배터리 독점 구도 균열 경고음
이미지 확대보기미국 최대 자동차 제조업체 제너럴모터스(GM)가 전기차를 전력망 자산으로 전환하며 에너지 기업으로 변신을 선언했다.
악시오스(Axios)는 지난 9일(현지시각) GM이 벤처 투자 부문을 통해 스타트업 피크 에너지(Peak Energy)에 전략적 투자를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투자는 인공지능(AI) 데이터 센터발 전력 수요 폭증에 대응해 전력망 규모의 고정형 에너지저장장치(ESS)용 차세대 나트륨 이온 배터리를 공동 개발하는 것이 핵심이다.
전기차 성장 둔화 국면에서 배터리 기술을 전력망 자산과 데이터 센터 연료로 활용해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는 테슬라가 주도해 온 에너지 서비스(EaaS) 시장에 GM과 포드 등 전통 완성차 공룡들이 본격적으로 가세하면서 글로벌 모빌리티와 전력 산업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테슬라 독주 속 GM·포드 가세… ‘에너지 전환’ 속도 내는 글로벌 완성차
이에 따라 테슬라의 에너지 부문 마진율은 지난해 20%대를 기록하며 내수 위축을 겪는 자동차 부문의 수익성을 지속적으로 웃돌고 있다. 테슬라는 대규모 가상발전소(VPP)를 구축해 전력 도매 시장에서 직접 전력 중개 수익을 올리는 단계에 진입했다.
유럽에서는 폭스바겐과 BMW가 전력 자회사 ‘엘리’ 등을 설립해 전기차 폐배터리를 재활용한 2차 수명 ESS 사업을 확장하고 있으며, 일본 도요타 역시 전력회사들과 연계해 대용량 고정형 ESS 실증 실험을 마치고 상용화를 추진 중이다. 포드는 지난달 에너지 자회사 설립을 발표한 이후 주가가 20% 이상 상승하며 시장의 기대감을 반영했다.
자동차서 버려진 ‘나트륨’의 반전… AI 데이터 센터 전력망의 핵심 연료로 부상
이번 기술 변화의 핵심은 고정형 ESS 시장을 겨냥한 ‘비(Non)리튬’ 배터리의 부상과 에너지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의 확립이다.
나트륨은 리튬보다 1000배 이상 풍부해 원가 경쟁력이 높고 화재 안정성이 우수하다. 시장조사기관 베른스타인에 따르면 나트륨 이온 셀 가격은 오는 2027년까지 1킬로와트시(kWh)에 40달러(약 6만 원) 수준으로 떨어져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대비 20% 이상 저렴해질 것으로 관측된다.
부피와 무게 제약이 없는 고정형 ESS와 데이터 센터에서는 최적의 대안으로 꼽힌다. 다만 에너지 밀도가 LFP 대비 약 20% 낮고 초기 사이클 수명에 대한 상용화 스케일 검증이 부족하다는 점은 한계다.
완성차 기업들은 양방향 충전 기술(V2G) 소프트웨어를 도입해 전기차를 ‘바퀴 달린 ESS’로 만들고 있다. 전력 가격이 낮은 시간대에 전기차를 충전하고, 피크 타임에 데이터 센터나 전력망에 비싸게 되파는 전력 중개 비즈니스가 핵심 수익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와 호주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전기차를 활용한 가상발전소(VPP)가 가정용 전력 요금을 낮추는 수단으로 활용되며 가시적인 수익성을 증명하기 시작했다. 다만 V2G는 잦은 충·방전으로 인한 차량 배터리 열화 비용을 상쇄해야 하며 주별 전력 시장 규제에 따라 실제 수익성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리스크가 존재한다.
이제 EV 수요 둔화·AI 전력 폭증 ──> 나트륨·재활용 배터리 다각화 ──> V2G·VPP 전력 중개 수익 창출 구도를 보이고 있다.
