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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제조업 위기와 해법] ②미·중 패권 경쟁부터 3高현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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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제조업 위기와 해법] ②미·중 패권 경쟁부터 3高현상까지

기준금리 인상이 불러온 고환율·고금리·고물가. K-제조업 경쟁력 약화
수출증가율 2개월 연속 감소세,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 1%대 남짓
현대경제硏 “경기하강 속도 빨라지며 내년 경기침체 본격화” 전망

인천 신항만 부두에 쌓인 컨테이너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인천 신항만 부두에 쌓인 컨테이너들. 사진=뉴시스
수출 역군으로 불리던 K-제조업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미·중 간 패권 경쟁을 시작으로, 올 3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전격적인 고금리 정책이 방아쇠가 됐다. 이후 주요국들이 잇따라 금리인상에 나서면서 이른바 고금리·고물가·고환율 등 '3고(高) 현상'이 본격화한 것이다.

27일 산업계에 따르면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는 K-제조업의 위기 원인은 △미 연준의 금리인상 후폭풍 △중국의 경기 둔화 가능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불거진 에너지 대란 및 글로벌 공급망 불안 사태 등이 지목됐다.
이 중 가장 치명적인 악재는 미 연준의 금리인상이다. 연준이 지난 3월을 시작으로 올해에만 6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달러 강세를 불러온 것이다. 이로 인해 국내 기업들은 강(强)달러와 유가상승, 금리인상이라는 복합 위기에 시달려야 했다.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은 또한 주요 국가들의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파급효과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 국가들의 연쇄적인 금리인상을 불러왔고,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결국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효과가 가계 실질소득 감소로 이어지면서 소비 수요가 급격하게 감소했다. 제조업체들의 상반기 재고량이 급격하게 늘어난 배경이다.

소비 위축은 하반기에도 계속됐다. 특히 IT기기에 대한 수요 감소로 이어지면서 우리나라 수출품목 1위 제품인 반도체 업황마저 꺾였다.

반도체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지난 3분기 영업이익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31.4%, 60.3%가 급감했다. 경기침체로 인한 소비 위축 현상이 시작되면서 스마트폰과 PC, 가전 등 IT제품이 사용되는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급격하게 감소한 탓이다.

금융권에서는 반도체 업체들의 실적이 4분기에 더욱 악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3분기 소비 위축이 본격화되면서 4분기 반도체 매출액이 전분기보다 더 나빠질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번 4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절반 이하가 될 것이란 관측마저 나올 정도다.
결국 SK하이닉스는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대규모 감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경기침체 우려가 깊어지는 만큼 감산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인위적 감산은 없다"며 기존 생산체계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관련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내년 하반기 이후 반등이 예상되는 만큼 기존 생산체계를 유지해 반등 이후 공격적인 점유율 확대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9월부터 11월까지의 15대 주요 수출품목 규모 및 증감률 추이. 그래픽=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9월부터 11월까지의 15대 주요 수출품목 규모 및 증감률 추이. 그래픽=글로벌이코노믹


'3고 현상'의 여파는 산업의 꽃으로 불리는 철강 업종에도 상처를 입혔다. 제조업체들의 기업 활동이 소극적으로 바뀌면서 철강 수요 역시 감소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강달러 현상으로 인해 수입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자 철강 업체들의 수익성이 악화됐다. 원자재 가격은 오르는데, 수요 감소로 철강재 가격이 하락하는 이중고를 겪은 것이다. 실제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주력 제품 중 하나인 열연강판의 경우 지난 2일 기준 톤(t)당 105만원으로, 반년 전 대비 16.7%가 하락했다.

반면 철강 업체들이 생산하는 선박용 후판 가격은 올 상반기 상승세를 유지했는데, 이로 인해 국내 조선 업체들의 수익성이 나빠졌다. 6mm 이상의 두께로 선박 건조에 사용되는 선박용 후판은 지난해부터 올 상반기까지 가격이 계속 상승했는데, 이로 인해 조선 업체들은 원자잿값 상승에 따른 비용 증가로 인해 마음을 졸여야 했다. 후판 가격 상승분을 1분기 실적에 반영했던 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 3사는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자동차 업계도 올해 험난한 한 해를 보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의 코로나 봉쇄 정책 등 글로벌 공급망 불안 등이 자동차 업체들을 괴롭혔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산차 내수판매 비중은 전년 동기 대비 11% 감소했다. 공급망 불안에 신차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수출 여건도 좋지 않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수출과 현지 생산이 중단됐고, 3고 현상으로 인해 차량 가격이 상승하면서 구매 욕구가 꺾이기도 했다.

모든 제조업 업종들에 악재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제유가 급등으로 인해 국내 정유 업체들은 상반기에만 12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거뒀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등 배터리 업체들 역시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로 인해 3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2020년 10월 이후부터 최근까지 수출금액 및 수출증감률 비교. 출처=산업통상자원부이미지 확대보기
2020년 10월 이후부터 최근까지 수출금액 및 수출증감률 비교. 출처=산업통상자원부


문제는 3고 현상으로 촉발된 K-제조업의 위기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은 멈췄지만, 한·미 간 금리 역전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 자금이 밀물처럼 빠져나가고 있고, 3고 현상은 내년에도 위세를 떨칠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경제기관들과 연구소들도 이런 이유로 내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춰 잡고 있다. 한국은행의 경우 1.7%를 예상했으며, 한국개발연구원은 1.8%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모두 1%대 성장률을 예상한 것이다.

K-제조업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수출 현황도 악화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0월 수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5.7% 감소했으며, 11월에는 14%나 급감했다. 수출액이 2개월 연속 감소세를 기록한 것은 지난 2020년 3월 이후 처음이다.

더 큰 문제는 3고 현상이 초래한 경기침체 상황이 디플레이션으로 고착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와 관련해 "4분기 현재 제조업계를 중심으로 수출 경기가 침체하고, 내수 활력이 약화되고 있다"면서 "내년에는 경기 하강속도가 빨라지면서 본격적인 경기침체 국면에 들어설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종열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eojy78@g-enews.com