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트남 등 동남아서도 불티나게 팔려... 번 돈은 모두 독립자금 교육자금 환원
6·25 피난길에도 챙기고 산업화 역군들 근육통 풀어주며 86·88 선수들과 금메달 '동행'
유한양행이 창립 100년을 맞았다. 유일한 박사가 '건강한 국민만이 빼앗긴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1926년 시작한 보건 안보의 첨병 100년이다. 2018년에는 글로벌 제약사인 존슨앤존슨의 자회사 얀센바이오테크와 1조4천억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맺으며 제약업계의 신기원을 이루었다. 유한양행 100년의 발자취를 통사 1회와 연구개발 2회로 세 차례 싣는다. <편집자주>6·25 피난길에도 챙기고 산업화 역군들 근육통 풀어주며 86·88 선수들과 금메달 '동행'
이미지 확대보기유한양행 창립자 유일한의 초기 사업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1926년 창립 후 수년동안 상품을 수입해 판매하는 무역에 집중하며 신뢰를 얻고 돈도 벌었다. 그러나 유일한 귀에는 질병에 시달리는 국민들의 신음이 들렸고 눈으로는 병원도 못오는 환자들의 모습이 밟혔다. 더 이상 의약품 개발을 늦출 수는 없었다.
동양여성 최초로 미국에서 의사 자격증을 딴 아내 유호미리 여사가 연구에 뛰어 들었다. 유일한 박사는 틈틈이 아내 곁을 지키며 조언을 했다. 1차 목표는 염증 치료와 통증 억제에 효과적인 성분을 찾아내 조합하는 일. 부부의 노력이 수년만에 결실을 맺었다. 바세린 기제로 반교형화한 연고제가 그들의 손바닥 위에 놓여졌다.
유호미리 여사가 개발, '염증 억제' 의미 이름 붙여
1933년 출시된 안티푸라민은 날개 돋친듯 팔렸다. 버드나무 그림이 그려진 유리병을 사려고 서울 신문로 사옥 앞은 새벽부터 장사진이었고 전국 약방마다 진열대는 약을 갖다 놓기 무섭게 동이 났다.
이미지 확대보기수요를 맞추기 위해서는 좀 더 근대식 생산시설이 필요했다. 1936년 소사공장에 드디어 동양 최대 규모 제약생산 공장이 탄생했다. 자동화된 배합기와 충전 설비를 들여왔다. 종로의 작은 진료실에 솥을 걸고 연고를 짓던 시절과는 비교도 안되는 커다란 진보였다.
1961년 유리병 탈피, 원형 틴케이스 도입
안티푸라민은 적(敵, Anti)이 없었다. 1930년대 후반 유한양행은 봉천(현 선양), 천진톈진), 상하이에 지사를 설립하고 대련, 청도(칭다오) 등에 출장소를 두고 공격적인 해외 마케팅을 펼쳤다. 베트남 사이공(현 호치민)과 미얀마 랑군(현 양곤)에 이어 미국 LA에도 법인과 지사를 두었다. 동남아 일대에선 혹독한 추위 속에서 일제 탄압과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동포들에게 안티푸라민은 고국에서 날아온 유일한 '온기'였다.
유일한은 해외 사업에서 번 돈을 한푼도 개인의 부를 위해 쓰지 않고 모두 독립 군자금과 교육 자금으로 쏟아 부었다. 안티푸라민은 이렇게 조국의 아픔을 치료하면서 독립의 꿈을 실현해 나아가는 소중한 희망의 매개체였다.
이미지 확대보기6·25 전쟁의 생사를 가르는 순간에도 피난민 보따리엔 어김없이 안티푸라민이 들어 있었다. 전쟁 이후 피해 복구에서도 안티푸라민의 활약은 이어졌다. 산업화 현장에서 일꾼들의 뭉친 근육과 타박상을 달래준 건 안티푸라민이었다.
안티푸라민은 1961년 놀랍게 변신한다. 깨기지 쉬운 유리병 대신 가볍고 견고한 원형 틴케이스를 도입한 것.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휴대하고 긴급 상황에 대처하기도 편해졌다. 작고 단단한 초록색 캔은 방방곡곡 안방으로 스며 들었다.
안티푸라민의 시원한 멘톨 향은 중동 건설 열사의 현장 근로자를 달래주었고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에 나선 선수들 몸에도 배어 있어 '금메달 향기'로 통했다.
단일 제형 고집 버리고 로션 분사형 등으로 변신, 연매출 355억
잘 나가던 안티푸라민이 19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며 위기에 직면한다. 60년 이상 단일 제형을 고집해 온 사이 먹거나 붙이는 소염진통제가 잇따라 출시되면서 안티푸라민 입지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매출은 연간 20억~30억 수준에서 정체되며 성장에 한계를 드러냈다.
이미지 확대보기안티푸라민 반격의 선봉은 1999년 안티푸라민 S로션이었다. 연고라는 단일 제형 틀을 깨고 과감한 혁신을 택한 것. 이후 안티푸라민 조인트, 안티푸라민 파프를 출시하며 '손에 묻지 않는 안티푸라민' 시대를 열어 소비자 기대에 부응했다. 연 매출도 50억원으로 급등했다. 이어서 등장한 분사형 안티푸라민 쿨에어로 안티푸라민은 넓은 활동 영역을 모두 아우르는 토털 페인케어 라인업을 완성했다.
2014년 매출은 연간 100억에 이르며 안티푸라민은 메가 브랜드에 등극한다. 기술적 자부심에 역사적 무게가 더한 쾌거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19년 축구 스타 손흥민을 모델로 발탁, 브랜드에 '젊음'과 '역동'이라는 강력한 에너지를 수혈했다. 2025년 매출 355억. 이제 안티푸라민은 20여 종에 이르는 촘촘한 패밀리 라인업을 완성해, 페인케어 전 영역을 아우르고 있다.
엄정권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astoday@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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