포드 'CATL 합작' vs GM '독자 공급망'… 미-중 배터리 정치학 속 K-배터리의 위기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응하는 공급망 전략에서도 양사의 노선은 뚜렷하게 갈린다. 커트 켈티 GM 배터리 책임자는 중국 CATL 기술 라이선스를 기반으로 미시간에 공장을 짓는 포드를 겨냥해 "우리는 중국 기술을 라이선스 받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GM은 미국 스타트업 피크 에너지와 손잡고 원재료 단계부터 중국을 배제한 독자적인 나트륨 이온 배터리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러한 지형 변화는 고성능 삼원계(NCM) 배터리에 집중해 온 국내 배터리 3사와 현대자동차그룹에 강력한 경고등을 켜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배터리 산업의 위기가 기술력의 격차라기보다는 포트폴리오의 편중과 초기 시장 대응 속도의 문제라고 진단한다. 특히 기업별 포트폴리오에 따라 취약점이 명확히 엇갈린다.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 합작법인(JV) 선점 강점에도 불구하고 LFP 및 나트륨 이온 배터리 상용화 대응이 상대적으로 늦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익성 개선이 시급한 SK온은 저가형 배터리 양산 체제 전환 압박이 가중되고 있으며, 고부가 배터리에 집중해 온 삼성SDI 역시 ESS 시장의 급격한 저가형 재편 속에서 확장성 확보라는 관건을 마주했다. 현대차그룹 역시 V2G 기술을 타진하고 있으나, 북미 인프라와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주도하는 플랫폼 역량에서는 글로벌 선두 기업들과 격차가 존재한다는 게 증권가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한국 산업계가 생존을 위해 당장 실행해야 할 3대 전략 제언
글로벌 에너지·모빌리티 전장이 재편되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들이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문가들의 정책 제언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ESS 전용 나트륨 및 LFP 배터리 케미스트리 다각화다. 국내 배터리 3사는 차량용 리튬 이온에만 매몰되지 말고 전력망과 데이터 센터를 겨냥한 나트륨 이온 및 LFP 배터리 자립 공급망을 조기에 구축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현대차그룹 중심의 가상발전소(VPP) 및 소프트웨어 표준화다. 현대차는 단순한 차량 제조를 넘어 북미·유럽의 대형 전력사들과 협력해야 한다. 수백만 대의 전기차를 유연한 전력 자산으로 묶는 V2G 소프트웨어 플랫폼과 VPP 기술 투자가 필수적이다.
셋째, 배터리-완성차 'K-동맹' 기반의 글로벌 데이터 센터 패키지 진출이다. 한국 배터리의 화재 안정성과 현대차의 전력 제어 기술을 결합해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데이터 센터 전용 통합 전력 공급 솔루션을 개발하고, 북미 시장에 공동 진출하는 턴키 전략을 전개해야 한다.
한편 완성차 기업의 에너지 기업 전환 성공 여부와 한국 배터리 기업의 생존 가치를 판단하기 위해 투자자들이 당장 확인해야 할 지표는 네 가지다.
첫째, GM과 피크 에너지가 개발하는 나트륨 이온 배터리의 t당 생산 단가 추이다.
둘째, 북미 공공사업체의 V2G 소프트웨어 플랫폼 참여율 및 규제 완화 속도다.
셋째, 국내 배터리 3사의 전체 매출 중 비(Non)차량용 ESS 배터리가 차지하는 비중 변화다.
마지막으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데이터 센터 사업자들의 자체 ESS 내재화 비율 추이다.
글로벌 완성차 공룡들이 AI 전력난을 무기로 전력 시장의 판도를 흔드는 지금, 한국 산업계는 배터리 화학 조성의 다변화와 전력 소프트웨어 플랫폼 역량 강화를 동시에 달성해야만 미래 차 가치 사슬에서 도태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글로벌 배터리 격전지의 본질은 얼마나 멀리 가느냐를 겨루는 '주행거리'가 아니라, 얼마나 값싸게 전력을 공급하느냐를 둘러싼 '전력 가격'의 싸움이 된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